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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제16대 국왕 (?–392)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진사왕(辰斯王, ? ~392년 11월, 재위: 385년 11월~392년 11월)은 백제의 제16대 국왕이다.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로 어머니는 아이부인이다. 침류왕이 즉위한 지 1년 7개월 만에 사망하자, 아직 나이가 어린 침류왕의 맏아들 아신, 즉 자신의 조카를 대신하여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 진사왕은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국경을 방어하는데 애썼으며 389년과 390년에는 고구려를 공격하여 달솔 진가모가 도압성(都押城)을 함락시키기도 하였다.
제14대 근구수왕의 둘째 아들이며 제15대 침류왕의 동생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침류왕이 죽었을 때 태자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숙부인 진사가 즉위했다고 하며 일본서기에는 진사가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백제는 근초고왕(346년~375년 재위 말년부터 시작된 고구려의 공격으로 긴장된 상태에 있었으므로 그는 즉위 직후인 386년에 15세 이상의 주민을 동원하여 관방(關防)을 쌓게 했다.
389년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기도 했고 390년에는 달솔 진가모를 시켜 고구려의 도곤성(都坤城)을 함락하게 해 200명을 포로로 잡았다. 그러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즉위하면서부터 백제는 수세에 몰렸다. 391년에 궁실을 중수하고 연못과 산을 쌓는 등 무리한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력을 낭비하였으며, 이로 인해 말갈과 고구려의 침입을 받았다. 391년 7월 광개토대왕이 군사 4만 명을 거느리고 북쪽 변경의 석현성(石峴城) 등 10여 성을 함락시켰으나 진사왕은 광개토대왕이 군사작전에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맞서 싸우지 못했다. 10월에는 험준한 요새지인 관미성도 함락당했다.
진사왕은 그해 구원(狗原)에 사냥을 나갔다가 행궁(行宮)에서 죽었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진사왕이 피살된 것으로 되어 있어 정치세력간의 갈등으로 죽임을 당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침류왕의 아들인 아신은 숙부인 진사왕이 부왕의 죽음에 관련된 것으로 보고 반기를 들었다. 한편 일본서기에 의하면 왜왕의 정책에 협조하지 않아, 왜에서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百濟의 辰斯王이 왕위에 있으면서 貴國(日本)의 天皇에게 예의를 잃었으므로, 기각숙례(紀角宿禰), 우전시대숙례(羽田矢代宿禰), 석천숙례(石川宿禰), 목면숙례(木菟宿禰)를 파견하여 그 무례함을 책망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百濟國에서는 辰斯王을 죽여 사죄하였다.'고 한다. 일본서기는 '기각숙례 등이 아화(阿花, 아신왕의 별칭)를 왕으로 세우고 돌아왔다.'고 적고 있다.
근구수왕 根仇首王 | 아이부인 阿爾夫人 | ||||||||||||||||||||||||||||||||||||||||||||||||||||||||||||||||
왕비 진씨 王妃 眞氏 | 침류왕 枕流王 | 후궁 : ? | 진사왕 辰斯王 | ||||||||||||||||||||||||||||||||||||||||||||||||||||||||||||||
아신왕 阿莘王 | 훈해 訓解 | 설례 碟禮 | 부여홍 扶餘洪 | 진손왕 辰孫王 | |||||||||||||||||||||||||||||||||||||||||||||||||||||||||||||
태아랑왕 太阿郞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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