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AI tools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양촌집(陽村集)은 여말선초의 학자 권근의 시문집으로 전 40권으로 되어있으며 권근의 둘째 아들 권도가 세종 초에 편찬 간행하였다. 양촌은 스스로 지은 권근의 호로 고려말 충주에 유배되었을 때 현재 충주시 소태면 양촌리인 양촌에 살게 되어 양촌을 호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고, 틈만 나면 양촌으로 가려고 했던 점을 보아 양촌을 출생지로 보는 견해도 있다.[1]
<iframe width="1904" height="837" src="https://www.youtube.com/embed/KzTMN-S1tbs" title="YouTube video player"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allowfullscreen></iframe>양촌집에는 시가 980수, 글이 305수가 실려있는데, 그 종류와 권별 수는 다음과 같다.
양촌 권 문충공 유문 중간 서(陽村權文忠公遺文重刊序)로 시작한다. 양촌선생연보(陽村先生年譜)가 먼저 소개되고, 태조고황제 어제시(明太祖高皇帝御製詩) 세 수가 '조선국 수재(秀才) 권근(權近)에게 주다'는 설명 뒤에 수록되어있다. 여기에 응답하여 권근은 '응제시(應製詩): 조선국 배신(陪臣) 권근(權近) 제진(製進)'을 지어 받쳤고, 이 시는 다음과 같다.
권근이 1396년 명나라 황제 태조에게 응답하여 쓴 시 24편은 세 차례에 걸쳐 지어졌는데, 9월 15일에 8수, 같은달 22일에 10수, 10월 27일에 6수를 지어 모두 24편이다. 첫 8수는 왕경작고(王京作古), 이씨(李氏) 이거(異居), 출사(出使), 조선의 명을 받들고 경사(京師)에 오다, 서경(西京)을 지나다, 압록강(鴨綠江)을 건너다, 요동(遼東)을 지나다, 내주(萊州) 바다에 항해(航海)하다로 자신이 황제를 만나러 오기까지의 일들을 시로 지은 것이다.
그 다음 지은 10수는 상고 시대 개벽(開闢)한 동이왕(東夷王), 일본(日本)이 바라보이다, 금강산(金剛山), 신경(新京)의 지리(地理), 진한(辰韓), 마한(馬韓), 변한(弁韓), 신라(新羅), 탐라(耽羅), 대동강(大同江)로 조선의 옛 역사를 시로 지은 것이다. 여기에 단군 신화의 내용도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 지은 6수의 시는 명나라에서 머물면서 지낸 일들을 소재로 지은 시로 내빈(來賓) 누대 이름에서 고가(高歌)를 듣다, 중역(重譯) 누대 이름에서 영인(伶人)을 구경하다, 남시(南市) 누대 이름에서 잔을 들어 실컷 취해 돌아오다, 북시(北市) 누대 이름에서 소회를 말하고 낙탁(落魄)한 채 돌아오다, 취선(醉仙) 누대 이름에서 실컷 마시며 강 언덕을 바라보다, 학명루(鶴鳴樓)에 두 번째 앉아서 환패(環佩) 소리를 듣다이다.
1권에는 제진(製進)한 천감(天監)·화산(華山)·신묘시(神廟詩) 병서(幷序), 제진(製進)한 풍요(風謠) 병서, 제진한 숭화시(嵩華詩) 병서, 난죽장(蘭竹章) 병서도 포함되어 있다.
응제시는 중국과 명제의 덕을 찬양하는 것으로 사대주의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명나라 황제의 마음을 만족시켜서 그의 당초 명나라 방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서 부득이한 일이었다는 평가가 있다.
遷遺井邑市荒涼 옮기다 남은 마을 저자마저 황량하고 莽蒼盈眸過客傷 푸른 풀만 눈에 가득 길손이 상심하네 園苑有花蜂釀蜜 동산에 꽃 피니 벌들이 꿀 빚고 殿臺無主兎爲鄕 궁전에 주인 없으니 토끼가 고향 삼네 行商枉道從新郭 행상은 길을 돌아 새터로 굽어들고 坐賈移居慕舊坊 매점은 터 바꾸니 옛골목이 그립나봐 此是昔時王氏業 이는 바로 지난날 왕씨의 기업이라 檀君逝久幾更張 단군이 가고 나서 얼마나 고쳐졌나
2권에는 기와 시가 수록되어 있다.
21권에는 주옹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어떤이가 주옹에게 이유없이 배를 띄워 위험에 처해 있느냐 묻자
주옹이 육지에 거하면 나태해지므로 험한 물에 나와 있는 것이며
그 가운데에서 중심을 잘 잡아서 자신의 마음은 평온하다고 말하였고,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渺江海兮悠悠. 아득한 강해 유유한데 泛虛舟兮中流. 빈 배를 중류에 띄웠구나 載明月兮獨往. 명월을 싣고 홀로 가노니 聊卒歲以優游. 해가 마치도록 한가롭게
원본: 40권이다. 국역 원본 4권 출판과 5권으로 출간되었다.
한글 번역본 총 5권이 출간되었다.
문정공 菊齋公' 兒孫慶八十(아손경팔십)-權溥(권부) 팔십 나의 생일에 -權溥(권부) 黃菊丹楓九月天(황국단풍구월천): 노란 국화 피고, 붉은 단풍 든 구월 어느 날 炊金爨玉設華筵(취금찬옥설화연): 좋은 그릇, 맛난 음식, 화려한 잔치 상을 차렸구나 兒孫薦壽誠殊重(아손천수성수중): 자식과 손자들의 축하, 정성이 너무 기특하여 倒了霞觴骨欲仙(도료하상골욕선): 고운 술잔 기울이니 몸은 신선이 될 듯 하구나 부뚜막 爨 찬, 촌 천거할 薦 觴 잔상 炊 불땔 취 霞 놀하 殊 뛰어날 수 權 溥 호 菊齋 (字) 齊滿 露洗銀河添月色 酒盈金盞却天寒 紫泉一曲人如玉 紅燭燒殘夜未闌 이슬 빛 은하에는 달이 둥글고. 술이 가득한 술잔에는 도리어 날씨 차다 자천의 한 곡조에 사람 옥 같은데 촛불은 가믈 거리나 밤은 아직 깊지 않네
시(詩) 양촌(陽村)에 당도하다. 벼슬살이 십 년에 한 번 겨우 돌아오니 / 十載趨朝得一廻 이웃 노인 잔 들고 와 나를 위로하네 / 隣翁挈榼慰余來 사륜을 윤색하던 그 손으로 / 直將潤色絲綸手 산촌의 맥주잔을 잘도 기울여 / 能倒山村麥酒杯 선생의 외조(外祖)인 정승 문절공(文節公) 복재(復齋) 한종유(韓宗愈)가 만년에 한양(漢陽)으로 퇴와(退臥)하여 저자도(褚子島)에 노닐면서 절구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십 리라 평호에 가랑비 지나가니 / 十里平湖細雨過 한 가락 젓대 소리 갈대꽃 저 너머서 / 一聲長笛隔蘆花 은정에서 조갱하던 그 손으로 / 直將殷鼎調羹手 낚시대 들고 사장으로 내려가다니 / 還把漁竿下晩沙 라 하였다. 선생의 이 시는 대개 그 어법을 쓴 것이다. 복재의 문장에 의해 초은(樵隱)ㆍ목은(牧隱) 두 선생이 크게 경복(敬服)하였던 바이나 본집은 전하지 못하고 다행히 이 절구 한 수는 계부(季父) 제학공(提學公)의 전편(傳編)에서 얻었는데, 또 묻혀버릴까 걱정되어 이에 부저(附著)하는 바이다. [주D-001]사륜(絲綸): 조서(詔書)의 아칭(雅稱). 《예기》 치의(緇衣)에 “왕의 말이 실 같으나 나가서는 줄 같다.[王言如絲 其出如綸]” 하였다. [주D-002]은정(殷鼎)에서 조갱(調羹): 정승에 비유하여 쓴 말이다. 《서경》 열명(說命)에 “만약 국을 양념하게 될 경우에는 네가 염매의 구실을 하라. [若作和羹 爾惟鹽梅]” 하였는데, 이는 은 고종(殷高宗)이 부열(傅說)에게 재상의 일을 위촉한 것이다.
Seamless Wikipedia browsing. On steroids.
Every time you click a link to Wikipedia, Wiktionary or Wikiquote in your browser's search results, it will show the modern Wikiwand interface.
Wikiwand extension is a five stars, simple, with minimum permission required to keep your browsing private, safe and transpar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