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영어 : Iraq War ) 또는 제2차 걸프 전쟁, 이라크 자유 작전 (영어 : Operation lraq Freedom )은 2003년 3월 20일 미국 의 이라크 침공 으로 시작되어, 2011년 12월 15일 종전[46] 되었다. 그리고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하자마자 이라크는 내란 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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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이라크 전쟁, 날짜 ...
이라크 전쟁 테러와의 전쟁 의 일부 이라크 전쟁 몽타주교전국
침공 당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폴란드
쿠르드 자치구
지원국
이탈리아 [1]
캐나다 [2]
네덜란드 [3]
침공 당시
이라크
침공 이후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신이라크 정부
지원국
이란 [4] [5]
쿠르드 자치구
침공 이후
이라크 지역 정당
지원국
시리아
수니파 집단
알카에다
안사르 알 이슬람
시아파 집단
지원국:
이란
지휘관
이야드 알라위
이브라힘 알자파리
누리 알말리키
조지 W. 부시
토미 프랭크스
버락 오바마
도널드 럼즈펠드
로버트 게이츠
리카르도 산체즈
레이먼드 오디에르노
데이비드 페트류스
조지 W. 케이시
로이드 오스틴
토니 블레어
고든 브라운
데이비드 캐머런
존 하워드
케빈 러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안데르스 F. 라스무센
사담 후세인 †
쿠사이 후세인 †
우다이 후세인 †
알리 핫산 알 마지드 †
바르잔 이브라힘
이자트 이브라힘 알두리
수니파 무장단체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 †
아부 아이유브 알마스리 †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 †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이스마일 주부리
아부 압둘라 알샤피
시아파 무장단체 지도자
가셈 솔레이마니
무크타다 알사드르
아부 데라
콰이스 카자리 병력
침공 당시 : 309,000명
192,000명[6]
45,000명
2,000명
370명[7]
194명
70,000명
MNF-I : 176,000명
USF-I : 112,000명
보안담당관 : 6,000-7,000명[8]
이라크 보안군 : 805,629명[9]
페쉬메르가 : 375,000명[10]
침공 당시
375,000명
이라크 특수보위대 12,000명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70,000명 -75,000명
페다인 사담 30,000명
수니파 반군 : 70,000명[11]
알카에다 : 1,300명 (2006) [12]
이라크 이슬람 국가 : 1,000명 (2008) 피해 규모
이라크 보안군
MNF-I
사망: 4,815명[15] [16]
실종/포로 : 17명 (미국)[19]
부상 : 32,776명 이상
부상 및 기타 질병 : 51,139
민간 무장단체
이라크의 아들들
전체 사망: 25,285명
전체 부상: 117,961명
이라크군 : 7,600–10,800명[42] [43]
반군
전체 사망: 34,144–37,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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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1441호에 의해 이라크를 사찰했으나 전면적인 협력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미국이, 군사 제재를 위해서는 새로운 결의가 필요하다는 프랑스와 독일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전쟁을 감행했다.
침공 약 1달만에 미군이 이라크 전역을 점령하며 바트당 정부가 축출되었다.
미군에 의해 교육, 훈련, 창설된 이라크 제6군(2009)
2006년 결국 후세인의 두 아들인 우다이 후세인 과 쿠사이 후세인 도 열화 우라늄 탄 에 맞아 숨을 거두고[47] 이후 후세인이 미군에 체포되며 종전되었다.
후세인 독재 세력의 지지 기반을 와해시킴으로써 그동안 유지되던 이라크 내 치안이 와해되었으며, 권력 공백 속에 보복 살해 등 종파 분쟁이 발생하고 치안 부재로 인한 무장 세력의 형성이 일어났고 이들의 저항으로 인해 미군 수천 명이 전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연대급 병력이 전사한 점은 걸프전쟁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이라크를 정복한 것과는 달리 미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뒤늦게 부족한 지상군을 증원하고 이라크 경찰과 군을 재건하여 미군 전사자 수가 크게 줄고 안정을 되찾아 갔으나 미군이 철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7년이 지난 2010년 8월 20일 모든 전투 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 2011년 12월 15일 미국 에서 공식으로 종전을 선언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18일 미군 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하였다.
9.11 테러 로 인해 테러와의 전쟁 을 치르던 미국이 거짓 정보와 명분을 내세워 9.11 테러와 무관한 침공을 벌여 수많은 희생자와 혼란을 발생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48]
Elaheh Rostami-Povey, Iran's Influence: A Religious-Political State and Society in its Region, p130-154, Zed Books Ltd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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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raq War” (PDF) . U.S. Department of State. 2012년 11월 18일에 확인함 .
“ POW and MIA in Iraq and Afghanistan Fast Facts” . CNN. 2014년 6월 5일에 확인함 . ; As of July 2012, seven American private contractors remain unaccounted for. Their names are: Jeffrey Ake, Aban Elias, Abbas Kareem Naama, Neenus Khoshaba, Bob Hamze, Dean Sadek and Hussain al-Zurufi. Healy, Jack, "With Withdrawal Looming, Trails Grow Cold For Americans Missing In Iraq ", The New York Times , 22 May 2011, p. 6.
“ Casualty” (PDF) . U.S. Department of Defense. 16 January 2013에 원본 문서 (PDF) 에서 보존된 문서. 18 November 2012에 확인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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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597명, , 2004년부터 2009년까지 23,984명 2004년 3월 652명, 2009년 3월 45명, Archived 2009년 9월 3일 - 웨이백 머신 2010년 676명 2011년 590명
이희수. 《 세상을 바꾼 이슬람》 . 다른. 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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