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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 태황제 조숭(曹魏太皇帝曹嵩, ?~193년)은 후한 말의 정치가로, 자는 거고(巨高)[1]이며 예주(豫州) 패국(沛國) 초현(譙縣) 사람이다. 조조의 아버지이다. 본래 하후씨(夏侯氏)로, 하후돈과 하후연의 숙부였으나 환관인 십상시 조등의 양자가 되었다.[2][3]
본래 조숭은 환관 출신이 아니었는데, 중상시 조등이 환관이라 아들이 없었으므로 조숭을 양자로 삼았다. 조숭은 환관에게 뇌물을 바치고 서원전(西園錢) 1억 전을 바쳐 태위까지 올랐다고 전해지나, 《후한서》 본전에는 이외에 특별한 기록이 없다.[4] 속한서를 따르면 사례교위를 지냈고 영제에게 발탁돼 대사농, 대홍려를 역임하고 최열을 대신해 태위가 되었다.[1] 후한서 본기에서는 대사농을 지내다가 바로 중평 4년(187년)에 태위가 되었다고 나오며, 중평 5년(188년)에 파면되었다.[5] 이후 아들 조조가 거병하자, 따르지 않고[4] 작은 아들들과 함께 피란하여 낭야로 갔다.[4][6] 초평 4년(193년) 무렵, 서주목 도겸의 통치 구역을 지나가던 중에 살해되었는데, 후한서 조등열전에서는 도겸에게 살해되었다고 하고[4] 오서에서는 조숭이 태산에서 살해당하니 그 죄가 도겸에게 돌아갔다 하며[7] 도겸열전에서는 도겸의 별장의 사졸들이 조숭의 재물을 탐냈기 때문에 그들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6] 응소열전에서는 흥평 원년(194년)에 낭야에서 태산으로 가려 했다가 아들 조조에게 여러 차례 공격받은 도겸에게 공격을 받아 살해당했다고 한다.[8]
손자 조비가 왕에 오른 후 태왕(太王)에 추증되었고, 다시 황제에 오르자 태황제(太皇帝)로 추증됐다.
조조의 거병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조조가 대세력을 이루자, 193년 일가친척과 함께 진류로 가던 중 도겸을 만나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이후 장개의 호위를 받으며 연주로 가던 중, 조숭의 재화를 탐낸 장개에게 살해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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