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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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각/국형(尹先覺/國馨), 1543년 ~ 1611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파평(坡平).
윤선각 尹先覺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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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윤국형 |
출생 | 1543년 |
사망 | 1611년 |
성별 | 남성 |
국적 | 조선 |
경력 | 문신 |
생애
1568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정언, 전라도 도사, 수찬, 응교, 전한, 동부승지, 좌부승지, 부제학, 좌승지 등을 지냈다.
1592년 충청도 관찰사가 되어 임진왜란이 되자 삼도근왕병 8만으로[1][2][3]일본군에 맞서 싸우다가 이광과 함께 용인 전투에서 크게 패배했다. 이 전투로 인해 파직되었으나 다시 재등용되어 장례원판결사, 병조참판으로 특진관을 겸했고 동지중추부사를 거쳐서 광해군 초기에 공조판서를 지냈다.
가족 관계
- 증조부 : 윤지숭(尹之崇)
- 할아버지 : 윤정림(尹廷霖)
- 아버지 : 윤희렴(尹希廉)
- 어머니 : 이여경(李餘慶)의 딸
- 부인 : 조수(趙琇)의 딸
- 아들 : 윤의립(尹義立)
- 자부 : 정약(鄭爚)의 딸
- 자부 : 박문영(朴文榮)의 딸
- 아들 : 윤경립(尹敬立)
- 자부 : 이호약(李好約)의 딸
- 부인 : 조수(趙琇)의 딸
- 할아버지 : 윤정림(尹廷霖)
관련 작품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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