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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선(尹昇善, 1904년 8월 7일 - 1966년 7월 20일)은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군인이며, 대한민국의 해군, 해병대 창설에 참여하였다. 교육자 윤치오의 넷째 아들이며 윤영렬의 손자이다. 4대 대통령 윤보선의 사촌 동생이며, 군의관 윤치왕의 5촌 조카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일제강점기에 황해도청 내무부 서기로 임용되었다가 1939년 입대하여 일본 관동군에서 복무했다. 해방 후 귀국하여 손원일의 해사대에 참여했고, 1947년 민간 기업에 근무했다. 1948년 4월 군 입대 이후 대한민국 해군과 대한민국 해병대의 창군주역으로 참여, 활동했고 6.25 전쟁에는 해병대 제1전투단 소속으로 참전하였다.
1904년 경성부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대한제국의 관료 윤치오이고, 어머니는 그의 첫 부인 이숙경(李淑卿)이다. 한국의 초기 해부학, 병리학자이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며 부총장과 총장을 지낸 윤일선은 그의 형이다. 상공부장관과 서울특별시장, 대한민국의 4대 대통령을 역임한 윤보선은 그의 사촌 형이다. 조선의 계몽사상가이자 사회운동가 좌옹 윤치호는 그의 5촌 당숙이 된다.
그는 키가 컸다 한다.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황해도 내무부 토목과 토목기수로 부임하였다. 1929년 황해도 내무부 토목과 건축기수가 되었다. 1928년 12월 28일 이만구의 딸 이을남과 혼인하였다.[1] 그런데 다음 달인 1929년 1월 13일에 다시 결혼식이 보도된다. 1929년 1월 13일 이만구의 딸 이을남과 혼인하였다.[2] 이을남은 용인군 출신으로, 당시 용인군 동남면 천이리(泉二里) 신부 집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한다.[2] 1931년 7월 14일 황해도청 토목기수, 회계과 계원으로 발령[3], 1939년까지 재직했다. 그 뒤 일본군에 입대, 관동군사령부 대위[4], 일본군 관동군사령부 시설장교를 역임하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 귀국, 8월 21일 손원일의 해사협회(海事協會, Marine Affairs Association) 조직에 참여하였고, 11월 21일 역시 손원일, 정긍모(鄭兢謨) 등이 서울 안동교회에서 창설한 해방병단 창립에 참여하였다.
1945년 9월 2일 미군정이 주둔하면서 9월 15일 미군정청 건축서 공사과장이 되었다. 미군정 공사과장직을 사임한 시점은 알려져 있지 않다. 1947년 4월 28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2번지에 토목, 건축, 수로 공사를 감독하는 회사 응용공업주식회사(應用工營株式會社) 창립에 참여하고, 취체역 부사장이 되었다.[5]
이후 1948년 4월 다시 군에 입대 국군 해군 창설에 참여하였으며, 백두산함 인수에 관여하였고, 1948년 9월 해군이 창설되어 해군 장교가 됐다. 6.25 전쟁 발발때에는 해군 소위로, 해병대 제1전투단의 11중대 1소대장으로 39고지에 참전, 중국 인민군과 교전했다. 1950년 11월 23일에는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함재기가 진해와 거제도 사이의 해상에서 추락하자, 윤승선은 당시 와병중이었으나 직접 바닷물에 입수, 함재기를 찾아내 화제가 되었다.[6] 그뒤 해군 소령으로 승진, 51년 8월 3대 해군 시설감으로 임명되었다.
휴전 후 중령으로 진급, 해병대 제1상륙사단 공병참모를 거쳐, 대령으로 진급하였고 해군본부 시설감, 해병대본부 공병감 등을 지냈다. 해병대 공병감으로 재직 중, 인천 서구 금곡동에 해병대 교육단 부지를 마련하고 해병교육단의 설계와 시공을 감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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