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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루 2세 (Petru II, 1304년 – 1342년 8월 8일)는 시칠리아의 왕으로 133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재위하였으며, 1321년부터 아버지와 공동 통치자로 있었다. 피에트로의 아버지는 시칠리아의 페데리코 3세이고 어머니는 나폴리의 카를로 2세의 딸 엘레오노르였다.[1] 그의 재위 기간은 왕권과, 귀족 세력들 그 중에서도 특히 벤티밀리아, 팔리치, 키아라몬테 등 오래된 가문들 간의 투쟁, 그리고 시칠리아와 나폴리 간의 전쟁이 있었다.[2]
피에트로 2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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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피에트로 (메시나 대성당의 모자이크) | |
시칠리아의 왕 | |
재위 | 1337년 6월 25일 - 1342년 8월 15일 |
전임 | 페데리코 3세 |
후임 | 루이지 |
신상정보 | |
출생일 | 1304년 |
출생지 | 시칠리아 왕국 알토폰테 |
사망일 | 1342년 8월 15일 |
사망지 | 시칠리아 왕국 칼라시베타 |
가문 | 바르셀로나가 |
부친 | 시칠리아의 페데리코 3세 |
모친 | 앙주의 엘레오노르 |
배우자 | 케르텐의 엘리사베타 |
자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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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팔레르모 대성당 |
동시대 사람들은 피에트로를 연약한 심성을 가진 자로 평가했다. 조반니 빌라니는 저서 '신 연대기'(Nuova Cronica)에서 그를 '정신 박약에 가까운 자'(이탈리아식 라틴어: 'quasi un mentacatto')라 하였고 니콜라 스페찰레는 저서 '시칠리아사'(Historia Sicula)에서 그를 '순수하고 단순한 자'('purus et simplex')라고 칭하였다.[2]
피에트로 시기에, 나폴리인들은 리파리 제도를 정복하였고 시칠리아섬 내에서도 밀라초, 테르미니 등의 도시들을 차지하였다.[2] 그는 1342년 8월 8일 칼라시베타에서 잠깐 병을 앓은 뒤 사망하였고[2] 팔레르모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그의 뒤를 장자인 루이지가 이어받았으나, 그는 겨우 네 살에 불과하였다.[3]
그는 케른텐의 엘리사베타와 혼인하여,[4] 자녀 아홉을 두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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