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대전방송총국
대전충남권역을 시청권으로 둔 한국방송공사의 지사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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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대전방송총국(KBS大田放送總局)은 대전세종충남 지역을 방송구역으로 하는 한국방송공사의 지역방송총국이다. 지역총국 중 하나로, 하부에 속해있는 지역국은 없다.
대전 KBS1 | |
개국 | 1978년 7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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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TV 채널 | 9번
KT지니TV |
위성 채널 | 9번 KT 스카이라이프 |
천안아산방송센터
홍성방송센터
조선방송협회 대전방송국을 설치할 당시 여건은 매우 나쁜 상태였다. 방송망 구상 초기에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가 중일 전쟁이 일어나고 진주만 폭격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바람에 자재 구입이나 인력이 부족하고 방송 청취 통제의 강화와 방송의 전쟁 도구화 등 여러 악재들이 겹친 시기였다. 개국하기 전에 앞서서 1940년 8월 5일 대전부 북정 15번지(現 대전광역시 중구 목동)에 13평짜리 건물의 출장소로서 출범하였다. 그 후 1942년 출장소에서 방송국으로 승격하였고 1943년 7월 15일 정식으로 조선방송협회 대전방송국이 개국하였다. (AM 880㎑, 출력 50W, 호출부호 JBIK) 원래는 한국어로 방송하는 제2방송과 함께 세울 계획이었지만 1942년 4월 27일 전파관제가 이루어지면서 제2방송의 전파발사가 일단 중지 되었기 때문에 제1방송만 공사가 진행되어 먼저 방송을 실시하게 되었고 한국어방송은 1943년 11월 10일부터 실시하게 되었다. 당시 사옥은 6,600평의 넓은 부지에 기와를 올린 벽돌조 단층 130평의 건물로 연주실, 송신기실, 사무실 등을 마련하고 따로 송신소는 두지 않은 채 방송을 하였다. 그 후 1944년 10월 1일 45M 목주안테나를 설치하여 송신소를 따로 건설하였다.
광복이 되면서 방송국에 있던 일본인 직원들은 모두 물러나고 한국인 직원들로 채워졌다. 이어 1947년 10월 1일에는 호출부호를 일본식 JBIK에서 한국식의 HLKI로 변경하였고, 1948년 8월 6일에는 사명을 대한방송협회 대전방송국으로 변경하였다. 또한 1949년 7월 26일 기존 50W이던 방송 출력을 500W로 높이는 등 새로운 도약을 시작하였다.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대전은 임시수도가 되었고 대전방송국은 6월 28일부터 임시중앙방송국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방송을 듣고 정보 보고서를 만들어 국무회의에 보고하고, 비밀 방송 수신실을 마련하여 VOA를 비롯해 북한측이 방송하는 서울방송,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들려오는 방송을 모니터하여 작성한 분석보고서를 국무회의에 제출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전략을 세워 나가는 등, 대전임시수도 시절동안 대전방송국은 매우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였다.
전쟁중에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대전방송국은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시되는 방송국이 되었다. 이로 인해 전쟁중임에도 불구하고 10㎾ 출력 증강 공사를 하여 서울의 송신소가 가동이 되고 있어도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키스테이션이 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기 위해 1951년 11월 8일 공사를 착공하여 1952년 11월 5일 준공하였다. 이로 인해 대전방송국은 지역국 중 당시로서는 최초로 10㎾의 대출력 송신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1961년 1월 22일 대전방송국은 사옥을 대흥동으로 이전하고 목동의 사옥자리는 송신소로 사용하였다. 1965년 8월 5일에는 홍성중계소(AM 510㎑)를 설치하여 방송망 확장을 시작하였다.
1966년 5월 16일에는 충청지역에서 최초로, 대전에 식장산TV중계소가 준공되어 KBS-TV 방송을 중계하였다. KBS-TV 방송망이 확장될 때 식장산 중계소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당시에는 마이크로웨이브 기술이 없어서 서울의 전파를 그대로 수신하고 그걸 또 중계하는 방식으로 방송망을 구성하였는데, 식장산은 남한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이곳을 통해서 전국 TV방송 링크가 구성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다른 곳의 출력이 500W미만이었던 것과는 달리 식장산TV중계소는 유일하게 1㎾로 설치되었다. 채널과 출력을 그대로 유지하여 2012년 10월 2일 오후 2시까지 청주방송총국에서 사용하였다.
1973년 3월 1일, KBS가 공사로 출범하게 됨에 따라 한국방송공사 대전방송국으로 사명이 변경되었고, 1976년에는 목동의 송신소를 회덕으로 이전하여 20㎾급의 대덕송신소(AM 882㎑)를 준공하였다. 그리고 목동에 청사를 다시 새로 지어 1978년 11월 17일 준공하였다.
70년대에 들어서 한국방송공사의 각 방송국들은 자체TV방송을 시작하였다. 대전방송국도 이를 추진하면서 충청남도 전역까지 가시청권으로 포함해야 된다는 계획을 추진 하면서 계룡산TV,표준FM송신소를 세우고 1978년 11월 20일부터 전파를 발사하였다. 또한 1981년 3월 20일부터 식장산중계소에 2TV방송을 시작하고, 1981년 5월 25일 음악FM방송을 개국하는 등 대전방송국에도 여러 방송이 추가되었고, 1982년 3월 4일 KBS대전 제1라디오 FM으로 수신가능, 잡음이 전혀 없는 표준FM(스테레오가 아닌 모노)으로도 동시에 방송을 하고, 1983년 2월 12일부터 계룡산송신소에 2TV방송을 시작했다.
1986년 12월 8일 대전방송국은 대전방송총국으로 승격하게 된다. 이후 1987년 7월 20일, 공주방송국이 신설되면서 공주중계소, 부여중계소, 부여출장소의 담당을 공주방송국으로 이관하게 된다.
1998년 2월 28일에는 만년동의 신사옥으로 이전과 7월 15일에는 신사옥 준공식을 가지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된다.
디지털TV방송의 개시에 따라 2001년 12월 5일 제2라디오 FM방송 개국(100.9㎒), 대전방송총국도 2004년 7월 12일 계룡산송신소와 식장산중계소에서 1TV, 2TV 디지털방송을 개국하여 송출하기 시작했다. 2005년 2월 18일에는 계룡산·식장산 EBS-DTV, 2005년 12월 26일에는 흑성산중계소, 2006년 6월 1일에는 원효봉중계소 등 기간급 중계소에도 디지털TV방송 중계시설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7년 1월 11일부터는 식장산송신소에서 지상파DMB방송을 실시했고 같은해 8월 1일 정식으로 개국하였다. 2007년 12월 13일에는 HD뉴스부조와 TOC를 준공하여 HDTV방송의 기반시설을 구축하여 고화질의 방송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08년 1월 4일에는 계룡산송신소의 1라디오 표준FM 출력을 증강하여 수신가능지역을 확대하였고, 2008년 9월 2일에는 홍성방송센터에서 개소를 해서 뉴스 참여를 재개했다, 2009년부터는 디지털TV와 지상파DMB 중계소를 더욱 확충하는 등 디지털방송의 방송망을 꾸준히 구축해나가고 있다. 2012년 10월 16일에는 지상파아날로그TV방송을 종료하고 완전한 디지털TV방송 시대를 맞이하였으며, 2013년 10월 16일 오후 2시에는 지상파디지털TV방송의 채널 재배치를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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