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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토토로》(일본어: となりのトトロ, 영어: My Neighbor Totoro)는 일본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로 일본 농촌의 어린 두 자매 사츠키와 메이가 숲의 요정 토토로를 만나서 판타지를 경험하게 되는 것을 그린 1988년 애니메이션 영화다.
토토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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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식 한자 표기 | となりのトトロ |
가나 표기 | となりのととろ |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 토나리노 토토로 |
로마자 | Tonarinototoro |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더불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이다.
1958년의(설정상 1950년대 후반) 일본을 무대로 한 판타지 작품으로 1988년 4월 16일에 일본에서 개봉된 후 약 80만 명의 관객 동원 수를 기록하였다. 개봉 당시 《이웃집 토토로》는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 《반딧불의 묘》와 동시 상영되었는데 제작 시에도 단독으로 제출한 '이웃집 토토로'의 기획서가 거절당한 후에, 제작자인 스즈키 도시오가 '반딧불의 묘'와 함께 제출하여 통과 된 후[1] '이웃집 토토로'와 '반딧불의 묘'가 함께 제작되었다.
1955년 일본의 아름다운 시골 마을. 상냥하고 의젓한 11살 사츠키와 장난꾸러기에 호기심 많은 4살의 메이는 사이좋은 자매로 아빠와 함께 도시를 떠나 시골로 이사온다. 자상한 아빠 구사카베 다쓰오는 도쿄에서 대학 연구원이며, 입원 중이지만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엄마가 있다. 곧 퇴원하실 엄마를 공기가 맑은 곳에서 맞이하기 위해서다. 숲 한복판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낡은 집을 보며 자매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호기심으로 잔뜩 들뜬다.
사츠키가 학교에 간 뒤, 혼자 숲에서 놀고 있던 메이는 눈 앞을 지나가는 조그맣고 이상한 동물을 발견한다. 그리고 뒤를 쫓아 숲속으로 들어간다. 미로처럼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다 큰 나무 밑둥으로 떨어지는 메이. 그곳에서 메이는 도토리 나무의 요정인 토토로를 만난다. 메이는 사츠키가 돌아오자마자 토토로를 만난 것을 자랑하지만 사츠키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몹시 쏟아지던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들고 아빠를 기다리다가 사츠키도 토토로를 만나게 된다.
비를 맞는 토토로에게 우산을 빌려주자 토토로는 답례로 도토리 씨앗을 건넨다. 토토로와의 만남으로 행복감에 부풀어있는 사츠키와 메이. 그러나 그때 병원에서 어머니의 퇴원이 연기되었다는 전보가 온다. 불안해하는 메이는 혼자 엄마를 찾아 병원으로 떠났다가 길을 잃는다. 온 동네를 뒤졌지만 메이는 흔적조차 없고 저수지에선 어린 여자아이의 샌달이 발견된다. 사츠키는 메이를 찾기 위해 애타게 토토로를 부르는데...[2]
본작의 원형이 되는 구상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1970년대에 닛폰 애니메이션,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에 재적하고 있었을 무렵의 이미지 보드에 남아있다. 이 시점에서는 주인공의 여자 아이는 한 명으로,메이를 닮은 외모를 한 5세의 여자 아이이며, 사츠키와 메이의 디자인과 성격이 혼재하고 있었다. 텔레비전 스페셜 등으로의 채용을 모색하고 있었다고 여겨지지만, 기획서는 없다. 이미지의 일부는 미야자키가 A프로덕션에 재적했을 때에 설정이나 연출에 참가한 〈팬더 고 팬더〉에서 사용되었다.
미야자키에 의하면, 당초 여자 아이가 토토로를 만나는 장면을 비가 내리는 버스 정류장과 낮 때와의 2개의 장면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있던 참에, 영화화 결정이 1년을 앞둔 시기에 들어가 주인공을 2명의 자매로 하는 것을 생각해 내, 사츠키와 메이 2명이 태어났다고 한다.[3] 한편, 현재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인 스즈키 도시오는 2008년 7월 12일 방영한 특별 프로그램에서 〈원래 동시 상영의 〈반딧불의 묘〉처럼 60분 정도였던 예정이,〈반딧불의 묘〉가 90분으로 늘어나게 되었으므로 토토로도 80분 이상으로 하자는 이야기가 되었다. 어떻게 20분이나 늘릴까 고민하고 있었지만, 미야자키 감독이 〈여자 아이 1명 늘리면 20분 정도 늘어날 것이다〉라고 발언해 2명이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미야자키는 〈천공의 성 라퓨타〉의 공개를 끝낸 후, 1986년 11월에 〈토토로〉의 기획서를 도쿠마 서점에 제출한다. 그러나, 무대가 1950년대 후반으로 되어있는 것이나 소재가 수수한 것에 가세해 당초 60분 정도의 중편 영화로서 기획되었기 때문에 단독으로의 전국 공개는 어려웠던 일로부터, 제작 기획 회의에서 승인을 얻기까지는 도달하지 않았다. 거기에, 타카하타 이사오가 검토하고 있던 〈반딧불의 묘〉를 동시 상영하는 안이 부상해, 도쿠마 서점 사장인 도쿠마 야스요시의 요청으로 〈반딧불의 묘〉의 원작 소설을 간행한 신초샤가 〈반딧불의 묘〉의 출자, 제작에 참가하게 되어 중편 2개 체제가 확립한다.
제작 모체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선택되었다. 다카하타반이 종래의 스튜디오를 사용하고, 미야자키반은 신설한 제2 스튜디오에 준비실을 설치한다. 다카하타, 미야자키의 신뢰를 받는 주요 스탭(애니메이터)은 한정되어 있어 제작사측은 고심했다. 다카하타측이 구면의 베테랑을 모은 한편, 미야자키측은 작화 감독 사토 요시하루, 미술 감독의 오가 가즈오 등 새롭게 참가한 스탭을 중심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두 작품은 60분의 중편이 될 것이었지만, 결국은 예정을 넘어 90분 전후의 장편 영화가 되었다. 미야자키에 의하면 그림 콘티를 다 쓴 단계에서 이 작품이 예정의 시간에 완전히 맞지 않는 것을 알게 되고, 다카하타의 〈반딧불의 묘〉도 동일한 상황인 것을 듣게 되어 시간을 연장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또 〈반딧불의 묘〉에서 등장하는 반딧불이나 토마토는 일절 보이지 않기로 했다는 등, 중복을 의식해 피했다고 말하고 있다.[3]
시대 설정은 1950년대 초로 되어 있지만, 미야자키는 〈텔레비전이 없었던 시대〉라고 말하고 있어, 특정의 연대를 염두에 두어 연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4] 미야자키는 토토로와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신록이 풍부한 취락의 이미지의 유래에 대해서, 닛폰 애니메이션이 있는 세이세키사쿠라가오카, 친족이 여관을 운영해 어릴적 잘 논 쓰루마키 온천(가나가와현 하다노시)의 모토야·진야, 어렸을적에 보고 자란 간다 강, 미야자키의 자택이 있는 도코로자와,미술 감독인 오가 가즈오의 고향 아키타 등 여러 가지 지명이 인용했는데,작품의 풍경은 이것들이 들어가 섞인 것이며, 구체적인 작품의 무대를 정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출처 필요] 그 후, 미야자키가 1990년대부터의 〈토토로의 숲〉 보전 운동에 종사하거나 도코로자와의 지명이 형태를 바꾼채 작품에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고, 도코로자와시가 그 무대로서 소개되기도 한다.
1989년 이후, 닛폰 텔레비전 방송망의 〈금요일 로드쇼〉에서 지브리 최신작 공개 직전 등의 시기에 방영되어 시청률은 매회 23% 전후를 기록한다. 토토로의 캐릭터 상품 제 1호로 영화 공개시에 선전용으로 판매한 봉제인형은 합계 666,920개를 판매하고[5], 1989년말에 선 아로에서 발매된 봉제인형(전술의 물건과는 다르다)을 1990년에 〈이웃집 토토로〉가 텔레비전 방영되었을 때에 시청자 선물로 증정했는데, 닛폰 TV에 200만통의 응모가 쇄도했다.[5] 선 아로에서 발매된 〈이웃집 토토로〉의 봉제인형은 1991년 2월 시점에서 큰 토토로가 합계 약 100만개, 중간 토토로와 작은 토토로가 합계 약 60만개, 그 외가 합계 약 50만개(총합계 약 210만개)를 판매했다.[6] 캐릭터 인기와 판매의 호조에 대해서 지브리의 프로듀서는 〈제 1의 수입 일부〉가 되었다고 표현하였다.[7] 1997년 6월 27일에는 브에나 비스타 홈 엔터테인먼트에서 비디오가 발매되어 발매 후 약 1개월만에 100만개를 출하하는 히트상품이 되었다.[8] 2001년 9월 28일에는 브에나 비스타 홈 엔터테인먼트에서 DVD가 발매되었다. 이 제품도 2005년 10월 31일자 오리콘 DVD 차트에서 200주 차트 인이라고 하는 기록을 달성.[9] 2005년 개최된 〈2005년 세계 박람회(사랑·지구박)〉에서는 본작에 등장한 〈구사카베 가(家)〉가 〈사쓰키와 메이의 집〉으로서 재현되어 박람회장에 건설되었다. 호평에 의해 박람회 종료 후에도 보존되어 현재는 사랑·지구박기념 공원에서 예약제로 견학할 수 있다.
본작의 히트에 의해,각지에서 본작을 연상시키는 장소나 물건이 화제가 되어 관광 명소가 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작품의 고유 명사에는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시에서 도쿄도 히가시무라야마시에 걸쳐 있는 사야마 구릉의 지명을 바탕으로 한 것이 있다.
〈토토로〉라는 이름은 〈도코로자와의 이웃 도깨비〉에 유래하였다.[11] 초기 설정에서는 큰 토토로는 〈미민즈크〉로 1302세, 중간 토토로는 〈즈크〉로 679세,작은 토토로는 〈민〉으로 109세라는 나이였다.[12]
쿠사카베 사츠키(일본어: 草壁サツキ)
쿠사카베 메이(일본어: 草壁メイ)
쿠사카베 타쓰오(일본어: 草壁タツオ)
쿠사카베 야스코(일본어: 草壁靖子)
칸타(본명: 오가키 칸후토시)(일본어: 大垣勘太, カンタ)
토토로
성우: 스즈키 레이코
성우: 나카무라 다이키
토토로의 스토리를 이토이 시게사토에 의한 내레이션과 오케스트라에 의한 음악으로 재현. 2003년에 히사이시 조의 콘서트에서 초연되었다.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산책〉의 멜로디에 맞추어 오케스트라의 악기 소개를 한다. CD와 오케스트라 악보가 발매되었다.
일본에서는 이웃집 토토로 개봉당시 약 80만명이 관람했고, 1988년 비디오 렌탈 수입으로 5억8,800만 엔의 수입을 거뒀다. 2005년까지 흥행 총액은 11억 7천만엔에 달했고, 2019년에는 12억 2477만엔에 이르렀다. 이웃집 토토로는 2002년이 되어서야 다른 나라에서 개봉했다.
“ | 골든위크의 출근일이라서 거래처로부터의 전화도 적고,너무나 평화로운 제 3스튜디오의 2층입니다. 근데 걸려오는 전화라곤 〈토토로는 죽음의 신입니까?〉 라고 하는 문의뿐. 여러분,염려하시지 말고 토토로가 죽음의 신이다,메이는 죽어있다고 말하는 사실이나 설정은 〈이웃집 토토로〉에는 아주 없습니다. 최근에는 도시전설의 하나로...누군가가 말하기 시작했던것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인터넷을 통해 퍼져 버린것 같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편에서 자매의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작화상에서 필요 없다고 판단해 생략했을 뿐입니다. 홍보부에서 보다 정식으로 말씀드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 ” |
— 스튜디오 지브리 홍보부 , 스튜디오 지브리 공식 블로그 |
“ | 그대로 어린 채로 유지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않아요. 그렇다면 아,이제 그 사람들(사쓰키,메이)은 완전히 성인이 되어 있습니다. 여전히 좋은 딸로 지내고,그 후 결혼한 다음은 모르죠(웃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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