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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문신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최항(崔恒, 1409년 ~ 1474년)은 조선의 문신이자 집현전 학사(集賢殿 學士) 출신 학자(學者)이다. 조선국 의정부 영의정 등을 지냈다.
자(字)는 정보(貞父), 호(號)는 태허정(太虛亭) ·동량(㠉梁), 시호(諡號)는 문충(文忠 ) : 문정(文靖)이며, 본관은 삭녕(朔寧)이다.
1426년(세종 8 병오(丙午))년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진사(進士) 양시(兩試)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434년(세종 16년) 식년시(式年試)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장원(壯元) 급제(及第)하여 집현전 부수찬(副修撰)이 되었다.
1443년에는 집현전(集賢殿) 학사(學士)로 정인지 등과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創製)에 참여하고, 《훈민정음》을 한글로 옮겨 풀었으며, 〈용비어천가〉에 주를 달아 풀이하였다.
1444년 집현전 교리(集賢殿校理)로서 오례(五禮)를 찬진, 1445년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창제에 참여하고, 이어 동국정운(東國正韻)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용비어천가보수(龍飛御天歌補修) 등을 찬진(撰進) 하였으며, 1448년 집현전 직제학(集賢殿直提學)에 올랐다. 1450년 선위사(宣慰使)가 되어 명나라 사신(使臣)을 맞이하여 접대를 하였으며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로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를 겸하여 세종실록(世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1451년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로 수사관(修史官)을 겸하여 고려사(高麗史)를 개찬(改撰) 하고,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에 올라 통감훈의(通鑑訓義)를 편찬하여 그 공으로 가자(加資)되었다. 이어 문종실록(文宗實錄)에 참여하였다.
1453년(단종 1년) 동부승지(同副承旨)로 있을 때, 절재 김종서를 제거한 수양대군을 맞이하여, 단종에게 보고한 공으로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책록되었다. 이후 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 이듬해에 이조 참판(吏曹參判)이 되어 《공신연곡(功臣宴曲)》 4장을 지어 바쳤다. 연이어 대사헌, 우부빈객(右副賓客),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역임(歷任)하였다.
1455년(세조 1년) 좌익공신(左翼功臣) 2등에 책록되고 공조 판서(工曹判書)에 승진하였으며, 이후 1458년 공조판서, 형조판서를 하며 1459년(세조 5년) 《육전》(六典)의 편찬을 비롯하여 《관음현상기》, 《십이준도》 등을 찬하였고, 중추원사(中樞院事)로 《명황계감》의 가사(歌詞)를 한글로 번역하는 한편, 《동국통감》을 찬수하였으며, 신숙주 등과 같이 《어제유장설》 3편을 주해하였다. 이후 중추원사, 세자빈객(世子賓客),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으로 대사성을 겸 하고, 1460년 이조판서와 우참찬을 하다가 1461년 양성지(梁誠之)의 잠서(蠶書)를 국문으로 번역하여 간행하고, 1463년 우참찬(右參贊) 좌참찬(左參贊)을 역임하고 동국통감(東國通鑑)을 찬수를 시작하는 한편 어제유장설(御製諭將說)을 주해(註解) 하였다.
1464년(세조 10년)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구결(口訣)을 달았으며, 1466년 판병조사(判兵曹事)를 거쳐 좌찬성(左贊成)으로 어제구현재시(御裁求賢才試)에 1등으로 합격하고 가자(加資)를 받았으며, 《병장설주(兵將說注)》를 산정(刪定)하였다. 1467년에 우의정(右議政)·좌의정(左議政)을 지냈으며 영의정(領議政)에 이르러 영성군(寧城君)에 봉(封) 해졌다. 《소학》(小學), 《주역구결》(周易口訣), 《예기구결》(禮記口訣) 등을 정하고 세조의 행장을 초집하였다. 1467년에 영의정(領議政)에 이르렀으며 1470년 영성 부원군(寧城府院君)에 진봉(進封) 되었다.
한편 1461년(세조 7년)에는 왕명으로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하여 조선 초기의 법률과 제도를 집대성하였다.
1469년(예종 1년) 경국대전(經國大典) 상정소 도제조(詳定所都提調)로서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찬수하였으며, 이어 무정보감(武定寶鑑)을 찬수하였다.
1471년에서 이듬해 1472년까지 1년간 조선국 상급 국상 지위를 지낸 그는 1471년(성종 2년) 좌리공신(佐理功臣)의 호를 받아 좌의정이 되기도 하였고 《세조실록》, 《예종실록》을 찬수하였으며, 조선초기의 대학자로서 문물제도 정비에 큰 역할을 하였고, 역사·언어 분야에 정통 하였으며, 문장에 능하여, 당시 명나라(중국)에 사신(使臣) 편에 보내는 표전문(表箋文)은 거의 그가 담당하여 썻다.
최항선생묘(崔恒先生墓) 경기도기념물 제33호 소재지(所在地) :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도마리 산11-1번지 (1976년8월27일 지정)
최인원(崔仁源)은 최사렴(崔士廉)의 후손(後孫)이다.
평소 겸손하고 과묵했으며 문장에 능하여 명에 보내는 표전문(表箋文)은 거의 그가 작성했다고 한다. 저서로 《태허정집》등이 있다.
생원(生員)
진사(進士)
세종(世宗) 8년(1426)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세종(世宗) 8년(1426)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부제학 안침 등이 김종직의 시호를 바꿀 수 없음과 유생에게 죄를 주는 것이 부당함을 아뢰다.
원문(原文)과 국역
후면(後面)에는....
원문.....前者申叔舟、崔恒、權近, 皆以文忠議諡.....
국역.....전에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권근(權近)은 모두 문충(文忠)이라고 시호를 의정하였으니.....
집현전 학사(集賢殿學士)들 중에는 친명(親明)을 주장하며 한글을 반대하는 최만리(崔萬理) 등 연장(年長) 학사들과, 한글을 창제(創製)를 주장하며 비밀리에 연구하는 권채(權採), 최항(崔恒), 안의(安誼)등의 소장(少壯) 학사들로 구분된다.
한글창제 빌상 근원지는 권채(權採), 최항(崔恒), 권제(權題), 안의(安誼), 정의공주(貞懿公主 세종의 둘째 딸)등이 전라도 정읍(井邑) 상두산(象頭山)자락을 중심으로 사찰에서 은거하며 비밀리에 한글을 연구 하다.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 최항(崔恒) 등에게 비밀리에 특지를 내려 한글을 연구 하도록 특명을 내린다.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는 한글을 만든다는 것은 성패에 있어 목숨이 위태로운 위험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종대왕은 집현전 학사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은밀히 왕족출신인 수양대군(首陽大君)과, 세종대왕의 둘째 공주 정의공주를 후원자로 삼아 보냈다, 또한 정의공주는 전라도 정읍 부근 태인현(泰仁縣) 시댁에서 시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래서 학사들을 정읍 상두산 사찰(미륵당)로 보낸것이다. 수양대군은 칠보면(七寶面)의 송현수(宋玹壽) 친구 집에서 집현전 학사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은거하며 생활 하고 있었다.
수양대군이 왕자시절 왕명으로 민족음악을 채집하면서 가무여인 박씨(후일 후궁 근빈박씨) 처녀와 세조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덕원군(德源君), 창원군(昌原君))을 낳았다. 그리고 윤씨 왕비에서 두 아들을 산외면 도원에서 낳아 도원군(桃源君 인수대비 남편), 평남정에서 낳아 평남군((桃源君 예종왕)을 낳아 예종대왕 태실묘를 모악산에 세웠다.
수양대군은 왕자시절 상두산 미륵당 가무기예 무녀(無比身)으로 보이는 근빈박씨가 여기서 두 왕자를 낳은후에 윤씨왕후로 도원군(桃源君)과 평남군(平南君)인데 산외면(山外面) 도원마을과 평남정 마을이름으로 왕자의 아명이 지명으로 불린듯하다. 수양대군이 자주 목욕하는 목욕소(목욕리)마을이 있고 그 산외면(山外面) 목욕소(목욕리)마을에 근빈박씨 두 왕자(덕원군德源君, 창원군昌原君) 들이 왕이 되려고 명당으로 왕자산과 태자봉을 신봉하자 예종왕(睿宗王)이 불러서 금지시켰다.
편집 역자 : 세계사지도사 1급(世界史指導士 一級), 한국사지도사 1급(韓國史指導士 一級), 사무행정전문가 1급(事務行政傳門家 一級), 인사총무관리사 1급(人事總務管理士 一級), 한자교육지도사 1급(漢字敎育指導士 一級) - 삭녕후인(朔寧後人) 최효암 현일(崔效巖 鉉馹) -
전임 한백륜 |
조선의 상급 국상 1471년 5월 31일 ~ 1472년 5월 23일 |
후임 신숙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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