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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축구 선수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리 다다나리(일본어: 李 忠成 り ただなり[*], 1985년 12월 19일~)는 재일 한국인 4세 출신 일본의 축구 선수로, 한국 이름은 이충성 (李忠成), 일본식 통명은 오야마 다다나리(일본어: 大山忠成)이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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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정보 | |||||||||||||||||
본명 | 李忠成 | ||||||||||||||||
출생일 | 1985년 12월 19일 | (38세)||||||||||||||||
출생지 | 일본 도쿄도 니시토쿄시 | ||||||||||||||||
키 | 182cm |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
청소년 구단 기록 | |||||||||||||||||
1998-2000 | 요코가와 무사시노 | ||||||||||||||||
2001-2003 | FC 도쿄 | ||||||||||||||||
구단 기록* | |||||||||||||||||
연도 | 구단 | 출전 | (득점) | ||||||||||||||
2004 | FC 도쿄 | 0 | (0) | ||||||||||||||
2005-2009 | 가시와 레이솔 | 108 | (24) | ||||||||||||||
2009-2012 | 산프레체 히로시마 | 70 | (26) | ||||||||||||||
2012-2014 | 사우샘프턴 | 7 | (1) | ||||||||||||||
2013 | → FC 도쿄 (임대) | 13 | (4) | ||||||||||||||
2014-2018 | 우라와 레즈 | 133 | (24) | ||||||||||||||
2019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10 | (1) | ||||||||||||||
2020-2021 | 교토 상가 | 22 | (0) | ||||||||||||||
2022-2023 | 알비렉스 니가타 (S) | 1 | (0) | ||||||||||||||
국가대표팀 기록 | |||||||||||||||||
2004 | 대한민국 U-20 | 1 | (0) | ||||||||||||||
2007-2008 | 일본 U-23 | 12 | (4) | ||||||||||||||
2011-2012 | 일본 | 11 | (2) | ||||||||||||||
메달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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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21년 12월 29일 기준임. |
2004년 대한민국 U-19 축구 국가대표팀 예비 후보로 뽑혔고 이충성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보다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고 싶었기 때문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였던 한국인 선수의 권유로 파주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 이후 부상까지 겹쳐 부진하였지만 점차 실력을 발휘하였다. 2006년 일본 올림픽 대표팀(U-23) 감독이 귀화를 권유하자 2007년 일본어 이름인 리 다다나리로 개명하고 일본으로 귀화하였다. 2008년에는 일본 올림픽 대표팀(U-23)의 일원이었으며 FC 도쿄 시절 같은 팀 동료였던 오장은 선수와 절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시와 레이솔에서 뛸 때는 같은 팀의 홍명보가 달았던 20번을, 산프레체 히로시마로 이적하였을때는 같은 팀의 노정윤이 달았던 9번을 달아 화제가 되었다. 일본과 오스트레일리아의 2011년 AFC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연장전 후반 4분에 결승골(이 골은 그의 A매치 첫 골이기도 하다)을 넣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우승컵을 안겼다.
1985년 12월 19일 조선적의 재일 교포 4세로 태어났다.[1] 재일 교포 3세인 이충성의 아버지는 원래 실업구단인 요코하마 트라이스타 SC 소속의 축구 선수였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도쿄 조선 제9초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릴 때 현지 코믹 네요 FC에 재학을 하고 있을 당시 팀 동료로 이치카와 마사히코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요코가와(현 요코가와 무사시노 FC) 주니어 유스팀의 시험을 통과하였기 때문에, 6학년에서 같은 팀 연습에 참가하게 되었다.[2] 이후 중학교를 민족학교가 아닌 일본학교로 진학하면서 대한민국 국적으로 바꿨다. 당시에도 '이충성'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지켰다.[1]
2004년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U-19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뽑혔고, 부상으로 부진했지만 점차 실력을 발휘하였다. 2007년 일본어 이름인 리 다다나리(Lee Tadanari)로 개명하고 일본으로 귀화하였다.[3]
2011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1년 AFC 아시안컵에서 자케로니 감독이 이끄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2011년 1월 9일 조별 예선 1차전 요르단과의 후반전에 교체 출전하여 A매치 첫 출전을 하였지만, 그다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하였다. 1월 29일 할리파 국제경기장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와 결승전에서는 연장 전반 8분부터 마에다 료이치와 교체투입되어 연장 후반 4분 자신의 A매치 첫 골이자 결승골을 넣어서 일본이 아시안컵 우승을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4]
2012년 1월 프리미어리그의 사우샘프턴으로 이적하였다. 이적 후 2골을 넣었으나 오른쪽 발가락 골절 부상 후 수술을 받아 시즌아웃 되었으며,[5] 부상에서 회복한 이후에는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여 2013년 2월 친정팀인 FC 도쿄로 시즌 종료까지 4개월 단기 임대 이적을 하였다. 이 기간 동안 13경기 4골을 넣었으며 당초 예상한 것 보다는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으로 2013년 6월 13일 사우샘프턴으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2014년 1월 15일 사우샘프턴은 이충성의 방출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일본인 연상 모델인 도요바 사키와 결혼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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