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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의 왕비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신의왕후 한씨(神懿王后 韓氏, 1337년 10월 6일(음력 9월 4일) ~ 1391년 11월 25일(음력 9월 23일))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첫번째 아내로 정종과 태종의 모후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1년 전인 1391년에 사망하였으며, 1393년(태조 2년) 절비(節妃)로 추증되었다.
1398년(정종 즉위년), 정종이 즉위하여 신의왕후(神懿王后)로 추존하였으며[1], 태종이 신의왕태후(神懿王太后)로 추상하였다.[2]
본관은 안변 한씨이며, 1337년(충숙왕 후5년) 9월, 고려 동북면 영흥(永興) 풍류산 아래 금리(琴理)에서 아버지 한경(韓卿)과 어머니 삭녕 신씨(朔寧 申氏)의 딸로 태어났다.
한씨가 태어날 때, 하늘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뒷산에는 오색 영롱한 구름이 감돌았다 하여 풍류산(風流山)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훗날 신의왕후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1824년(순조 24년)에 태어난 마을에 기념비를 세웠다.[4]
15세 무렵인 1351년, 이성계와 혼인하여 6남 2녀를 낳았다.
1364년(공민왕 13년) 이성계는 고종 사촌인 삼선(三善)과 삼개(三介)가 난을 일으키자[5] 진압하였다. 그 공으로 봉익대부밀직부사(奉翊大夫密直副使)에 오르며 단성양절익대공신(端誠亮節翊戴功臣)의 호를 받자 부인 한씨도 원신택주(元信宅主)에 봉해졌다.
한씨는 이성계가 전쟁터를 누비는 동안 고향 집에서 집안의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며 내조하였다. 이성계는 개경에서 명문 거족 강윤성 딸인 강씨를 경처(京妻)로 맞이하였고, 한씨는 이성계의 향처(鄕妻)로서 동북면에 거주하며 집안의 대소사를 살폈다.
1388년(우왕 14년), 위화도 회군 때에는 포천 재벽동에 머물다가 아들 이방원의 인솔하에 식구들과 함께 동북면으로 피신을 갔으며[6], 1391년(공양왕 3년) 8월 무렵 병을 앓기 시작하여 9월 23일에 사망하였다.[7]
조선 건국 전에 사망하여,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가 조선의 첫 왕비가 되었다. 아들인 정종이 즉위하여 신의왕후(神懿王后)로 추존하였다. 이후 태종이 1408년(태종 8년) 9월 6일, 한씨를 왕태후(王太后)로 격상하여 승인순성신의왕태후(承仁順聖神懿王太后)로 추상하였다.[2]
1683년(숙종 9년), 송시열이 '태종이 한씨에게 올린 왕태후의 작위가 예법에 어긋난다'고 상소하여 승인순성신의왕후(承仁順聖神懿王后)로 개책되었다.[8]
부모
배우자
왕자
왕녀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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