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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화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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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화주의(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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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경(외무대신의 전신) 이노우에 가오루를 중심으로, 안세이 5개국 조약 등 서양 열강과 체결한 불평등조약의 조약개정의 실현을 위해, 헌법 등 법전을 편찬하는 것과 병행해 일본 문화를 유럽풍으로 만들어 일본이 서양과 마찬가지로 국제법의 적용대상으로 간주되는 문명국의 일원임을 인정받고자 한 것이다.
그 대표적 존재가 1883년 완성된 녹명관이었다. 이노우에 자신이 녹명관의 주인역을 맡아 화족・정부고관・외교단을 이끌고 야회 등 행사를 밤낮으로 열었다. 또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히비야에 프로이센풍의 대규모 관가를 건설하려는 구상(관청집중계획)이 수립되었다.
문화면에서도 「개량」운동이 관민 모두에게 활발해져, 1883년 야타베 료키치・토야마 마사카즈 등의 로마자회(羅馬字会), 시부사와 에이이치・모리 아리노리의 연극개량회가 결성되었다. 또한 서양을 흉내내어 학회를 창설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야마다 비묘 등의 언문일치운동도 이 시기에 발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