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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1923–2006)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조남철(趙南哲, 1923년 11월 30일 ~ 2006년 7월 2일)은 대한민국의 프로 바둑 기사이다. 대한민국 출신 바둑 기사 사상 최초의 일본기원 소속 프로 바둑 기사이다. 또 한국 현대 바둑의 개척자이며 한국기원의 전신인 한성기원의 설립자이다. 한국기원의 명예 이사장직을 지냈다. 국수전에서 9연승을 하는 등,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 기사로 활약했고 한국 바둑의 실력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 조치훈의 숙부이기도 하다.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바둑을 배워 눈부신 성장을 보였다. 1934년에 기타니 미노루가 중국을 방문한 후에 일본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울에 들렀을 때 조남철의 소문을 듣고, 지도 바둑을 둔 바 있었다. 기타니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문하에 입문을 권하였고, 조남철은 1937년에 14세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기타니의 문하생이 되었다. 1941년 17세의 나이로 일본기원의 초단이 됨에 따라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기원의 프로 기사가 되었다. 1943년에 귀향하여 조선 땅에 있다가 2년 후 해방을 맞이하였다.
전후에 일본 기원을 모델로 하여 바둑 조직 설립을 목표로 하여 1945년에 한성기원을 설립하였고, 1948년에 조선기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49년 다시 대한기원으로, 1954년 사단법인 한국기원, 1969년 현재의 재단법인 한국기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1] 1950년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실시된 승단 결정전을 통해 3단으로 인정받았다. 그 후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었다. 1954년 《위기개론》(圍碁槪論)을 펴내 일본식 바둑용어를 우리말로 고치는 데 큰 공헌을 했다.[1] 종전 후에 다시 바둑 단체 설립을 진행하여, 1955년에 한국기원을 설립하였다. 1956년부터 시작된 국수전에서는 제1기부터 9연패 하는 등 50~60년대 한국 바둑계에서 최고 기사로서 활약하였다. 또 한국의 김인, 조상연(조치훈의 형), 조치훈, 조훈현 등의 일본 유학을 지원했다.[1]
1983년에 9단으로 승단하였고, 1984년에 한국기원의 명예이사장이 됐으며 일본기원으로부터 오쿠라상을 받았다. 1984년 일본기원대창상(日本棋院大倉賞), 1989년에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1994년 바둑문화상 감투상을 받았고, 1998년에 제4회 운경상 문화언론부문상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1995년 명예 국수 칭호를 수여했다. 명예 국수는 조남철 9단이 유일하다.[2] 2006년에 노환으로 84세로 사망했다. 빈소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조화를 보내 애도했고,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한국기원과 동아일보는 영결식장에서 고인에게 대한민국 최초의 대국수(大國手)칭호를 헌정하였다.
저서로는 <위기개론(圍碁槪論)>‧<사활의 기초>‧<행마의 급소>‧<흑백의 발자취>‧<정석정해>‧<포석의 요령>‧<일본명인기사전집>‧<바둑에 살다> 등이 있으며, 회고록 <세 번의 눈물>이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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