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장(慈藏, 590년~658년)은 신라의 스님이었고, 율사(律師)로 알려져 있다. 출가하기 전에는 진골 출신의 귀족이었으며, 성은 김(金), 속명은 선종(善宗)이다.[1]
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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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자장(慈藏) |
출생 | 590년 |
입적 | 658년 (68세) 태백산 석남원(정암사) |
속명 | 김선종(金善宗) |
종파 | 계율종 |
저작 | 《아미타경의기(阿彌陀經義記)》 《출관행법(出觀行法)》 《제경계소(諸經戒疏)》외 |
생애
진골 출신 관리 호림공(虎林公) 김무림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를 일찍 여의자, 처자를 버리고 원녕사(元寧寺)를 지어 고골관(枯骨觀, 인생의 무상함을 마른 뼈와 같이 여기는 관념)을 닦았다.[1] 이때 선덕여왕이 재상에 임명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636년(선덕여왕 5년) 왕명으로 제자 승실 등 10여명과 함께 중국 당나라의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가사와 사리를 받고, 불도를 닦았다.[1] 훗날 화엄종의 시조가 되는 두순(杜順)과 계율종(戒律宗)의 도선(道宣)에게 배운 뒤 643년(선덕여왕 12년) 장경 1부와 불구를 가지고 돌아왔다.
분황사 주지로 있으면서 궁중과 황룡사에서 《대승론》 · 《보살계본》 등을 강론하였다.[1] 그 후 대국통이 되어 승려의 규범과 승통의 일체를 주관하였다.[1] 또한 황룡사 9층 목탑의 창건을 건의하여[2] 645년에 완성하였으며, 통도사와 금강계단을 세웠다. 전국 각처에 10여 개의 사탑을 세웠고,[1] 중국의 제도를 본받아 신라에서는 처음으로 관복을 입게 하였다. 이어 650년 진덕여왕 때 당의 연호 사용을 건의하여[1] 실시하게 하였다.
만년에는 강릉부에 수다사(水多寺)를 짓고, 후에 태백산에 석남원(정암사)을 세워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저서로 《아미타경의기》·《출관행법》·《제경계소》 등이 있다.
자장이 등장하는 작품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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