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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 54 지원병 연대는 미국 남북 전쟁 기간 중 활약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으로 구성된 정규 보병연대로서, 자유 흑인들과 도망노예들을 사병으로, 장교 및 부사관들은 백인들로 구성되어 편성되었으나, 윌리엄 H. 카니같은 흑인 부사관들도 있었다.
남북전쟁 발발 후, 미국의 흑인들도 북군에 복무하기를 희망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모두 "이 전쟁은 연방을 위한 백인들의 전쟁"이라는 이유로 입대를 거부당했다. 그러나, 1862년 노예 해방 선언 이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흑인(African - American)의 입대를 허용하였다. 전쟁성 장관 에드윈 M. 스탠튼은 백인 장교들이 유색인 부대를 지휘하게 하도록 결정했고, 1863년 초, 매사추세츠 주지사 존 A. 앤드루가 전쟁성에 흑인 지원병 연대 창설을 요청하여 승인을 받음으로써 1863년 3월에 54연대가 창설되었다.
초대 지휘관은 로버트 굴드 쇼 대령이었으며, 쇼 대령은 앤드루 주지사가 직접 선택한 인물이었다. 연대의 나머지 백인 장교들은 쇼가 직접 엄선해서 선택했다. 모 기지는 매사추세츠주 레드빌에 위치한 캠프 메이지[1]에 두었고, 쇼 대령의 부모를 포함한 노예제도 폐지론자들이 지원병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 부대에는 최초의 흑인 민권운동가인 프레드릭 더글라스의 아들도 있었다. 앤드루 주지사는 이들 흑인 지원병들에게 백인 지원병들과 동등한 보수 및 대우를 약속했고, 54연대는 백인 장교 37명과 흑인 사병 1,007명으로 구성되었다. 1,007명 중에서 매사추세츠주 출신은 133명에 불과했다. 보스턴 출신이 27명, 뉴베드포드에서 39명, 나머지 33명은 버크셔 카운티에서 왔다.[2]
쇼 대령은 본래 뉴욕 주방위군 7 연대와 매사추세츠 2 연대를 거친 장교로, 보스턴의 명망가 출신으로서 노예해방론자였다. 연대의 모든 장교 및 부사관은 연대장 쇼 대령을 비롯하여 모두 백인이었으나, 미군 역사상 최초의 유색인 부사관도 배출하였다. 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역시 최초로 의회명예훈장을 수상한 윌리엄 H. 카니 상사다.
1863년 7월 18일, 54 연대는 와그너 요새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매사추세츠 54 연대는 전 병력의 40%를 잃는 큰 피해를 입었고,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전사자 중에는 연대장 쇼 대령도 포함되어 있었고, 카니 상사는 중상을 입었지만, 살아남았다.
와그너 요새 전투 후 연대는 플로리다로 이동하여 계속 참전하였으며, 와그너 요새 전투 후 수많은 흑인 부대들이 창설되어 전쟁에 참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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