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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도정(貞石都正) 증 정석군 이융생(贈貞石君 李隆生, 1409년 ~ 1464년 11월 18일(음력 10월 10일)))은 조선 전기의 왕자, 성리학자로, 조선 제2대 임금 정종의 14남이자 서14남이다. 생모는 숙의 기씨이다. 시호는 정희(靖僖)이다. 생전의 작위는 정석도정이고, 사후 군으로 추봉되었다.
이융생 李隆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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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이융생 |
출생 | 1409년 |
사망 | 1464년 11월 18일 |
국적 | 조선 |
경력 | 정석도정 |
직업 | 왕족, 성리학자 |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2년 1월) |
부왕 정종이 양위한 후에 태어났다. 부왕 정종이 죽자 정종의 능침이 있는 경기도 개성에서 거주하였다. 1444년(세종 26년) 7월 명선대부 정석정(明善大夫 貞石正)에 제수되었다. 1457년(세조 3) 6월 모후 숙의 기씨의 상을 당하였고, 그해 12월 고신을 빼앗기고 외방으로 부처되었다. 1458년 4월 다시 충청도 홍주(洪州)로 이배되었다가 1459년(세조 5년) 2월 복관되고, 다시 정석정이 되었다.
정부인으로는 충원군부인 충주 권씨(忠原郡夫人 忠州權氏)와 첩부인으로는 비첩인 연경(蓮卿)이 있다. 자녀로는 정부인 권씨가 낳은 세 딸이 있고, 첩부인 연경(蓮卿)이 낳은 장남 허천부수 유(虛川副守 愉)와 차남 차성부수 연(車城副守 憐), 3남 마천부수 이(馬川副守 怡), 4남 횡천부수 겸(橫川副守 慊)이 있다. 정석군은 도덕을 근원으로 수학하였으며 문장이 수절(秀絶)하고 재덕 또한 높아서, 묘당(廟堂)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매번 겸손히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1] 1460년에는 누이 상원옹주가 어렵게 사는데도 도와주지 않았다 하여 탄핵을 받았다.[2]
최종 관직은 정석도정에 이르렀으며, 1872년(고종 9년) 정석군 겸 영종정경(領宗正卿)에 추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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