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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수(1942년 4월 2일 ~ )는 대한민국의 작곡가이다.
임종수는 1942년 전북 순창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이리 (현 익산)로 이사를 간 뒤 남성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섰다. 그는 처음에 가수의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1967년 당시 작곡가 나화랑으로부터 <호반의 등불>이라는 곡을 받아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데뷔 이후 방송국 전속가수로 활동하였지만 미 8군 부대에서 유행하던 팝송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자신은 창법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가수를 그만두게 되었다. 결국 자신을 데뷔시켜 준 나화랑의 추천으로 작곡가로 되기를 결심하였다. 1970년에 임종수는 오아시스레코드사에 찾아가 당대 최고의 가수 나훈아를 찾아가 자신이 작곡한 <차창에 어린 모습>이라는 곡을 들려주었고 그에 나훈아는 흔쾌히 승락하여 방송에 전파를 타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가사에 무정이 들어 갔다는 이유로 방송불가판정을 받았다. 1972년, 그는 나훈아를 만났는데 나훈아가 말하길 "<차창에 어린 모습>이 멜로디는 좋은데 가사가 아닙니다. 어차피 방송에 나가지 못할테니 가사를 새로 바꾸고 리듬도 고고리듬으로 편곡해서 다시 취입합시다." 라고 제안을 해서 그전에 같이 작업한 정통 트로트 곡인 <차창에 어린 모습>을 고고리듬으로 편곡하고 가사를 새로 다시 개사를 해서 <고향역>이란 제목으로 나훈아가 불렀는데 발표 당시에는 반응이 없었으나 방송국 PD 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나훈아의 뭍혀잇는 노래 중에서 괜찮은 노래 TOP 10를 선정했는데 그중에 <고향역>이 1위로 선정이 돼서 그곡을 타이틀로 앨범을 재발표했는데 그때 곡이 히트하면서 유명 작곡가 반열에 올랐다. 이로써 임종수는 나훈아의 측근이 되었다. 1976년에 자신의 아내의 생활상을 반영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작곡,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 이후에도 전국노래자랑 을 1990년부터 15년 동안 심사위원을 했었고 꾸준히 작품활동을 했고 1991년에 <무정>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타이틀로 한 앨범을 내서 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딱 한번) 지금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며 히트곡메이커로 자리잡았으며 충청대학 초빙교수로 활동중이다.
충청대학 초빙교수 (2010 ~)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 (1980 ~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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