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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슈카 위트코(라코타어: Thašųka Witko, 1840년 가을 무렵 ~ 1877년 9월 5일) 또는 크레이지 호스(영어: Crazy Horse ‘그의 말은 미쳤다’[*])는 미국군대에 맞서 라코타족의 전통과 생존을 위해 싸운 존경받는 족장이자, 전쟁지도자이다. 크레이지 호스를 번역하여 미친 말 또는 성난 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리틀빅혼 전투에서 시팅 불과 연합하여, 미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으나, 그 후 미군에게 쫓기다가 1877년 암살당했다. 이를 기리기 위해서 러시모어 산이 위치해 있는 블랙 힐스로부터 27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이라는 조각상을 만들고 있다.
신뢰할 만한 자료에 근거하면 성난 말은 1840년 가을경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태어날 당시의 이름은 'In The Wilderness'(황야에서) 또는 'Among the Trees'(나무들 중에)였다. 인디언 말로 타슈카 위트코, '성난 말'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별명은 곱슬이었는데, 어머니로부터 엷은 색 곱슬머리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성난 말은 15세기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400여년간 계속됐던 인디언과 백인 사이의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던 수우족의 전사였다. 1840년 가을 블랙 힐스 인근 래피드 계곡에서 출생한 성난 말은 백인들과 어울려 놀 만큼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12살 무렵 부족 추장이 백인의 총에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백인들로부터 자신의 부족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 무렵 미국은 서부 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인디언들의 터전을 빼앗고,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을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마을을 불태우고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학살했다. 성난 말은 23세가 되던 1863년 수우족의 수렵 구역에 침입한 백인들을 물리치며 이름을 떨치게 된다. 이로 인해 성난 말은 테토노 수우 부족 연합의 대 추장으로 추대되어 조상들이 지켜온 신성한 땅 '블랙 힐스'를 지키기 위해 미국과 싸웠다. 예상치 못한 인디언들의 강경 대응에 군사적 손실을 입은 미국 정부는 1868년 인디언들에게 회유책을 내밀게 된다. 미주리강 서쪽 지역 '블랙 힐스'를 수우족의 땅으로 인정하며 원주민 독점권을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성난 말은 미국의 회유책을 받아들였다. 전장에서는 누구보다 용맹스러웠지만 동료와 가족에게는 자애로웠던 그가 원했던 것은 평화였다.[1]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블랙힐스 일대에서 금이 발견된 것이다. 이에 미국은 블랙 힐스를 빼앗기 위해 모든 약속을 무시하고 인디언들을 몰아낼 계획을 세운다. 1876년 6월 25일, 미국은 제 7 기병대를 파병해 리틀 빅혼 전투를 일으키게 된다. 리틀 빅혼 전투란 지금의 몬태나주 리틀 빅혼 카운티에서 라코타-샤이엔 원주민 연합과 미국 육군 7 기병연대 간에 벌어진 전투를 말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전통의식을 위해 라코타, 수, 샤이엔 부족에서 모인 2,000여명의 선주민들이 있었고 미군의 도발에 의해 전투에 참전, 제 7 기병대를 전멸시켰다. 리틀 빅혼 전투를 통해 인디언들의 전투력을 실감하게 된 미국은 치욕스런 패배를 만회하기 인디언 지역에 무차별 공격으로 복수를 하게 된다. 인디언들은 미국의 무차별 공격에 대처할 여력도 없이 무너져갔다. 계속되는 전투에 많은 부족민들을 잃은 성난 말은 인디언들의 전멸을 계획안 미국 정부에 맞서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미국에 항복하게 된다. 성난 말은 1877년 9월 5일 자신을 포로 취급하는 기병대원에 저항하다 사살되어 동료 인디언들의 송가를 들으며 블랙 힐스의 땅 '운디드니'에 묻힌다.[2]
1927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남서부 블랙 힐스 산자락에 있는 러시모어 산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대통령 4명의 얼굴을 조각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 조각상은 완공까지 걸린 17년이 마무리 될 무렵 이 프로젝트 팀에서 일했던 조각가 코자크 지올코브스키는. 1939년, 수우족의 추장에게 편지를 받게 된다 그 편지에는 "백인들에게 영웅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영웅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우리의 영웅은 '성난 말'이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은 인디언 수우족의 추장 '서 있는 곰'이었다. 서 있는 곰은 코자크에게 인디언의 영웅 성난 말 즉 '타슈카 위트코'를 조각해달라고 청원한다.[2]
하지만 성난 말이 누군지조차 몰랐던 코자크는 서있는 곰을 직접만나 그로부터 뒤늦게 성난 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비극으로 끝나버린 영웅의 일대기에 감명을 받게 된다. 그리고 성난 말이 죽은 9월 5일이 자신이 태어난 날과 같다는 사실을 알고 운명을 예감하며 성난말 조각을 결심하게 된다.
1948년 6월 3일 대통령 조각상이 있는 곳에서 27 km 떨어진 블랙 힐스 러시모어 산자락에서 성난 말 조각의 시작을 알렸다. 코자크는 러시모어 산 대통령 조각을 훨씬 뛰어넘는 크기의 세계 최대 조각상으로 만들고자 했다. 코자크가 구상한 조각의 크기는 높이 172m, 길이 201m의 거대 조각상으로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들어야 하는 대 작업이었다.[3] 하지만 물, 전기, 기계 등 조각작업에 필요한 모든물자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현재 시세로 겨우 160여만원의 시공비를 들고 조각을 시작한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코자크의 이 무모한 도전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성난 말 조각상은 세간의 관심을 받게되고 여러사람으로부터 적지 않은 지원금을 받게된다.
한편 미국 정부는 인디언 탄압의 역사를 반성하겠다는 의미로 조각상의 제작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나섰으나, 코자크는 "미국 정부에 대한 저항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조각상을 미국의 지원을 받아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정부의 지원을 일절 거절했다. 그러면서 조각에 대한 경비 일체를 일반 시민들의 기부금과 입장료, 화강암 세공품을 판매한 돈으로 충당하기로 하고 묵묵히 조각을 계속하게 된다.
그렇게 작업이 시작된지 32년이 흐른 1982년, 노년의 나이에도 조각을 계속해나가던 코자크는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사람들은 코자크의 죽음으로 성난 말 조각상 프로젝트가 중단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코자크가 죽은 뒤 그의 아내와 자녀, 손자와 증손자들까지 참여해 성난 말 조각상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던 1998년 6월, 작공 50년만에 얼굴 조각상이 완성되었다. 하지만 완성까지 아직도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몸과 말을 만들고 있지만 언제 마무리 될지 알 수 없으며, 관계자들은 완성까지 최소 10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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