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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미아 제전(그리스어: Ίσθμια)은 올림피아 제전, 피티아 제전, 네메아 제전과 함께 고대 그리스 시대의 4대 대회 중 하나로, 개최지인 코린토스 지협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코린토스 근처에서 2년마다 열린 경기로, 포세이돈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경고린도전서 9:25에 바울이 예로 든 운동경기가 바로 이 이스트미아 제전이다.

기원

이 축제는 멜리케르테스의 위령제로 시시포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코린토스의 창건자이며 왕이기도 하였다. 그는 멜리케르테스의 시신을 코린토스 지협에 묻은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1][2] 로마 시대에는 멜리케르테스는 이 지역에서 숭배 받는 존재가 되었다.[3]

고대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이었던 테세우스는 그때까지 폐쇄적인 야간 의식에 불과했던 이 멜리케르테스 위령제를 포세이돈에게 바치는 본격적인 체육 대회로 발전시켰다. 이 대회는 그리스 전역에서 개최되었으며, 그 발전과 인기는 헤라클레스에 의해 창설된 올림피아 제전에 필적할 정도가 되었다.[4] 또한 테세우스는 아테네로 온 내빈객에게 전열석의 권한을 주는 것도 결정했다. 그 외에도 변경된 점은 기원전 7세기 코린토스의 참주인 키프셀루스가 이 대회를 옛 영화로운 모습으로 되돌린 것이다.

만약 최초의 올림픽이 기원전 776년에 시작되었다는 설을 지지하는 경우 이스토미아 제전은 기원전 582년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적어도 기원전 5세기(핀다로스가 살아있을 때)까지 이스토미아 제전의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화관은 셀러리가 사용되고 있었지만, 이후 소나무로 바뀌었다. 승자에게는 이밖에도 상 또는 승리를 축하하는 노래가 주어졌다. 또한 아테네 사람들이 승자인 경우, 아테네에서는 추가로 100 드라크마의 상금도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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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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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미아 제전에 참가하여 그리스의 자유 회복을 선언하는 플라미니우스

기원전 228년 또는 기원전 229년 이후 로마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원전 196년에 열린 대회에서는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마케도니아 왕국의 지배에서 그리스의 해방을 선언한 장소로도 이용되었다.

대회 시작 이후 코린트가 항상 대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기원전 146년로마 제국에 의해 코린트가 멸망된 이후에도 이 대회는 계속되었지만, 관리는 시키온이 하게 되었다. 그 후, 고린도는 기원전 44년 카이사르에 의해 재건되었다. 이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도의 의식으로 탄압할 때까지 대회는 매우 번창했다.

경기

고대 올림픽과 동등한 것으로 간주된 경기:

같이 보기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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