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그리스어: Ἡ Ἀνταλλαγή, 튀르키예어: Mübadele, 영어: 1923 population exchange between Greece and Turkey)은 최초의 국가간 합의에 의한 대규모 인구 교환 조치이자, 인구 추방 조치이다. 이 조치는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의 결과로 1923년 1월 30일 스위스 로잔에서 체결된 "그리스와 튀르키예 인구의 교환에 관한 협정"에 따라 튀르키예 영토 내의 그리스 정교도와 그리스 영토 내의 무슬림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는데, 그 대상자 수가 2백만여 명에 달하였고 이들 대부분은 강제로 난민 상태가 되어 법적으로 자신들의 고향에서 영주권을 잃고 쫓겨났다.
내용
1923년 1월 30일 스위스 로잔에서 그리스와 튀르키예 양국 정부는 "그리스와 튀르키예 인구의 교환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였다.[2][3] 튀르키예 영토에서 그리스인을, 그리스 영토에서 튀르키예인을 각각 추방, 교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이 조치에 따라 50만여 명의 무슬림(대부분 튀르키예인)이 그리스에서 쫓겨났고, 150만여 명의 그리스 정교도(대부분 그리스인)가 튀르키예의 아나톨리아(소아시아)와 동트라키아에서 쫓겨났다. 다만, 그리스-튀르키예 전쟁 중에 튀르키예 영토 내에 거주하던 100만여 명의 그리스인이 이미 추방되었기 때문에 이 협정으로 교환된 그리스인의 수는 40만여 명에 그쳤다.[4][5][6][7]
이 조치로 그리스어, 튀르키예어 사용 여부를 불문하고 아나톨리아(소아시아)에 거주하던 거의 모든 그리스 정교도가 터키 영토의 영주권을 잃고 추방되었으며, 그리스에서도 튀르키예계 뿐만 아니라 무슬림인 그리스계, 롬족, 포마크 족, 차머리아 알바니아인, 메글레나 루마니아인 등 50만여 명의 무슬림이 추방되었다.
그리스에서는 이를 "소아시아 재앙"(Μικρασιατική καταστροφή)으로 부르는데, 이 조치 이전에도 그리스를 비롯한 발칸반도에서는 발칸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등으로 다수의 난민이 발생하여 이동한 바 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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