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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중앙부.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중앙아시아는 아시아의 핵심 지역 중 하나로, 서쪽으로 카스피해부터 동쪽으로는 중화인민공화국까지, 북쪽으로는 러시아부터 남쪽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지역이다. 스탄이 붙는 여러 국가들이 이곳에 산재해 있는데, 스탄은 페르시아어로 "~의 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1] 중앙아시아는 넓은 범위로 보았을 때 유라시아 대륙의 일부로 포함된다.
현대적 의미에서 중앙아시아는 옛 소련의 5개 공화국을 지칭하고 있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이 중앙아시아에 포함되는 국가로 인구는 2013년에서 2014년 사이의 기준으로 약 6,600만 명이다. 인구가 3110만 명인 아프가니스탄도 중앙아시아에 포함되기도 한다. 이는 지정학적 범주에서 본 중앙아시아로 유네스코에서 정의한 중앙아시아의 범위는 이보다 훨씬 넓은 지역을 포함한다.
중앙아시아의 정확한 범위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는데 어느 것이 분명한 것인지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경계에 대한 명확한 범위가 없음에도 이 지역은 전반적으로 유사한 특성을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다. 하나를 예로 들자면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비단길과 유목민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2] 중앙아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대륙 사이에서 사람, 물자, 그리고 문화의 이동로 역할을 해왔다.[3]
구분된 지역으로서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생각은 1843년 지리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처음 도입했다. 중앙아시아의 국경은 여러 정의들에 따라 나누어진다. 정치적인 지리학과 지리문화학을 통해 역사적으로 2개의 중요한 한도가 중앙아시아에 대한 정의에 관한 학구적인 문학들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4]
가장 제한적인 정의는 소련의 공식적인 것으로, 중앙아시아를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이 중앙아시아의 구성국으로 보고 있다. 이 정의는 이 시기 소련 외부에서도 종종 사용되었다. 하지만 러시아 문화는 2개의 구별되는 용어를 가지고 있다. Средняя Азия (Srednyaya Aziya 또는 "소비에트 중앙아시아")는 더 제한된 정의로 전통적으로 슬라브족이 거주하지 않는 중앙아시아의 영토로 역사적인 러시아의 국경 지대에 합병된 지역을 일컫지만, Центральная Азия (Tsentralnaya Aziya 또는 "중앙아시아")는 조금 더 넓은 범위의 정의로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영토였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중앙아시아 영토를 포함한다. 독립 이후 소비에트 중앙아시아의 지도자 4명이 타슈겐트에 만나 중앙아시아의 정의에 소련이 포함한 4개국 외에도 카자흐스탄을 포함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후 이것이 중앙아시아의 가장 일반적인 정의가 되었다.
1992년 출판된 유네스코 중앙아시아 문명의 역사는 중앙아시아를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이란, 파키스탄, 북인도, 중국 서부, 몽골과 옛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공화국들"이라고 정의내렸다.[5] 대안은 중앙아시아를 민족성으로 분류하는 것이며 특히 동부 투르크족과 동부 이란인, 몽골인이 집중된 지역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 지역들에는 남부 시베리아의 터키인 지역과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5개국, 아프간 투르케스탄, 카슈미르 분지, 신장위구르 자치구를 포함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체와 파키스탄 북부 및 서부 지역도 이 지역에 포함될 수 있다. 티베트와 라다크인 거주 지역도 포함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언급한 모든 민족은 넓은 지역의 원주민으로 분류될 수 있다.
아시아의 중심이라 주장되는 몇몇 지역이 있다. 러시아 연방 내에 위치한 투바의 수도인 키질이나 신장 지역의 수도 우루무치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지역이 대표적인 예시다.[6] 다니엘 파입스는 중앙아시아를 중동과 종교가 같은 아제르바이잔을 포함시켜 6개국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중앙아시아를 신중동이라는 용어로 새롭게 정의하기도 했다.[7]
중앙아시아는 다양한 지리가 있는 매우 넓은 지역이다. 높은 고개와 톈산산맥과 같은 험준한 산맥, 타클라마칸 사막, 키질쿰 사막과 같은 넓은 사막, 그리고 특히 나무가 없고 풀이 많은 스텝이 중앙아시아의 지리에 포함되어 있다. 중앙아시아의 넓은 스텝 지역은 동유럽의 스텝 지역과 동일한 지리학적 지역으로 분류되며, 두 지역을 합쳐 유라시아 스텝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앙아시아의 대부분 지역은 농경을 하기 위해 매우 건조하거나 바위가 많다. 고비 사막은 파미르고원의 입구인 동경 77°에서 다싱안링산맥이 있는 동경 116°–118°까지 뻗어있다.
중앙아시아는 아래와 같은 지리학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대부분 이곳에 거주하는 인구는 가축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한다. 산업화는 지역의 주요 도시에 자리잡고 있다. 아무다리야강, 시르다리야강, 이르티시강, 하리강, 무르가브강과 같은 주요 강이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카스피해를 포함하는 서부 및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거대한 내륙유역의 일부인 아랄해와 발하시호가 주요 수자원 공급원이다. 산업적 목적과 개간 산업을 통한 강의 분산으로 아랄 해와 발하시 호 모두 수량이 줄고 있다. 수자원은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희귀한 자원이며, 이것은 국제적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는 시베리아의 숲들을 북쪽 경계로 삼고 있다. 중앙아시아, 그 중 카자흐스탄의 북반 지역은 유라시아 스텝의 중앙부에 해당한다. 서쪽으로 카자흐 스텝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스텝과 합쳐지며 동쪽으로는 준가르와 몽골의 스텝, 그리고 사막과 연결된다. 남쪽으로 갈 수록 땅은 점차 건조해지고 유목 인구가 점차 줄어든다. 남쪽의 인구밀집지역과 도시들은 관개가 가능한 지역이다. 주요 관계 지역은 아무다리야강과 시르다리야강을 따라서 있거나 동부 산맥 곳곳에 산재해 있으며, 이란 국경지역인 코페트다그산맥 북쪽에도 밀집되어 있다. 코페트다그산맥 동쪽은 메르브의 중요한 오아시스들이 있으며 헤라트나 발흐와 같은 아프가니스탄에 위치한 몇몇 도시들이 있다. 톈산산맥의 2개의 돌출부가 동쪽산맥들에 3개의 만입부를 형성한다. 북쪽의 가장 큰 만입부가 카자흐스탄 동부로 전통적으로 제추 또는 세미르체예로 불렸는데, 이 지역은 발하시호를 구성한다. 중앙에는 작지만 인구가 밀집된 페르가나 분지가 위치해 있다. 남쪽이 박트리아로 이후 토차리스탄이라 불리게 되며 아프가니스탄의 힌두쿠시산맥과 접하고 있다. 페르가나 계곡에서 시르다리야강이 발원하며 박트리아에서 아무다리야강이 발원한다. 두 강 모두 북서쪽 방향으로 흐르며 아랄해로 유입된다. 옥수스강이 아랄 해와 만나는 지점에서 거대한 삼각주가 형성되는데, 이것이 화레즘 지역으로 히바 칸국이 이 지역에 자리잡았다. 옥수스강 북쪽은 부하라와 사마르칸트와 같은 교역도시들에게 수자원을 제공하는 제라프샨강이 흐르고 있다. 다른 거대 상업도시에는 페르가나 분지 입구에 위치한 타슈켄트가 있다. 옥수스강 북쪽은 트란스옥시아나[8] 또는 소그디아나라고 부르는데, 소그디아는 비단길을 장악한 소그드인들이 이 지역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9]
키질쿰 사막과 준사막이 옥수스강과 시르다리야강 사이에 있으며 카라쿰 사막이 옥수스강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코페트다그산맥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호라산이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북부를 의미하며, 메르구는 메르브 인근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우스튜르트 고원이 아랄 해와 카스피 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코페트다그산맥을 가로질러 남쪽에 페르시아, 즉 이란이 위치하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원래 백인들만 존재하던 곳이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이 지역에 있던 청동기 문화 안드로노보 문화의 유목 백인들은 주위 유목 동양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안드로노보의 유목과 농경 문화가 몽골 서부 지역까지 영향을 주어 안드로노보 문화는 이후에 몽골 지역의 동양인들까지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와 몽골 서부의 동양인들은 안드로노보 문화적의 백인적인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백인과 유목 아리아인들이 중앙아시아에 정착하여 2,500년전에는 페르시아의 문화권에 편입되었고 그리스 문화를 지나서 유목 동부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서쪽과 동쪽 주위의 몽골인 등 많은 유목민족들의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10] 튀르크계인 흉노가 발흥하였고 7세기부터는 이슬람이 중앙아시아에 전파되었다. 7세기부터는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하여 거주하고 있던 튀르크계 유목민족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여 중앙아시아에서는 튀르크인들이 주도한 이슬람 문명이 존재하기 시작하였다. 티무르 왕조가 멸망하고 17세기 중반부터 러시아와 외교를 맺기 시작하였으며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에 따라 19세기 중반부터 중앙아시아 지역은 러시아에 영향을 받았고 20세기 초 소련에 합병되었다.[11]
선사 시대부터 중앙아시아는 여러 문명의 교차로였다. 이슬람 문화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비단길로 인해 인도, 동아시아, 유럽이 서로 연결되었다.[12] 교차로에 위치한 여러 지역은 부족주의, 전통주의, 근대화 사이의 분쟁을 증폭시켰다.[13]
이슬람 종교가 전파되기 이전의 중앙아시아는[14][15] 동부 이란어를 사용하는 아리아계 인종들인 박트리아인, 유목민인 소그드인, 호라스미안인 등이 거주하고 있었고, 유목민인 스키타이족과 반유목민의 파르티아인도 이 지역에서 거주했다. 중앙아시아의 아리아인들은 중앙아시아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주위의 여러 유목민족들에게 많은 문화적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스키타이족들이 주위 많은 유목민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 등이 있다. 튀르크족이 중앙아시아에서 발흥하고 나서 중앙아시아 또한 수많은 튀르크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는 이슬람과 튀르크 문명이 대표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인들은 대표적인 예로 카자흐인, 우즈베크인, 투르크멘인, 키르기스인, 위구르족 등이 있으며 다른 튀르크계 국가의 주민들도 포함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중앙아시아는 때때로 투르키스탄이라 불리기도 한다.[16][17][18]
1880~1890년쯤 즉 19세기 말에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은 러시아 제국에 편입되었으나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고 러시아 인민들이 해방되어 인민 중심의 정권이 나타나자 중앙아시아의 여러 지역도 독립하였고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소련을 구성하게 되었다.[19][20][21]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일 때에는 소련 공산주의로 인해 공산주의식 농장들과 군사 기지들도 존재하였다.[22] 소련의 해체 이후 중앙아시아의 국가들은 독립 초기의 극도로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3자리 수 이상의 인플레이션, 민족 갈등, 국경선 문제와 같은 문제를 극복하고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시장 경제에 합류했다. 타지키스탄의 내전은 종식되었으며 풍부한 자원과 경제 건설의 이점으로 이란, 터키, 미국, 러시아의 경제 외교가 이뤄지고 있다.[23]
이러한 상황에서 카자흐스탄은 국가 안보와 경제 발전을 위해 대외경제협력의 확대를 통한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외교 정책을 구사하여 많은 경제발전을 이루었다.[24] 중앙아시아 중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우즈베키스탄은 2001년 4월 북한의 경수로 건설에 자국의 인력을 투입하는 등 다른 국가와의 경제적 협력을 발전시켰다. 대우의 자동차조립공장과 같은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진출해있기도 하며 소련 연방에 속해있을 때에는 천연자원과 전략적 광물의 공급지와 완제품 판매시장의 역할을 수행해왔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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