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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조(일본어: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3년 7월) |
신센구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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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식 한자 표기 | 新選組 |
가나 표기 | しんせんぐみ |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 신센구미 |
로마자 | Shinsen-gumi |
막부 말기 일본의 교토(京都)는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고 여러 번(藩)으로부터 존왕양이(尊王攘夷) ・ 도막(倒幕) 운동을 위한 지사(志士)를 자처하는 자들이 몰려들어, 기왕의 교토 치안 유지를 맡고 있던 교토 쇼시다이(京都所司代)와 교토 마치부교(京都町奉行)만으로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 내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한 막부는 기요카와 하치로(清河八郎)의 헌책을 수용하여 로시구미(浪士組)의 결성을 꾀하였다.
이들 로시구미는 에도(江戸)에서 구인을 거쳐서 교토로 이동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기요카와의 연설로 그 본의(후술)를 알게 된 곤도 이사미(近藤勇)나 세리자와 카모(芹沢鴨) 등이 반발하여, 교토 수호직(京都守護職)을 맡고 있던 아이즈 번주(会津藩主) ・ 마쓰다이라 가타모리(松平容保)의 비호 아래 신센구미(新撰組)로써 발족하게 되었다. 같은 임무를 띤 교토 미마와리구미(見廻組)가 정식 막신(幕臣, 하타모토旗本、고케닌御家人 등)으로 구성된 정규 조직이었던 것에 비해 신센구미는 낭사(浪士, 죠닌町人、농민 신분 포함)로 구성되어 있던 「아이즈 번 청부」라는 비정규 조직이었다.
대원의 수는 그 전신이었던 미부로시구미(壬生浪士組) 24명으로 발족하였는데, 신센구미가 한창 번창하였을 때는 2백 명을 넘었다고 한다. 신센구미의 임무는 교토에서 활동하는 불량한 낭사(浪士)들이나 도막 운동을 펼치는 지사들에 대한 수색과 체포, 담당 지역의 순찰과 경비, 반란 진압 등이었다. 그런 한편으로 상인들로부터 반강제로 자금을 제공받으며, 규칙 위반자를 차례로 숙청하는 등 내부 항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게이오(慶応) 3년(1867년) 6월에 막부의 신하로 채용되었다. 이듬해에 보신전쟁(戊辰戦争)이 시작되고, 옛 막부군을 따라 전장을 옮겨다니며 전투를 벌였으나, 보신전쟁이 끝난 뒤 해산되었다.
분큐(文久) 2년(1862년) 에도 막부(江戸幕府)는 쇼나이 번(庄内藩)의 향사(郷士)였던 기요카와 하치로(清河八郎)의 헌책을 받아들여 쇼군(将軍) ・ 도쿠가와 이에모치(徳川家茂)의 교토 상경에 즈음해 쇼군을 경호한다는 명목으로 낭사(浪士)들을 모집하였다.
이듬해인 분큐 3년(1863년) 2월, 모집한 2백 명 정도의 낭사들은 쇼군의 상경에 앞서 「로시구미」(浪士組)로써 하나의 집단을 이루어 나카센도(中山道)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였다. 이들을 교토까지 인솔할 낭사취체역(浪士取締役)으로는 마쓰다이라 가즈사노스케(松平上総介), 우도노 규오(鵜殿鳩翁), 구보타 신쇼(窪田鎮勝), 야마오카 데쓰타로(山岡鉄太郎), 마쓰오카 요로즈(松岡萬), 나카죠 긴노스케(中條金之助), 사사키 다다사부로(佐々木只三郎) 등이 맡았다.
그런데 이들이 교토에 도착한 뒤, 처음 이들을 조직할 것을 주장했던 기요카와가 애초부터 근왕세력과 내통하고 로시구미를 천황 휘하의 병력으로 삼으려 하였다는 계책이 발각된다. 낭사취체역을 맡고 있던 이들 간의 협의 결과, 기요카와의 계획을 저지하기 위하여 낭사들을 에도로 돌려보내자는 것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에 대해 곤도 이사미、히지카타 토시조(土方歳三) 등을 중심으로 하는 시위관파(試衛館派)와 세리자와 카모를 중심으로 하는 미토파(水戸派)는 끝까지 쇼군을 경호하겠다며 교토에 남을 것을 주장하였다.
우도노 규오는 로시구미의 도노우치 요시오(殿内義雄)와 이에사토 지로(家里次郎)에게 잔류자를 모으도록 지시하였고, 이에 응하여 시위관파, 미토파, 도노우치 이하, 네기시 도모야마(根岸友山) 일파 등이 교토의 미부 촌(壬生村)에 남았는데, 네기시파는 직후 조직을 빠져나왔다. 도노우치 ・ 이에사토는 이후 배척되어 그 해 3월에 공무합체(公武合体)를 기조로 하는 양이 단행 실현에 조력하는 것을 목적으로 신센구미의 전신이 되는 「미부로시구미」(壬生浪士組, 정충낭사조精忠浪士組)를 결성하였다. 한편 에도로 돌아갔던 이들은 신미조(新徴組)를 결성하였다.
미부로시구미는 미부 촌의 야기 저택(八木邸)과 마에카와 저택(前川邸) 및 주변 저택을 둔소(屯所, 본부)로 삼고 제1차 대사(隊士) 모집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36명 정도의 인원이 모였으며, 교토 수호직 마쓰다이라 가타모리로부터 불손한 낭사들의 체포 및 저자 경비를 위임받았다.
4월에 오사카(大坂)의 환전상 히라노야 고베(平野屋五兵衛)에게 100냥을 제공받아 이를 밑천으로 대원복과 깃발을 마련하고, 조직의 법규를 제정하였다.
6월에 오사카 스모 선수들과의 난투가 벌어져서 숱한 사상자를 내는 가운데 미부로시구미 사이에도 부상자가 나왔다. 부교도코로(奉行所)에서는 레키시측의 잘못으로 판단하고 레키시측은 미부로시구미에 50냥의 배상금을 제공하였다.
8월에 세리자와 카모 등 약 30명의 대사들이 교토의 실 가게 상인 야마토야 쇼베에(大和屋庄兵衛)로부터 신센구미 자금책을 더 이상 맡을 수 없다고 거절을 들은 것에 대해 격노하며 야마토야에 불을 지르고 화재 진압을 위해 출동한 소방수들의 진입도 칼을 휘둘러가며 막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야마토야는 하룻밤 사이에 모두 불타버렸고, 이 사건은 마쓰다이라 가타모리의 격노를 사서 곤도 등을 불러 그들에 대한 처치를 명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세리자와 및 미부로시구미의 관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가 존재하고 있다.
그 달에 미부로시구미는 8월 18일의 정변이라 불리는 사건의 경비로 출동하여, 그 능력을 평가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이름으로 「신센구미」(新選組)를 받게 되었다. 신센구미라는 이름은 무가전주(武家伝奏)로부터 받았다는 설과 마쓰다이라 가타모리로부터 받았다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후자의 경우는 아이즈 번주 본진의 경비 부대 이름을 번주 가타모리 자신으로부터 받았다는 의미가 된다.
9월에 곤도 ・ 히지카타 등 시위관파가 야기 저택에서 세리자와 카모、히라야마 고로(平山五郎)를 암살하고 히라마 시게스케(平間重助)는 탈주、노구치 겐지(野口健司)는 12월에 할복하였다. 미토파는 조직 내에서 일소되고 신센구미파가 조직 전체를 장악하여 곤도 이사미를 정점으로 하는 신센구미 조직이 정비된다.
신센구미는 겐지(元治) 원년(1864년) 6월 5일 이케다야 사건(池田屋事件)으로 존왕양이파 지사들을 대거 참살 ・ 체포하였다. 8월에는 금문의 변(禁門の変)을 진압하는 데에도 참가하였다.
이케다야 사건과 금문의 변에서의 활약상으로 신센구미는 조정 ・ 막부 ・ 아이즈 번으로부터 활약상에 대한 칭찬과 함께 200냥 정도의 은상을 하사받았으며, 그 해 9월에는 제2차 대사 모집을 실시, 나아가 국장 곤도 이사미가 에도로 귀향하였을 즈음에 이토 가시타로(伊東甲子太郎) 등의 일파가 입대하였다. 신센구미는 2백 명을 넘는 집단으로 성장하였으며 대사를 수용하기 위하여 미부 둔소(壬生屯所)에서 니시혼간지(西本願寺)로 본거지를 옮겼다.
조슈 정벌(長州征伐) 참가에 대비하여 전장에서의 지휘 명령을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소대(小隊)제도(1번조~8번조 및 小荷駄雑具)로 개조하였다. 「군중법도」(軍中法度)도 제정하였다. 그러나 신센구미에 대한 출동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게이오 3년(1867년) 3월에 이토 가시타로 등의 일파가 사상의 차이 등으로 인하여 고료에지(御陵衛士)를 결성하여 신센구미를 이탈하였다. 6월에 신센구미는 막신으로 인정받았으며, 11월에 고료에지를 격퇴하고 이토 등을 암살하였다. 이를 아부라노코지 사건(油小路事件)이라 한다.
게이오 3년(1867년) 10월에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徳川慶喜)가 대정봉환(大政奉還)을 행하였다. 신센구미는 옛 막부군을 따라 보신전쟁(戊辰戦争)에 참가하였으나, 첫 전투였던 도바 후시미 전투(鳥羽・伏見の戦い)에서 신정부군에 패하였다.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가 이끄는 막부 소유의 군함으로 에도로 물러났다. 이 시기 불리함을 깨달은 대원들이 잇따라 탈주하면서 전력이 저하되었다.
그 뒤 막부로부터 신정부군의 고후(甲府) 진군을 막는 임무를 맡아 갑양진무대(甲陽鎮撫隊)라 이름을 고치고 고슈 가도(甲州街道)를 따라 고슈 성(甲府城)으로 진군하였으나 도중에 고슈 가쓰누마 전투(甲州勝沼の戦い)에서 신정부군에 다시금 패퇴하고 에도로 돌아온다. 이때 방침의 차이로 나가쿠라 신파치(永倉新八)、하라다 사노스케(原田左之助)가 이탈해 정병대(靖兵隊)를 결성하였고, 곤도, 히지카타 등은 재기를 노리고 산으로 흩어져서 이동하였으나, 곤도가 신정부군에 체포되어 처형되고 오키타 소지(沖田総司)도 지병이었던 폐결핵으로 에도에서 사망, 이어 여러 사정으로 에도에 돌아왔던 하라다도 창의대(彰義隊)에 가입하여 우에노 전쟁(上野戦争)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신센구미는 우쓰노미야 성 전투(宇都宮城の戦い)、아이즈 전쟁(会津戦争) 등에도 참가하였으나 아이즈에서는 사이토 하지메(斎藤一) 등이 이탈해 잔류하였으며, 남은 대원들은 에조치(蝦夷地)를 향해 가서 에노모토 등에 합류, 후타마타구치 전투(二股口の戦い) 등에서 활약하였다(에조 공화국 항목 참조). 신정부군이 하코타테(箱館)로 진군해 오자 헨텐다이바(弁天台場)에서 신정부군과 싸우던 대원들을 돕고자 히지카타 등 여러 명이 나섰다가, 히지카타는 총탄에 맞아 전사하고 식량이나 물도 떨어져 결국 신센구미는 항복하였다. 옛 막부군은 하코타테의 고료가쿠(五稜郭)에서 신정부군에 항복하였다(하코타테 전쟁).
메이지 신정부는 신센구미 대원의 유족들에게 유품을 소유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신센구미와 적대했던 삿초(薩長) 출신 인사들이 정치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점, 황국사관(皇国史観)의 영향으로 메이지 신정부의 '적군'으로 찍힌 신센구미를 부정하는 풍조가 강하였기 때문에 사학적인 연구도 지진하였다. 다이쇼 시대(大正時代)에 이르러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郎)가 쓴 소설 『구라마텐구』(鞍馬天狗)에서도 신센구미는 악역으로 묘사되고 있다. 다만 고단(講談)의 영향으로 서민들로부터는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으며, 『구라마텐구』 작중에서도 곤도 이사미만큼은 다른 신센구미 대원들과는 다른 인격자이자 호걸로써 묘사되고 있다.
1928년(쇼와 3년) 시모자와 칸(子母澤寛)의 『신센구미 시말기』(新選組始末記), 히라오 미치오(平尾道雄)의 『신센구미 사록』(新撰組史録) 등이 간행되고, 신센구미는 재평가되기 시작하였다. 1933년(쇼와 8년) 일본 경시청(警視庁)에 창설된 특별경비대(特別警備隊, 경시청 기동대의 전신)는 「쇼와의 신센구미」(昭和の新選組)라는 통칭으로 익숙하였다.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본 육군으로 편성된 비행 제47전대(초대 대장 시모야마下山登 중좌中佐, 2대 대장 오쿠다奥田暢 소좌少佐와 해군으로 편성된 제343해군항공대 전투301비행대(대장 스가노 다다시菅野直 대위大尉)도 「신센구미」라 불리고 있었다.
패전 뒤에는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로 신센구미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늘어났으며, 대원들 면면에 대해서도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1960년대에 방송되었던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신센구미 혈풍록』(新選組血風録)、『타올라라 검』(燃えよ剣)은 신센구미 붐을 일으키기까지 하였다.
신센구미는 유신지사들에게는 자비가 없는 것과 극악무도 하다는 것으로 유명했다. 극도로 엄격한 내부규율로 인해 할복이나 처형에 의해 희생된 단원들도 전체 사망자에서 반을 차지했다. 하지만 딱히 할 일이 없는 로닌들은 대부분 높은 급료를 위해 마다 않고 참가하였다. 또한 탈퇴는 허용되지 않았다.
막말의 혼란상과 사무라이 문화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신센구미는 대중에게 인기 높은 역사적 소재로서 다량의 소설, 만화,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2004년에는 미타니 코키 작가의 각본작품 NHK 대하드라마 <신센구미!>가 방영되었으며, 인기그룹 SMAP의 멤버 카토리 싱고가 주인공 곤도 이사미 역을 맡았다.
소라치 히데아키 작가 만화 은혼에는 이 신센구미(신센구미)를 패러디한 진선조(眞選組, 한자가 다르지만 발음은 같다)가 등장하며,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조금씩 변형한 이름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예: 신센구미의 곤도 이사미 → 진선조의 콘도 이사오)
박앵귀라는 오토메 게임은 신센구미 관련 인물들과 역사적 사실 등에 가상의 인물과 판타지 요소를 가미한 게임으로, 신센구미의 중요 간부들을 공략할 수 있는데, 2008년 9월 출시된 원작게임 《박앵귀 ~신센구미기담~》에 이어 2012년 7월에 방영한, 세리자와 카모 암살사건을 다룬 애니메이션《박앵귀 여명록》까지 꾸준한 인기로 시리즈가 연이어 출시되고 있다.
쿠로노 나나에 작가 만화 신찬조이문 피스메이커와 피스메이커 쿠로가네에서는 실존 인물로 신센구미의 최연소 대원이었던 이치무라 테츠노스케를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바람의 빛이라는 순정만화에서 상상의 인물 세이자부로가 남장을 하고 신선조에 입대하여 벌어지는 이야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11월까지 45권으로 완결되었다.
신센구미 물망초라는 드라마 CD에서는 사이토 하지메, 오키타 소지, 곤도 이사미, 도도 헤이스케, 히지카타 도시조, 야마자키 스스무, 나가쿠라 신파치, 하라다 사노스케, 이토 가시타로, 야마나미 게이스케] 등 10명의 이야기(여성향)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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