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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석견과 완성군 이귀정 묘역(趙碩堅과 莞城君 李貴丁 墓域)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묘지이다. 2001년 5월 10일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17호 완성군 이귀정 묘역(莞城君 李貴丁 墓域)로 지정[1]되었다가, 2009년 6월 4일 조석견과 완성군 이귀정 묘역(趙碩堅과 莞城君 李貴丁 墓域)으로 문화재 지정명칭이 변경되었다.[2]
완성군 이귀정묘역은 이귀정을 비롯하여 그의 장인과 장모, 아들 상산군(商山君) 등 후손들의 묘역이며, 묘역 안과 주변에는 묘 10기와 석물이 다수 남아 있다.
이귀정은 조선 2대 왕인 정종의 증손으로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손자이다. 완성군은 9남을 두었는데, 차남 상산군 후손 중에서 이억손(李億孫)ㆍ이응(李凝)ㆍ이준(李準)ㆍ이명윤(李命允)ㆍ이익년(李翼年)ㆍ이규년(李奎年)ㆍ이기임(李基任)ㆍ이덕주(李德周)ㆍ이명은(李命殷)의 9명이 문과급제를 했다. 완성군의 4남 함풍군(咸豊君)은 외아들 이수광(李秀光)을 두었고 이수광의 3남 이유간(李惟侃)의 후손 중에서는 이경직(李景稷)ㆍ이경석(李景奭) 형제와 그 후손들이 자그만치 도합 34명이나 문과에 급제함으로써, 전주 이씨 문중의 소파로서는 단연 제일이었다.
함풍군가는 사상적으로 소론파인데, 일찍이 경직의 증손 이진유(李眞儒)가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노론을 배척하는 상소문의 우두머리가 되어 영조 6년(1730)에 죽음을 당하자, 아우 이진검(李眞儉)ㆍ이진휴ㆍ이진급(李眞伋)ㆍ이진위(李眞偉)도 일제히 벼슬을 버리고 강화도로 들어가 터를 잡고 조선 후기 양명학(陽明學)을 연구하여 강화학파(江華學派)를 형성하는 등 학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강화학파는 정제두(鄭齊斗)를 시조로 하는데 이후 이광명(李匡明)ㆍ이광사(李匡師)ㆍ이건방(李建芳) 등 가학(家學)으로 이어지고, 당쟁의 폐해를 비판하고 갑오개혁이 단행되자 강화로 낙향하였던 이건창(李建昌)과 일제강점기에 국학 진흥에 힘썼던 이건방의 제자 정인보(鄭寅普)에 의해 근대적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강화학파는 박은식(朴殷植)ㆍ신채호(申采浩)ㆍ김택영(金澤榮) 등 한말에 활약하였던 민족주의 학자들에게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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