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처(身念處)는 초기불교의 수행법인 7과 37도품 중 첫 번째 과인 4념처(四念處: 신념처 · 수념처 · 심념처 · 법념처)의 첫 번째 수행법으로, 몸[身] 즉 육체를 관찰하는 알아차림(sati, 사띠) 수행 또는 명상법을 말한다.
남방불교의 대표적인 4념처 관련 경전들인, 팔리어 경전의 〈대념처경〉과 〈염처경〉에 따르면 구체적인 14가지 수행법이 있다. 그리고 각각의 구체적인 수행법은 다시 자신의 몸을 관찰하는 것, 다른 사람의 몸을 관찰하는 것,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몸을 교대로 관찰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팔리어 경전 〈대념처경〉과 〈염처경〉에 나오는 신념처 수행법은 동일하다. 이들 둘과 한역 경전 《중아함경》의 〈염처경〉에 나오는 신념처 수행법은 차이가 있다. 《아비달마구사론》에 나오는 수행법은 설일체유부의 수행론에 따라 재조직화된 것으로 그 구체적 진행 방법에서 이들 셋과 다소 차이가 있다. 대승 경론의 신념처 수행법은 부파불교와는 차이가 상당하다. 특히 《대지도론》의 경우 아공과 법공의 2공에 의거하여 재해석되어 있다.
팔리어 경전의 〈대념처경〉과 〈염처경〉에 따르면, 신념처의 구체적 수행법은 총 14가지인데, 이 14가지를 자신의 몸에 적용하는 것, 다른 사람의 몸에 적용하는 것,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몸에 교대로 적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경전 자체에 14가지 구체적 수행법에 대한 명칭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수행자들이나 경전 번역자들 혹은 주석가들 혹은 연구자들이 정리한 이름들이 사용된다. 한글 세 가지와 영문 한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팔리어 경전의 〈대념처경〉과 〈염처경〉 그리고 그 주석서에 따르면 호흡의 출입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법은 다음과 같다.[44][45][46][47][48]
(1) 준비
숲, 나무 아래, 또는 빈 집으로 간다.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그냥 자신의 방에 간다.
가부좌를 하고 앉는다.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결가부좌가 되지 않으면, 반가부좌, 그것도 힘들면 양반 자세를 한다.
몸을 곧게 세운다. 준비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수행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다. 몸을 곧게 세운다는 것은 허리를 펴는 것을 말한다. 허리가 펴져 있는 상태가 아니면 수행의 효과도 반감되고 또한 일정 (짧은) 시간이 지나면 수행을 지속하고 싶어도 허리, 등, 또는 목이 아파서 계속할 수가 없다. 이런 것이 반복되면 수행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수행을 고통을 동반하는 어렵고 힘든 일로 인식하게 되어 몸과 마음이 수행을 싫어하게 되고 결국 수행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 허리를 편다는 것은 억지로 펴는 것이 아니고 골반과의 관계에서 척추가 바르게 놓여 있는 것이다. 허리가 펴지면 자연스럽게 등을 펼 수 있고 다시 자연스럽게 가슴을 펼 수 있어서, 몸이 곧게 서게 된다. 몸이 곧게 서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코끝에 머물게 된다. 마음이 자연스럽게 코끝에 머물게 되면 고요함의 즐거움이 있다. 본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허리를 펴서 몸이 곧게 서는 것을 충분히 익히는 것이 권장된다. 즉, 먼저 허리를 펴는 것을 아주 충분히 습득하고, 다시 등을 펴는 것을 충분히 습득하고, 다시 가슴을 펴는 것을 습득하고, 그렇게 하여 마음이 코끝에 머물고, 그렇게 하여 고요함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천천히, 서서히 반복하여 행함으로써 아주 능숙해지도록 습득하는 것이 좋다. 허리를 펴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서는 유투브의 다음 동영상을 참조할 것: 다리 찢기 20년 노하우 공개 - 3분 10초부터 4분 40초 부분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수동적 주의집중으로 들이쉬고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8가지를 수행한다.[54][55][56][57][58][59]
그는 알아차리면서 숨을 들이쉬고 알아차리면서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몸의 작용(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pp.498~499.편집자가 용어 일부 변경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길게 들이쉴 때 '길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린다.[60]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길게 내쉴 때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60]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짧게 들이쉴 때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린다.[60]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짧게 내쉴 때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60]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고 하면서 즉 '들숨의 처음과 증간과 끝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고 하면서 (즉, 들숨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알아차리겠다는 의도는 있지만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은 없이) 그렇게 들이쉬고 또 그렇게 들이쉬는 것을 알아차린다.[61]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고 하면서 즉 '날숨의 처음과 증간과 끝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고 하면서 (즉, 날숨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알아차리겠다는 의도는 있지만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은 없이) 그렇게 내쉬고 또 그렇게 내쉬는 것을 알아차린다.[61]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고 하면서 즉 '들숨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들이쉬리라'고 하면서 (즉, 편안하고 고요하게 호흡하는 상태를 알아차리겠다는 의도는 있지만 이에 따른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은 없이, 즉, 이때까지의 수행에 의해 자연히 호흡이 편안하고 고요해지는 대로) 그렇게 들이쉬고 또 그렇게 들이쉬는 것을 알아차린다.[62]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고 하면서 즉 '날숨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내쉬리라'고 하면서 (즉, 편안하고 고요하게 호흡하는 상태를 알아차리겠다는 의도는 있지만 이에 따른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은 없이, 즉, 이때까지의 수행에 의해 자연히 호흡이 편안하고 고요해지는 대로) 그렇게 내쉬고 또 그렇게 내쉬는 것을 알아차린다.[62]
(3) 자신의 호흡에 대한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2)의 수행을 반복한다. 즉, 마치 숙련된 도공이나 도공의 도제가 길게 돌리면서 '길게 돌린다'고 알아차리고 짧게 돌리면서 '짧게 돌린다’고 알아차리는 것처럼, (2)의 수행을 반복하면서 들이쉬고 내쉴 때 그 모두를 알아차린다.[63][64][65][66]
(2)~(7)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만을 관찰한다.
주석서에 따르면, 일어나는 현상이란 몸과 콧구멍과 마음을 인연(의지처)으로 하여 들숨과 날숨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2)~(7)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法]만을 관찰한다.
주석서에 따르면, 사라지는 현상이란 콧구멍이 부서지거나 마음이 소멸하면 들숨과 날숨이 생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2)~(7)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한다.
주석서에 따르면,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한다는 것은 때로는 일어나는 현상[法]만을 관찰하고, 때로는 사라지는 현상[法]만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지속적으로 동시에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교대로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p.500.편집자가 용어 일부 변경
(2)~(7)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주석서에 따르면,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2)~(7)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주석서에 따르면,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10) 호흡의 출입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의 과보
호흡의 출입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이제 그는 [갈애와 삿된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pp.500~501.편집자가 용어 일부 변경
주석서에 따르면,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호흡의 출입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들숨과 날숨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2. 몸의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
몸의 상태란 행주좌와, 즉, 걷고 있는 상태, 서있는 상태, 앉아 있는 상태, 누워있는 상태를 말한다. 네 가지 자세라고도 한다. 이 네 가지를 전통적인 용어로 4위의(四威儀)라고 한다. 팔리어 경전의 〈대념처경〉과 〈염처경〉 그리고 그 주석서에 따르면 몸의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법은 다음과 같다.[94][95][96][97][98]
(1) 자신의 몸의 상태에 대한 수행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가면서 '걷고 있다.'고 알아차리고, 서있으면서 '서있다.'고 알아차리며, 앉아 있으면서 '앉아 있다.'고 알아차리고, 누워있으면서 '누워있다.'고 알아차린다. 또 그의 몸이 다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 그 자세대로 알아차린다.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p.502.편집자가 용어 일부 변경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걸어가면서 '걸어간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서있으면서 '서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앉아 있으면서 '앉아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누워있으면서 '누워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걸어가다가 설 때 '걸어가다가 선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서있다가 걸어갈 때 '서있다가 걸어간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서있다가 앉을 때 '서있다가 앉는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서있다가 누울 때 '서있다가 눕는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앉아 있다가 설 때 '앉아 있다가 선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앉아 있다가 누울 때 '앉아 있다가 눕는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누워있다가 설 때 '누워있다가 선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누워있다가 앉을 때 '누워있다가 앉는다'고 알아차린다.
(2) 자신의 몸의 상태에 대한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1)의 수행을 반복한다.
(3) 다른 사람의 몸의 상태에 대한 수행
다른 사람의 몸의 상태에 대해 (1)의 수행을 행한다.
(4) 다른 사람의 몸의 상태에 대한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3)의 수행을 반복한다.
(5)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몸의 상태에 대한 수행
자신의 몸의 상태와 다른 사람의 몸의 상태에 대해 (1)의 수행을 행한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몸의 상태에 대해 교대로 행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만을 관찰한다.
일어나는 현상이란 몸과 마음을 인연(의지처)으로 하여 걸어가고, 서고, 앉고, 눕고, 걸어가다가 서고, 서있다가 걸어가고, 서있다가 앉고, 서있다가 눕고, 앉아 있다가 서고, 앉아 있다가 눕고, 누워있다가 서고, 누워있다가 앉는 것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法]만을 관찰한다.
사라지는 현상이란 몸이 부서지거나 마음이 소멸하면 걸어가고, 서고, 앉고, 눕고, 걸어가다가 서고, 서있다가 걸어가고, 서있다가 앉고, 서있다가 눕고, 앉아 있다가 서고, 앉아 있다가 눕고, 누워있다가 서고, 누워있다가 앉는 것이 생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한다.
즉, 일어나는 현상[法]과 사라지는 현상[法]을 지속적으로 교대로 관찰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몸의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의 과보
몸의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몸의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몸의 상태(걸어가고, 서고, 앉고, 눕는 것)를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 · 발우 · 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 · 서면서 · 앉으면서 · 잠들면서 · 잠을 깨면서 · 말하면서 ·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만을 관찰한다.
일어나는 현상이란 몸과 마음을 인연(의지처)으로 하여 나아가고, 물러나고, 앞을 보고, 돌아 보고, 구부리고, 펴고, 식기를 지니고, 의복을 입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고, 대변을 보고, 소변을 보고, 걷고, 서고, 앉고, 잠들고, 잠에서 깨고, 말하고, 침묵하는 것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法]만을 관찰한다.
사라지는 현상이란 몸이 부서지거나 마음이 소멸하면 나아가고, 물러나고, 앞을 보고, 돌아 보고, 구부리고, 펴고, 식기를 지니고, 의복을 입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고, 대변을 보고, 소변을 보고, 걷고, 서고, 앉고, 잠들고, 잠에서 깨고, 말하고, 침묵하는 것이 생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한다.
즉, 일어나는 현상[法]과 사라지는 현상[法]을 지속적으로 교대로 관찰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몸의 행동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의 과보
몸의 행동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몸의 행동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몸의 행동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팔리어 경전의 〈대념처경〉과 〈염처경〉 그리고 그 주석서에 따르면 몸을 구성하는 32가지 요소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법은 아래 목록과 같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몸은 부정(不淨)한 것, 즉, 예쁘지 않은(ugly)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하는 것이다.[104][105][106][107][108] 특히, 음욕을 조복시키는데 효과적이다.[109][110] 부정관은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다른 관점[異門]으로 관찰하는 것을 매우 적극적으로, 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즉, 이미 너무 치우쳐 있는 것을 균형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혐오스러운 것을 관찰하는 강력한 처방을 스스로에게 하는 것이다. 참고: 고
부정관은 수염(修厭: 염을 닦음, 싫어하는 마음을 닦음)을 위한 것으로 이 때의 염은 번뇌 또는 악에 속한 염세(厭世: 세상이 귀찮음, 인생이 싫어짐)의 염(厭: 싫증)과는 비록 한자어 단어는 같은 단어이지만 그 성격은 전혀 다르다. 수염은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에 대한 염착(染著, 탐착, 오염으로서의 탐욕 또는 집착)을 제거하는 수행으로, 수염(修厭)의 염은 무탐(無貪)을 본질로 한 상태에서 혜(慧: 지혜)를 가졌을 때 생겨나는 선한 마음작용이다. 참고: 탐, 선심소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갖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 몸털 · 손발톱 · 이빨 · 살갗 · 살 · 힘줄 · 뼈 · 골수 · 콩팥 · 심장(염통) · 간 · 횡경막(근막) · 비장(지라) · 허파 · 큰창자 · 작은창자 · 위 · 똥 · [뇌] · 쓸개즙 · 가래 · 고름 · 피 · 땀 · 지방(굳기름) · 눈물 · 피지(피부의 기름기) · 침 · 콧물 · 관절활액 · 오줌 등이 있다.'고.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pp.504~505.편집자가 용어 일부 변경.[]는 주석서에 의거하여 편집자가 추가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몸을 구성하는 32가지 요소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의 과보
몸의 32가지 요소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몸의 32가지 요소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몸의 32가지 요소를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걸어가면서 이 몸에는 ① 머리털 ② 몸털 ③ 손발톱 ④ 이빨 ⑤ 살갗 ⑥ 살 ⑦ 힘줄 ⑧ 뼈 ⑨ 골수 ⑩ 콩팥 ⑪ 심장염통 ⑫ 간 ⑬ 횡경막(근막) ⑭ 비장(지라) ⑮ 허파 ⑯ 창자(큰창자와 작은창자) ⑰ 위속의 음식 ⑱ 장간막 ⑲ 똥 ⑳ 뇌의 20가지 땅의 요소(地大 · 地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6]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걸어가면서 이 몸에는 ① 쓸개즙(담즙) ② 가래 ③ 고름 ④ 피 ⑤ 땀 ⑥ 지방(굳기름) ⑦ 눈물 ⑧ 피지(피부의 기름기) ⑨ 침 ⑩ 콧물 ⑪ 연골(관절활액) ⑫ 오줌의 12가지 물의 요소(水大 · 水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7]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걸어가면서 이 몸에는 ① 따뚯해지게 하는 것 ② 늙게 하는 것 ③ 타버리게 하는 것 ④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완전히 소화되게 하는 것의 4가지 불의 요소(火大 · 火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8]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걸어가면서 이 몸에는 ① 위로 올라가는 바람 ② 아래로 내려가는 바람 ③ 뱃속의 바람 ④ 창자 속의 바람 ⑤ 사지에 순환하는 바람 ⑥ 들숨과 날숨의 6가지 바람의 요소(風大 · 風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9]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서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머리털 ② 몸털 ③ 손발톱 ④ 이빨 ⑤ 살갗 ⑥ 살 ⑦ 힘줄 ⑧ 뼈 ⑨ 골수 ⑩ 콩팥 ⑪ 심장염통 ⑫ 간 ⑬ 횡경막(근막) ⑭ 비장(지라) ⑮ 허파 ⑯ 창자(큰창자와 작은창자) ⑰ 위속의 음식 ⑱ 장간막 ⑲ 똥 ⑳ 뇌의 20가지 땅의 요소(地大 · 地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6]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서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쓸개즙(담즙) ② 가래 ③ 고름 ④ 피 ⑤ 땀 ⑥ 지방(굳기름) ⑦ 눈물 ⑧ 피지(피부의 기름기) ⑨ 침 ⑩ 콧물 ⑪ 연골(관절활액) ⑫ 오줌의 12가지 물의 요소(水大 · 水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7]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서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따뚯해지게 하는 것 ② 늙게 하는 것 ③ 타버리게 하는 것 ④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완전히 소화되게 하는 것의 4가지 불의 요소(火大 · 火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8]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서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위로 올라가는 바람 ② 아래로 내려가는 바람 ③ 뱃속의 바람 ④ 창자 속의 바람 ⑤ 사지에 순환하는 바람 ⑥ 들숨과 날숨의 6가지 바람의 요소(風大 · 風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9]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앉아 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머리털 ② 몸털 ③ 손발톱 ④ 이빨 ⑤ 살갗 ⑥ 살 ⑦ 힘줄 ⑧ 뼈 ⑨ 골수 ⑩ 콩팥 ⑪ 심장염통 ⑫ 간 ⑬ 횡경막(근막) ⑭ 비장(지라) ⑮ 허파 ⑯ 창자(큰창자와 작은창자) ⑰ 위속의 음식 ⑱ 장간막 ⑲ 똥 ⑳ 뇌의 20가지 땅의 요소(地大 · 地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6]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앉아 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쓸개즙(담즙) ② 가래 ③ 고름 ④ 피 ⑤ 땀 ⑥ 지방(굳기름) ⑦ 눈물 ⑧ 피지(피부의 기름기) ⑨ 침 ⑩ 콧물 ⑪ 연골(관절활액) ⑫ 오줌의 12가지 물의 요소(水大 · 水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7]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앉아 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따뚯해지게 하는 것 ② 늙게 하는 것 ③ 타버리게 하는 것 ④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완전히 소화되게 하는 것의 4가지 불의 요소(火大 · 火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8]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앉아 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위로 올라가는 바람 ② 아래로 내려가는 바람 ③ 뱃속의 바람 ④ 창자 속의 바람 ⑤ 사지에 순환하는 바람 ⑥ 들숨과 날숨의 6가지 바람의 요소(風大 · 風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9]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누워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머리털 ② 몸털 ③ 손발톱 ④ 이빨 ⑤ 살갗 ⑥ 살 ⑦ 힘줄 ⑧ 뼈 ⑨ 골수 ⑩ 콩팥 ⑪ 심장염통 ⑫ 간 ⑬ 횡경막(근막) ⑭ 비장(지라) ⑮ 허파 ⑯ 창자(큰창자와 작은창자) ⑰ 위속의 음식 ⑱ 장간막 ⑲ 똥 ⑳ 뇌의20가지 땅의 요소(地大 · 地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6]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누워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쓸개즙(담즙) ② 가래 ③ 고름 ④ 피 ⑤ 땀 ⑥ 지방(굳기름) ⑦ 눈물 ⑧ 피지(피부의 기름기) ⑨ 침 ⑩ 콧물 ⑪ 연골(관절활액) ⑫ 오줌의 12가지 물의 요소(水大 · 水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7]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누워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따뚯해지게 하는 것 ② 늙게 하는 것 ③ 타버리게 하는 것 ④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이 완전히 소화되게 하는 것의 4가지 불의 요소(火大 · 火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8]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누워있으면서 이 몸에는 ① 위로 올라가는 바람 ② 아래로 내려가는 바람 ③ 뱃속의 바람 ④ 창자 속의 바람 ⑤ 사지에 순환하는 바람 ⑥ 들숨과 날숨의 6가지 바람의 요소(風大 · 風界)가 있다고 고찰한다.[119]
(2) 자신의 몸의 4대 요소에 대한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1)의 수행을 반복한다.
(3) 다른 사람의 몸의 4대 요소에 대한 수행
다른 사람의 몸의 4대 요소에 대해 (1)의 수행을 행한다.
(4) 다른 사람의 몸의 4대 요소에 대한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3)의 수행을 반복한다.
(5)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몸의 4대 요소에 대한 수행
자신의 몸의 4대 요소와 다른 사람의 몸의 4대 요소에 대해 (1)의 수행을 행한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의 몸의 4대 요소에 대해 교대로 행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몸의 4대 요소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의 과보
몸의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몸의 상태에 대한 알아차림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4대 요소(땅의 요소, 불의 요소, 물의 요소, 바람의 요소)를 표상으로 하여 선정 즉 삼매에 들어가는데, 《청정도론》에 따르면, 이 수행은 고유성질을 가진 법, 즉 현상이 아니라 존재, 즉 가법이 아니라 실법을 대상으로 하는 수행이기 때문에 본삼매인 네 가지 선(4禪)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다만 근접삼매에만 들어갈 수 있다.[111]
다시 비구들이여, ①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참고로, 주석서에 따르면, 살아 있다는 것은 바람, 온기, 식(알음알이, 마음, 식온, 6식)의 세 가지 법(현상 또는 존재, 즉 가법 또는 실법)이 몸과 화합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죽었다는 것은 이 세 가지 법이 흩어져 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면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면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면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면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2) 자신을 죽은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1)의 수행을 반복한다.
(3) 다른 사람을 죽은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면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면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면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4) 다른 사람을 죽은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3)의 수행을 반복한다.
(5) 자신과 다른 사람을 죽은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1)의 수행을 행한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교대로 죽은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을 행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죽은 시체에 대한 관찰 수행의 과보
죽은 시체에 대한 관찰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죽은 시체에 대한 관찰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죽은 시체를 표상으로 하여, 즉,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면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모습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팔리어 경전의 〈대념처경〉과 〈염처경〉 그리고 그 주석서에 따르면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법은 다음과 같다.[125][126][127][128][129]
(1) 자신을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다시 비구들이여, ②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참고로, 주석서에 따르면, 살아 있다는 것은 바람, 온기, 식(알음알이, 마음, 식온, 6식)의 세 가지 법(현상 또는 존재, 즉 가법 또는 실법)이 몸과 화합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죽었다는 것은 이 세 가지 법이 흩어져 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2) 자신을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1)의 수행을 반복한다.
(3) 다른 사람을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4) 다른 사람을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3)의 수행을 반복한다.
(5) 자신과 다른 사람을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1)의 수행을 행한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교대로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을 행한다.
(6) 자신과 다른 사람을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5)의 수행을 반복한다.
(7)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대한 관찰을 통한 무상(생멸, 일어남과 사라짐) 관찰 수행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대한 관찰 수행의 과보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죽은 시체를 짐승들이 쪼아 먹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죽은 시체를 표상으로 하여, 즉, 죽은 시체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모습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팔리어 경전의 〈대념처경〉과 〈염처경〉 그리고 그 주석서에 따르면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법은 다음과 같다.[130][131][132][133][134]
(1) 자신을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다시 비구들이여, ③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④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⑤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⑥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참고로, 주석서에 따르면, 살아 있다는 것은 바람, 온기, 식(알음알이, 마음, 식온, 6식)의 세 가지 법(현상 또는 존재, 즉 가법 또는 실법)이 몸과 화합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죽었다는 것은 이 세 가지 법이 흩어져 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2) 자신을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1)의 수행을 반복한다.
(3) 다른 사람을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4) 다른 사람을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3)의 수행을 반복한다.
(5)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1)의 수행을 행한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교대로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을 행한다.
(6)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5)의 수행을 반복한다.
(7)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을 통한 무상(생멸, 일어남과 사라짐) 관찰 수행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 수행의 과보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해골에 살과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죽은 시체를 표상으로 하여, 즉, 죽은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모습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팔리어 경전의 〈대념처경〉과 〈염처경〉 그리고 그 주석서에 따르면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법은 다음과 같다.[130][131][132][133][135]
(1) 자신을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다시 비구들이여, ③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④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⑤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⑥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참고로, 주석서에 따르면, 살아 있다는 것은 바람, 온기, 식(알음알이, 마음, 식온, 6식)의 세 가지 법(현상 또는 존재, 즉 가법 또는 실법)이 몸과 화합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죽었다는 것은 이 세 가지 법이 흩어져 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2) 자신을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1)의 수행을 반복한다.
(3) 다른 사람을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4) 다른 사람을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3)의 수행을 반복한다.
(5)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1)의 수행을 행한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교대로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을 행한다.
(6)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5)의 수행을 반복한다.
(7)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을 통한 무상(생멸, 일어남과 사라짐) 관찰 수행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 수행의 과보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해골에 피와 힘줄이 뒤엉켜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죽은 시체를 표상으로 하여, 즉, 죽은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모습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팔리어 경전의 〈대념처경〉과 〈염처경〉 그리고 그 주석서에 따르면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법은 다음과 같다.[130][131][132][133][136]
(1) 자신을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다시 비구들이여, ③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④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⑤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⑥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참고로, 주석서에 따르면, 살아 있다는 것은 바람, 온기, 식(알음알이, 마음, 식온, 6식)의 세 가지 법(현상 또는 존재, 즉 가법 또는 실법)이 몸과 화합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죽었다는 것은 이 세 가지 법이 흩어져 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2) 자신을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1)의 수행을 반복한다.
(3) 다른 사람을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게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4) 다른 사람을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3)의 수행을 반복한다.
(5)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1)의 수행을 행한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교대로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을 행한다.
(6)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5)의 수행을 반복한다.
(7)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을 통한 무상(생멸, 일어남과 사라짐) 관찰 수행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 수행의 과보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해골에 힘줄만 남아 붙어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죽은 시체를 표상으로 하여, 즉, 죽은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모습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③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④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⑤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⑥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참고로, 주석서에 따르면, 살아 있다는 것은 바람, 온기, 식(알음알이, 마음, 식온, 6식)의 세 가지 법(현상 또는 존재, 즉 가법 또는 실법)이 몸과 화합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죽었다는 것은 이 세 가지 법이 흩어져 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게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게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2) 자신을 해골과 뼈가 흩어져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1)의 수행을 반복한다.
(3) 다른 사람을 해골과 뼈가 흩어져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게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게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게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4) 다른 사람을 해골과 뼈가 흩어져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3)의 수행을 반복한다.
(5)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골과 뼈가 흩어져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1)의 수행을 행한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교대로 해골과 뼈가 흩어져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을 행한다.
(6)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골과 뼈가 흩어져 있는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5)의 수행을 반복한다.
(7) 해골과 뼈가 흩어져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을 통한 무상(생멸, 일어남과 사라짐) 관찰 수행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해골과 뼈가 흩어져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 수행의 과보
해골과 뼈가 흩어져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해골과 뼈가 흩어져 있는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죽은 시체를 표상으로 하여, 즉, 죽은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모습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⑦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⑧ 백골이 되어 단지 뼈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⑨ 그 백골이 해를 넘기면서 삭아 가루가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참고로, 주석서에 따르면, 살아 있다는 것은 바람, 온기, 식(알음알이, 마음, 식온, 6식)의 세 가지 법(현상 또는 존재, 즉 가법 또는 실법)이 몸과 화합하여 존재하는 것이고, 죽었다는 것은 이 세 가지 법이 흩어져 몸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된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2) 자신을 해골이 하얗게 바랜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1)의 수행을 반복한다.
(3) 다른 사람을 해골이 하얗게 바랜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된 것을 보고 그러한 상태를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와 같이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다른 사람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보아 '이 몸 또한 그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즉, '이 사람의 몸 또한 이 시체처럼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고 알아차린다.
(4) 다른 사람을 해골이 하얗게 바랜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3)의 수행을 반복한다.
(5)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골이 하얗게 바랜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해 (1)의 수행을 행한다. 즉, 자신과 다른 사람을 교대로 해골이 하얗게 바랜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을 행한다.
(6)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골이 하얗게 바랜 모습에 비추어 바라보는 수행이 능숙해지게 함
(5)의 수행을 반복한다.
(7) 해골이 하얗게 바랜 모습에 대한 관찰을 통한 무상(생멸, 일어남과 사라짐) 관찰 수행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해골이 하얗게 바랜 모습에 대한 관찰 수행의 과보
해골이 하얗게 바랜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해골이 하얗게 바랜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죽은 시체를 표상으로 하여, 즉, 죽은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된 모습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⑦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⑧ 백골이 되어 단지 뼈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⑨ 그 백골이 해를 넘기면서 삭아 가루가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해골이 뼈 무더기로 변한 모습에 대한 관찰 수행의 과보
해골이 뼈 무더기로 변한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해골이 뼈 무더기로 변한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죽은 시체를 표상으로 하여, 즉, 죽은 시체가 백골이 되어 단지 뼈무더기가 되어 있는 모습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⑦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⑧ 백골이 되어 단지 뼈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⑨ 그 백골이 해를 넘기면서 삭아 가루가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하고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몸이 있구나라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알아차리는 것을 말한다.
(1)~(6)의 수행을 행하면서,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지혜만이 있고 (몸이 있구나라고 아는) 알아차림만이 현전할 때까지 알아차림을 잘 확립한다.
이 문구는 다만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무아임을 아는) 지혜를 키우고 (무아임을 아는) 알아차림을 크게 하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9) 뼈가 삭아 티끌로 변한 모습에 대한 관찰 수행의 과보
뼈가 삭아 티끌로 변한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의 과보로 수행자는 '의지하지 않고 머물며,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나아가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89][90][91][92][93]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는 것은 갈애와 사견(삿된 견해, 즉, 특히 아집)에 의지하던 것을 벗어나 그렇지 않은 상태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는 것은 색·수·상·행·식의 5온에 대해 나라거나 내 것이라고 집착 또는 착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게 된다는 것은 뼈가 삭아 티끌로 변한 모습에 대한 관찰의 수행을 잘 행함으로써 죽은 시체를 표상으로 하여, 즉, 죽은 시체가 백골이 해를 넘기면서 삭아 가루가 되어 있는 모습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선(4禪)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구사론》 제22권에는 신념처 수행에 해당하는 부정관으로서의 골쇄관(骨瑣觀)이 기술되어 있다. 골쇄관이라는 명칭은 《구사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명칭이다.[145][146][147] 골쇄(骨瑣)는 해골(骸骨)을 뜻한다. 일반 사전에 따르면 해골에는 다음 두 가지 뜻이 있는데,[148] 골쇄관에서의 골쇄 즉 해골은 두 번째의 뜻에 해당한다. 즉, 영어의 skeleton에 해당한다.
살이 전부 썩은 사람의 머리뼈.
송장의 살이 전부 썩고 남은 뼈.
《구사론》 제22권에 나오는 골쇄관의 수행법은 다음과 같다.
1. 초습업위(初習業位)
초습업위는 처음으로 업을 익히는 단계, 즉, 초심자(beginner) 단계를 뜻한다.[145][146][147]
(1) 해골의 범위를 확장하는 수행
마음을 발가락, 혹은 이마, 혹은 미간, 혹은 콧등, 혹은 자신에게 편한 곳에 머물게 한다.
해당 부분의 피부와 살이 물러지고 떨어져나간다고 상상력으로 영상하여 알아차린다.
해당 부분의 피부와 살이 물러지고 다 떨어져나가 뼈만 남은 것으로 영상하여 알아차린다.
2와 3의 단계를 점차 온몸으로 확장하여, 피부와 살이 물러지고 다 떨어져나가 몸 전체가 뼈만 남은 것으로, 즉, 완전히 해골이 된 것으로 영상하여 알아차린다.
참고로, 이 영상이 대강의 개념으로서의 영상이 아니라 몸 전체의 뼈의 구체적인 낱낱 하나 하나를 알아차릴 수 있는 그런 생생한 영상이 되기 위해서는 사실상 남방불교의 부정관 수행의 수동적 주의집중에 의한 알아차림 중 무상(생멸, 일어남과 사라짐) 관찰 수행과 무아 관찰 수행을 제외하고는 완성된 상태여야 한다. 수동적 관찰을 통해 몸 전체가 뼈가 된 상태를 잘 기억하고 있지 못하면서 이 단계의 영상을 완성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나무를 정밀하게 관찰하지 않고 나무를 생생히 재현하는 그림을 그릴 수는 없다. 달리 말해, 이 단계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계획과 실행의 반복된 수련을 필요로 하는 단계이다. 전체 수행의 성패를 가름하는 결정적인 부분이다.
다른 사람의 몸 하나를 추가한다. 즉, 나와 그 사람이 해골이 된 것으로 영상하여 알아차린다.
《구사론》 제22권에는 신념처 수행에 해당하는, 호흡 관찰 수행인 지식념(持息念)이 기술되어 있다. 지식념이라는 명칭은 《구사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명칭이다.[161][162][163] 지식념은 숨[息]을 지녀[持] 들이쉬고 내쉬는 것을 알아차리는[念] 것, 즉, 들이쉬는 숨(들숨, 入息)과 내쉬는 숨(날숨, 出息)을 알아차리는 것을 뜻한다.[164][165][166]
《구사론》 제22권에 나오는 지식념의 수행법은 다음과 같다.
1. 수(數, ganaṇā)의 수행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수를 세면서 알아차린다.[167][168][169] 참고로, 수를 세는 이유는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하면서도 알아차리는 것을 용이하게 하기 때문이다.[167][168][169] 실제로 수행에서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하는데, 즉, 잡념[散亂]에 빠지지 않게 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쉴 때 마음 속으로 '하나'라고 세면서 '들이쉰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숨을 내쉴 때 마음 속으로 '하나'라고 세면서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쉴 때 마음 속으로 '둘'이라고 세면서 '들이쉰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숨을 내쉴 때 마음 속으로 '둘'이라고 세면서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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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숨을 들이쉴 때 마음 속으로 '열'이라고 세면서 '들이쉰다'고 알아차린다.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의도적인 호흡 콘트롤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숨을 내쉴 때 마음 속으로 '열'이라고 세면서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중간에 착오가 생겼으면 1을 다시 실행한다. 즉, 들숨 '하나'부터 다시 센다. 착오는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170][171][172]
세 번째 숨을 내쉰 후 네 번째 숨을 들이쉴 때 '넷'이라고 세지 않고 '다섯'이라고 센 경우
세 번째 숨을 내쉰 후 네 번째 숨을 들이쉴 때 '넷'이라고 세지 않고 다시 '셋'이라고 센 경우
수동적 주의집중을 유지한 상태로, 들숨이 엉덩이까지 들어왔으면 '엉덩이까지 들어왔다'고 알아차린다.
참고로, 숨이란 단순히 산소 등의 공기만을 뜻하지 않는다. 단순히 공기라면 허파에 들어오는 것이 엉덩이까지 들어올 수 없다. 숨이란 요가의 용어를 빌어 말하자면 프라나 또는 프라나야마를 뜻한다.
(한국어)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2022년 6월 8일에 확인.
이와 같이 ‘수(修)’의 소의가 되는 신기(身器)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그렇다면 어떠한 문(門)에 의해 능히 올바로 ‘수’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수’에 들어가는 문에는 요컨대
부정관과 지식념의 두 가지가 있으니
탐과 심(尋)이 두드러진 자가
순서대로 마땅히 닦아야 하는 것이다.
入修要二門
不淨觀息念
貪尋增上者
如次第應修
논하여 말하겠다. ‘수’에 올바르게 들어가는 문에는 요컨대 두 가지의 문이 있으니, 첫째는 부정관(不淨觀)이고, 둘째는 지식념(持息念)이다.
(한국어) 미륵보살 설, 현장 한역. 《유가사지론》 제28권.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2022년 6월 8일에 확인.
무엇을 ‘신(身)’이라고 하며, 무엇을 ‘신에 대해서 순신관에 머무른다’고 하며, 무엇을 ‘염(念)’이라고 하며, 무엇을 ‘염주(念住)’라고 하는가? 이제 이 가운데에서 간략하게 신상(身相)을 설명하면 35가지가 있다...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497~501. I-1.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2.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외진 처소에 가서517)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518) 앉는다. 그는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신행(身行)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도공이나 도공의 도제가 길게 돌리면서519) '길게 돌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돌리면서 '짧게 돌린다.'고 꿰뚫어 아는 것처럼, 그와 같이 비구는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이와 같이 안으로520)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521)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522) 몸에서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523)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524)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525)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526)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527)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528)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529)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530) 517) "비구의 마음은 [출가하기 이전에] 실로 오랜 세월을 형상 등의 대상들에 산만해져 있어서 명상주제를 챙기는 과정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사나운 황소에 멍에를 멘 달구지가 길을 벗어나서 달려가는 것과 같다. … 이 비구도 오랜 세월을 형상 등의 대상들이라는 맛난 것을 마시면서 자란 사나운 마음을 길들이고자 하면 형상등의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숲이나 나무 아래나 빈 방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대상이라 불리는 그 기둥에 마음챙김의 고삐를 매어 묶어야 한다. 그러면 그 마음은 이리저리 날뛰더라도 오랫동안 탐닉하던 대상을 얻지 못하게 되고 마음챙김의 고뼈를 자르고 도망칠 수 없어서 이제 근접[삼매]와 본[삼매]를 통해서 그[마음챙김을 확립하는] 대상을 의지하여 앉거나 눕는다. …
이것이 그의 수행에 어울리는 거처이다. 고래서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기에 적절한 거처를 취하는 것을 밝힌 것이라고 했다."(DA.iii.762)
"나아가서 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出人息念處]은 몸의 관찰 가운데서도 아주 섬세하고, 모든 부처님과 벽지불과 성문둘이 특별함을 증득하여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기초가 된다. 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의 확립은 여자나 남자나 코끼리나 말 등의 소리가 시끄러운 마을을 떠나지 않고서는 성취하기가 쉽지 않다. 소리는 선(禪)의 가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이 없는 숲에서는 수행자가 쉽게 이 명상주제를 거머쥐고[肥持, 把握]들숨날숨을 통해 제4선에 이르고 그 선(禪)을 기초로 삼아 상카라(行)들을 명상하고서 가장 높은 과위인 아라한과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적절한 거처를 보이기 위해 세존께서 '숲 속에 가거나'라고 시작하셨다."(DA.iii.763)"
518)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명상주제를 향하여 마음챙김을 두고, 혹은 "접두어 pari(둘레에, 원만히)는 철저히 파악한다는 뜻이고, mukhaṁ(입, 얼굴)은 출구의 뜻이며, sati(마음챙김)는 확립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parimukhaṁ satiṁ(철저히 파악하여 출구가 되는 마음챙김)이라고 설했다.(Ps.i.176)" 이와 같이 『무애해도』에서 설한 방법에 따라서도 이 뜻을 알아야 한다. 간략히 설하면 '철저히 파악하여 [반대되는 심리현상인 잊어버림으로부터] 출구인 마음챙김을 [공부]짓고'라는 뜻이다."(『청정도론』 VIII.161 )
519) "길게 돌리면서(dīghaṁ vā añchanto)라는 것은 큰 북의 가죽 등에 새길 때에 손과 발을 펴서 길게 끌어당기는 것을 말한다. 짧게 돌리면서라는 것은 상아통과 바늘통에 새길 때에 조금씩 짧게 끌어당기는 것을 말한다."(DA.iii.764)
520) "이와 같이 안으로(iti ajjhattaṁ vā)라는 것은 이와 같이 자신의 들숨과 날숨이라는 몸에 대해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는 것을 말한다."(DA.iii.765)
521) "혹은 밖으로(bahiddhā vā)라는 것은 남의 들숨과 날숨이라는 몸에 대해서이다."(Ibid)
522) "혹은 안팎으로(ajjhatta-bahiddhā vā)라는 것은 때로는 자신의 들숨과 날숨, 때로는 남의 들숨과 날숨이라는 몸에 대해서이다. 이것은 [수행자의 마음이] 아주 능숙해진 명상주제를 내려놓지 않고 [안팎으로] 거듭해서 움직이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팎을 관찰히는] 이 두 가지는 같은 시간엔(ekasmiṁ kāle) 일어나지 못한다."(Ibid)
523) "혹은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samudayadhammānupassī vā)라는 것은 마치 대장장이의 자루와 풀무의 튜브와 적절한 노력을 반연(攀緣)하여 바람이 계속해서 움직이듯 비구의 육체와 콧구멍과 마음을 반연하여 둘숨과 날숨이라는 몸이 게속해서 움직인다. 몸 등의 현상을 일어나는 현상이라 한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라고 설하셨다."(Ibid)
524) "혹은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라는 것은 마지 자루를 지위버리거나 풀무의 튜브가 부서지거나 적절한 노력이 없으면 그 바람은 생기지 않듯이 몸이 무너지고 콧구명이 부서지거나 마음이 소멸하면 들숨과 날숨이라는 몸은 생기지 않는다. 그리므로 몸 등이 소멸할 때 들숨과 날숨도 소멸한다고 보면서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라고 설하셨다."(Ibid)
525) "혹은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라는 것은 때로는 일어남을, 때로는 사라짐을 관찰하며라는 말이다."(Ibid)
526) "'몸이 있구나.'라고(atthi kāyo ti vā pan' assa)하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마음챙김을 확럽한다."
(Ibid)
527) "~때까지(yāvad eva)라는 것은 목적을 한정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런 말이다. 이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것은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지혜를 키우고 마음챙김을 크게 하기 위해서, 즉 마음챙김과 분명하게 알아차림을 중장하기 위해서라는 뜻이다."(DA.iii.766)
528) "이제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anissito ca viharati)는 것은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던 것을 이제 의지하지 않고서 머문다[는 뜻이다.]"(Ibid)
여기서 견해로 옮긴 원어는 diṭṭhi이다. 주석서에서 diṭṭhi가 별다른 설명이 없이 쓰일 때는 대부분 삿된 견해(micchā-diṭṭhi, 邪見)를 뜻한다.
529)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na ca kiñci loke upādiyati): 세상에서 물질이나 느낌이나 인식이나 의도들이나 혹은 알음알이를 "이것은 나의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히는 것"이라고 움켜쥐지 않는다."(Ibid)
530) "그가 이와 같이 공부지을 때 들숨과 날숨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禪이 일어난다. 그는 禪으로부터 출정하여 들숨과 날숨이나 혹은 禪의 구성요소들을 파악한다.
여기서 들숨과 날숨을 닦는 자는 "이 들숨과 날숨은 무엇을 의지하는가? 토대를 의지한다. 토대란 육체(karaja-kāya)이고 육체란 네 가지 근본물질과 파생물질이다."라고 이와 같이 물질(rūpa)을 파악한다. 그 다음에 동일한 대상을 가진 감각접촉(觸)을 다섯 번째로 하는 정신(nāma)을 파악한다.(감각접촉을 다섯 번째로 히는 것에 대해서는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 126쪽 주해를 참조할 것.)
이와 같이 정신 · 물질을 파악한 뒤 그것의 조건을 탐구하면서 무명으로 시작하는 연기(緣起)를 본다. "이것은 참으로 조건과 조건 따라 생긴 법일 뿐이지 중생이나 인간이라 할 어떤 것도 없다."라고 의심을 건너서 조건지워진 정신 · 물질에 대해 [무상 · 고 · 무아의] 삼특상을 제기하여 위빳사나를 증장시키면서 순차적으로 아라한과를 얻는다. 이것이 비구가 아라한까지 되는 출구가 된다.
禪을 닦는 자도 "이 禪의 구성요소들은 무엇을 의지하는가? 토대를 의지한다. 토대란 육체이다. 禪의 구성요소는 정신이고 육체란 물질이다."라고 정신 · 물질을 구분한 뒤 그것의 조건을 탐구하면서 무명으로 시작하는 연기(緣起)를 본다. "이것은 참으로 조건과 조건 따라 생긴 법일 뿐이지 중생이나 인간이라 할 어떤 것도 없다."라고 의심을 건너서, 조건지워진 정신 · 물질에 대해 [무상 · 고 · 무아의] 삼특상을 제기하여 위빳사나를 증장시키면서 순차적으로 아라한과를 얻는다. 이것이 비구가 아라한까지 되는 출구가 된다."(DA.iii.764)
"여기서 들숨과 날숨을 철저하게 파악하는 마음챙김은 괴로움의 진리[苦諦]이다. 그 [마음챙김을] 일어나게 한 이전의 갈애는 일어남의 진리[集諦]이다. 이 둘이 생기지 않음이 소멸의 진리[滅諦]이다. 괴로움을 철저히 알아 일어남을 버리고 소멸을 대상으로 가지는 성스러운 도가 도의 진리[道諦]이다. 이와 같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써 노력하여 적멸(nibbuti)을 얻는다. 이것이 들숨과 날숨을 통해서 입문한 비구가 아라한까지 되는 출구가 된다."(DA.iii.766)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9일에 확인. 호흡 알아차림
비구들이여, 그러면, 한 비구는 어떻게 몸을 몸으로서 관찰하면서 머무는가? 여기에, 한 비구는 숲이나 나무 아래, 또는 빈 초막으로 가서 앉는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자신의 몸을 곧바로 세우고, 자신의 앞에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숨을 들이쉴 때, 언제나 알아차리고, 숨을 내쉴 때 알아차린다. 길게 들이쉬면서, 그는 안다, ‘나는 길게 들이쉰다.’ 라고, 혹은 길게 내쉬면서 그는 안다, ‘나는 길게 내쉰다.’ 라고, 짧게 들이쉬면서 그는 안다, ‘나는 짧게 들이쉰다.’ 라고, 혹은 짧게 내쉬면서, 그는 안다, ‘나는 짧게 내쉰다.’ 라고. 그는 이와 같이 훈련한다.
‘나는 몸 전체를 경험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 그는 이와 같이 훈련한다. ‘나는 몸 전체를 경험하면서 숨을 내 쉬리라.’ 그는 이와 같이 훈련한다. ‘나는 신체적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 그는 이와 같이 훈련한다. ‘나는 신체적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숨을 내쉬리라.’
통찰
이런 방법으로, 그는 몸을 몸으로 안으로 관찰하면서 머물고, 혹은 몸을 몸으로 밖으로 관찰하면서 머물고, 혹은 몸을 몸으로 안과 밖 모두 관찰하면서 머문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 모두를 관찰하면서 머문다.4 그렇지 않으면, ‘몸이 있다’ 는 알아차림이, 있는 그대로의 지혜와 알아차림을 위해 필요한 만큼, 그에게 확립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독립적으로,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문다. 그것이 한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찰하면서 머무는 방법이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1. Mindfulness of Breathing
And how does a mendicant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t’s when a mendicant—gone to a wilderness, or to the root of a tree, or to an empty hut—sits down cross-legged, with their body straight, and focuses their mindfulness right there. Just mindful, they breathe in. Mindful, they breathe out.
When breathing in heavily they know: ‘I’m breathing in heavily.’ When breathing out heavily they know: ‘I’m breathing out heavily.’
When breathing in lightly they know: ‘I’m breathing in lightly.’ When breathing out lightly they know: ‘I’m breathing out lightly.’
They practice breathing in experiencing the whole body. They practice breathing ou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They practice breathing in stilling the body’s motion. They practice breathing out stilling the body’s motion.
It’s like a deft carpenter or carpenter’s apprentice. When making a deep cut they know: ‘I’m making a deep cut,’ and when making a shallow cut they know: ‘I’m making a shallow cut.’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externally, a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y meditate observing the body as liable to originate, as liable to vanish, and as liable to both originate and vanish. Or mindfulness is established tha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for knowledge and mindfulness. They meditate independent, not grasping at anything in the world.
That’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1. Mindfulness of Breathing
And how does a mendicant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t’s when a mendicant—gone to a wilderness, or to the root of a tree, or to an empty hut—sits down cross-legged, with their body straight, and focuses their mindfulness right there. Just mindful, they breathe in. Mindful, they breathe out.
When breathing in heavily they know: ‘I’m breathing in heavily.’ When breathing out heavily they know: ‘I’m breathing out heavily.’
When breathing in lightly they know: ‘I’m breathing in lightly.’ When breathing out lightly they know: ‘I’m breathing out lightly.’
They practice breathing in experiencing the whole body. They practice breathing ou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They practice breathing in stilling the body’s motion. They practice breathing out stilling the body’s motion.
It’s like a deft carpenter or carpenter’s apprentice. When making a deep cut they know: ‘I’m making a deep cut,’ and when making a shallow cut they know: ‘I’m making a shallow cut.’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externally, a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y meditate observing the body as liable to originate, as liable to vanish, and as liable to both originate and vanish. Or mindfulness is established tha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for knowledge and mindfulness. They meditate independent, not grasping at anything in the world.
That’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9일에 확인. Mindfulness of Breathing
"And how, O bhikkhus, does a bhikkhu live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Here, O bhikkhus, a bhikkhu, gone to the forest, to the foot of a tree, or to an empty place, sits down, bends in his legs crosswise on his lap, keeps his body erect, and arouses mindfulness in the object of meditation, namely, the breath which is in front of him.
"Mindful, he breathes in, and mindful, he breathes out. He, thinking, 'I breathe in long,' he understands when he is breathing in long; or thinking, 'I breathe out long,' he understands when he is breathing out long; or thinking, 'I breathe in short,' he understands when he is breathing in short; or thinking, 'I breathe out short,' he understands when he is breathing out shor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shall breathe in,' thinking thus, he trains himself.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shall breathe out,' thinking thus, he trains himself. 'Calming the activity of the body, I shall breathe in,' thinking thus, he trains himself. 'Calming the activity of the body, I shall breathe out,' thinking thus, he trains himself.
"Just as a clever turner or a turner's apprentice, turning long, understands: 'I turn long;' or turning short, understands: 'I turn short'; just so, indeed, O bhikkhus, a bhikkhu, when he breathes in long, understands: 'I breathe in long'; or, when he breathes out long, understands: 'I breathe out long'; or, when he breathes in short, he understands: 'I breathe in short'; or when he breathes out short, he understands: 'I breathe out short.' He trains himself with the though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shall breathe in.' He trains himself with the though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shall breathe out.' He trains himself with the thought: 'Calming the activity of the body I shall breathe in.' He trains himself with the thought: 'Calming the activity of the body I shall breathe out.'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or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externally, or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externally.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dissolution-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and-dissolution-things in the body. Or indeed his mindfulness is established with the though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just for knowledge and remembrance, and he lives independent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8일에 확인. 비구들이여, 그러면, 한 비구는 어떻게 몸을 몸으로서 관찰하면서 머무는가? 여기에, 한 비구는 숲이나 나무 아래, 또는 빈 초막으로 가서 앉는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자신의 몸을 곧바로 세우고, 자신의 앞에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And how does a mendicant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t’s when a mendicant—gone to a wilderness, or to the root of a tree, or to an empty hut—sits down cross-legged, with their body straight, and focuses their mindfulness right there.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And how does a mendicant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t’s when a mendicant—gone to a wilderness, or to the root of a tree, or to an empty hut—sits down cross-legged, with their body straight, and focuses their mindfulness right there.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8일에 확인. "And how, O bhikkhus, does a bhikkhu live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Here, O bhikkhus, a bhikkhu, gone to the forest, to the foot of a tree, or to an empty place, sits down, bends in his legs crosswise on his lap, keeps his body erect, and arouses mindfulness in the object of meditation, namely, the breath which is in front of him.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8일에 확인. 숨을 들이쉴 때, 언제나 알아차리고, 숨을 내쉴 때 알아차린다. 길게 들이쉬면서, 그는 안다, ‘나는 길게 들이쉰다.’ 라고, 혹은 길게 내쉬면서 그는 안다, ‘나는 길게 내쉰다.’ 라고, 짧게 들이쉬면서 그는 안다, ‘나는 짧게 들이쉰다.’ 라고, 혹은 짧게 내쉬면서, 그는 안다, ‘나는 짧게 내쉰다.’ 라고. 그는 이와 같이 훈련한다.
‘나는 몸 전체를 경험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 그는 이와 같이 훈련한다. ‘나는 몸 전체를 경험하면서 숨을 내 쉬리라.’ 그는 이와 같이 훈련한다. ‘나는 신체적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 그는 이와 같이 훈련한다. ‘나는 신체적 형성을 고요히 하면서 숨을 내쉬리라.’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Just mindful, they breathe in. Mindful, they breathe out.
When breathing in heavily they know: ‘I’m breathing in heavily.’ When breathing out heavily they know: ‘I’m breathing out heavily.’
When breathing in lightly they know: ‘I’m breathing in lightly.’ When breathing out lightly they know: ‘I’m breathing out lightly.’
They practice breathing in experiencing the whole body. They practice breathing ou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They practice breathing in stilling the body’s motion. They practice breathing out stilling the body’s motion.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Just mindful, they breathe in. Mindful, they breathe out.
When breathing in heavily they know: ‘I’m breathing in heavily.’ When breathing out heavily they know: ‘I’m breathing out heavily.’
When breathing in lightly they know: ‘I’m breathing in lightly.’ When breathing out lightly they know: ‘I’m breathing out lightly.’
They practice breathing in experiencing the whole body. They practice breathing ou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They practice breathing in stilling the body’s motion. They practice breathing out stilling the body’s motion.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8일에 확인. "Mindful, he breathes in, and mindful, he breathes out. He, thinking, 'I breathe in long,' he understands when he is breathing in long; or thinking, 'I breathe out long,' he understands when he is breathing out long; or thinking, 'I breathe in short,' he understands when he is breathing in short; or thinking, 'I breathe out short,' he understands when he is breathing out shor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shall breathe in,' thinking thus, he trains himself.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shall breathe out,' thinking thus, he trains himself. 'Calming the activity of the body, I shall breathe in,' thinking thus, he trains himself. 'Calming the activity of the body, I shall breathe out,' thinking thus, he trains himself.
(한국어) 대림스님 옮김(2014) 《맛지마 니까야》 제4권 제118경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 초기불전연구원. pp.183~184.
18. "① 길게 들이쉬면서는133)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길게 내쉬면서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② 짧게 들이쉬면서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③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134)며 공부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④ '몸의 작용[身行]135)136)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몸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133) '들이쉬면서는'은 assasanto를 옮긴 것인데 이 단어는 assasati(ā+✓śvas, to breathe)의 현재 분사이다. '길게 들이쉬면서는'은 길게 들이쉴 때라는 뜻으로 길게 들이쉬어야겠다.'거나 '짧게 쉬어야겠다.'거나 하는 그런 일체의 의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길게 들이쉴 때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안다는 뜻이다. 『청정도론』 (VIII.168)은 『무애해도』 의 설명을 인용히여 '이렇게 꿰뚫어 알 때 열의(chanda)가 일어나고, 또한 환희(pāmojja)가 일어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Ps.i.177)
135) 여기서 '몸의 작용[身行,kãya-saṅkhāra]'은 들숨날숨을 말한다. 『상윳따 니까야』제4권 까마부 경」2(S41:6/iv.293) §5에서 까마부 존자는 찟따 장자에게 “장자여,들숨날숨은 몸에 속하는 것이고 이런 법들은 몸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들숨날숨은 몸의 작용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본서 제2권 「교리문답의 짧은 경」(M44) §14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청정도론』의 복주서인『빠라맛타 만주사』도 “여기서 '몸의 작용[身行,kāya-saṅkhāra]'이란 들숨날숨을 말한다. 비록 이것은 마음에서 생긴 것이지만 그것의 존재가 몸에 묶여 있고 몸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몸의 작용이라 부른다."(Pm. 220)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윳따 니까야』 제3권 「앗사지 경」 (S22:88) §7의 주해도 참조할 것.
136) '신행(身行)'으로 한역되는 kãya-saṅkhāra를 본서 전체에서 역자는 크게 두 가지로 옮기고 있다. 여기서처럼 '몸의 작용'으로도 옮기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몸의 의도적 행위'로도 옮긴다.
(한국어) 대림스님 옮김(2014) 《맛지마 니까야》 제4권 제118경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 초기불전연구원. p.183. '들이쉬면서는'은 assasanto를 옮긴 것인데 이 단어는 assasati(ā+✓śvas, to breathe)의 현재 분사이다. '길게 들이쉬면서는'은 길게 들이쉴 때라는 뜻으로 길게 들이쉬어야겠다.'거나 '짧게 쉬어야겠다.'거나 하는 그런 일체의 의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길게 들이쉴 때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안다는 뜻이다. 『청정도론』 (VIII.168)은 『무애해도』 의 설명을 인용히여 '이렇게 꿰뚫어 알 때 열의(chanda)가 일어나고, 또한 환희(pāmojja)가 일어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Ps.i.177)
(한국어) 대림스님 옮김(2014) 《맛지마 니까야》 제4권 제118경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 초기불전연구원. p.183. 『청정도론』 은 다음과 같이 부연하고 있다. "온 들숨의 몸의 … 온 날숨의 몸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체험하면서, 분명하게 하면서 내쉬리라고 공부짓는다. 이와 같이 체험하면서, 분명하게 하면서 지혜와 함께한 마음으로 들이쉬고 내쉰다."(『청정도론』 VIII.171)
여기서 밝히고 있듯이 이 문맥에서 몸(kāya)은 호홉 그 자체를 나타낸다.
(한국어) 대림스님 옮김(2014) 《맛지마 니까야》 제4권 제118경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 초기불전연구원. p.183. 여기서 ‘몸의 작용[身行,kãya-saṅkhāra]’은 들숨날숨을 말한다. 『상윳따 니까야』제4권 까마부 경」2(S41:6/iv.293) §5에서 까마부 존자는 찟따 장자에게 “장자여,들숨날숨은 몸에 속하는 것이고 이런 법들은 몸에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들숨날숨은 몸의 작용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본서 제2권 「교리문답의 짧은 경」(M44) §14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청정도론』의 복주서인『빠라맛타 만주사』도 “여기서 ‘몸의 작용[身行,kāya-saṅkhāra]’이란 들숨날숨을 말한다. 비록 이것은 마음에서 생긴 것이지만 그것의 존재가 몸에 묶여 있고 몸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에 몸의 작용이라 부른다."(Pm. 220)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옷따 니까야』 제3권 「앗사지 경」 (S22:88) §7의 주해도 참조할 것.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499.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도공이나 도공의 도제가 길게 돌리면서 '길게 돌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돌리면서 '짧게 돌린다.'고 꿰뚫어 아는 것처럼, 그와 같이 비구는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It’s like a deft carpenter or carpenter’s apprentice. When making a deep cut they know: ‘I’m making a deep cut,’ and when making a shallow cut they know: ‘I’m making a shallow cut.’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It’s like a deft carpenter or carpenter’s apprentice. When making a deep cut they know: ‘I’m making a deep cut,’ and when making a shallow cut they know: ‘I’m making a shallow cut.’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8일에 확인. "Just as a clever turner or a turner's apprentice, turning long, understands: 'I turn long;' or turning short, understands: 'I turn short'; just so, indeed, O bhikkhus, a bhikkhu, when he breathes in long, understands: 'I breathe in long'; or, when he breathes out long, understands: 'I breathe out long'; or, when he breathes in short, he understands: 'I breathe in short'; or when he breathes out short, he understands: 'I breathe out short.' He trains himself with the though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shall breathe in.' He trains himself with the thought: 'Experiencing the whole body, I shall breathe out.' He trains himself with the thought: 'Calming the activity of the body I shall breathe in.' He trains himself with the thought: 'Calming the activity of the body I shall breathe out.'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499. 이와 같이 안으로520)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521)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520) "이와 같이 안으로(iti ajjhattaṁ vā)라는 것은 이와 같이 자신의 들숨과 날숨이라는 몸에 대해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는 것을 말한다."(DA.iii.765)
521) "혹은 밖으로(bahiddhā vā)라는 것은 남의 들숨과 날숨이라는 몸에 대해서이다."(Ibid)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externally, a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externally, a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499~500. 혹은 안팎으로522) 몸에서 몸을 관찰하여 머문다.
522) "혹은 안팎으로(ajjhatta-bahiddhā vā)라는 것은 때로는 자신의 들숨과 날숨, 때로는 남의 들숨과 날숨이라는 몸에 대해서이다. 이것은 [수행자의 마음이] 아주 능숙해진 명상주제를 내려놓지 않고 [안팎으로] 거듭해서 움직이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팎을 관찰히는] 이 두 가지는 같은 시간엔(ekasmiṁ kāle) 일어나지 못한다."(Ibid)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externally, a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externally, a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한국어) 대림스님 옮김(2016) 《맛지마 니까야》 제1권 제10경 〈마음챙김의 확립 경〉 초기불전연구원. p.334. '혹은 안팎으로(ajjhatta-bahiddhā vā)' 라는 것은 때로는 자기의 둘숨과 날숨, 때로는 다른 사람의 둘숨과 날숨이라는 몸에서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친숙해진 명상주제에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안팎으로 거듭해서 움직이는 때를 말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ekasmirh kāle) 자기의 들숨 · 날숨과 다른 사람의 둘숨 · 날숨을 관찰할 수는 없다.(MA.i.249)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8일에 확인. Ajjhatta-bahiddha va kaye kayanupassi viharati = "Or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externally." At one time in his own and at another in another's respiration-body, he dwells in contemplation of the body. By this there is reference to the time when the yogi's mind moves repeatedly back and forth (internally and externally by way of object) without laying aside the familiar subject of meditation [kalena attano kalena parassa assasapassasakaye etenassa pagunakammatthanam atthapetva aparaparam sañcarana kalo kathito].
Without leaving aside at intervals, nor from time to time nor occasionally [antarantara na thapetva]. The time when the mind moves repeatedly back and forth. Or the time when the meditation proceeds incessantly, in the internal and external phenomena [ajjhatta-bahidha dhammesu pi nirantaram va bhavanaya pavattana kalo].
Both cannot occur at once [eka kale pana idam ubbayam na labbhati].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499~500.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523)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524)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525) 머문다.
523) "혹은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samudayadhammānupassī vā)라는 것은 마치 대장장이의 자루와 풀무의 튜브와 적절한 노력을 반연(攀緣)하여 바람이 계속해서 움직이듯 비구의 육체와 콧구멍과 마음을 반연하여 둘숨과 날숨이라는 몸이 게속해서 움직인다. 몸 등의 현상을 일어나는 현상이라 한다. 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라고 설하셨다."(Ibid)
524) "혹은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라는 것은 마지 자루를 지위버리거나 풀무의 튜브가 부서지거나 적절한 노력이 없으면 그 바람은 생기지 않듯이 몸이 무너지고 콧구명이 부서지거나 마음이 소멸하면 들숨과 날숨이라는 몸은 생기지 않는다. 그리므로 몸 등이 소멸할 때 들숨과 날숨도 소멸한다고 보면서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라고 설하셨다."(Ibid)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8일에 확인. 그렇지 않으면, 그는 몸에서 일어나는 성질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 모두를 관찰하면서 머문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They meditate observing the body as liable to originate, as liable to vanish, and as liable to both originate and vanish.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They meditate observing the body as liable to originate, as liable to vanish, and as liable to both originate and vanish.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8일에 확인.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一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dissolution-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and-dissolution一things in the body.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499~500.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526)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527) 526) "'몸이 있구나.'라고(atthi kāyo ti vā pan' assa)하는 것은 '다만 몸이 있을 뿐이고 중생도 없고 인간도 없고 여자도 없고 남자도 없고 자아도 없고 자아에 속하는 것도 없고 나도 없고 내 것도 없고 어느 누구도 없고 누구의 것도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마음챙김을 확럽한다."
(Ibid)
527) "~때까지(yāvad eva)라는 것은 목적을 한정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런 말이다. 이 마음챙김을 확립하는 것은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다. 다만 지혜를 위하여, 계속해서 더 넓고 더 높이 지혜를 키우고 마음챙김을 크게 하기 위해서, 즉 마음챙김과 분명하게 알아차림을 중장하기 위해서라는 뜻이다."(DA.iii.766)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Or mindfulness is established tha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for knowledge and mindfulness.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Or mindfulness is established tha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for knowledge and mindfulness.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500~501.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528)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529)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530) 528) "이제 그는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anissito ca viharati)는 것은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던 것을 이제 의지하지 않고서 머문다[는 뜻이다.]"(Ibid)
여기서 견해로 옮긴 원어는 diṭṭhi이다. 주석서에서 diṭṭhi가 별다른 설명이 없이 쓰일 때는 대부분 삿된 견해(micchā-diṭṭhi, 邪見)를 뜻한다.
529)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na ca kiñci loke upādiyati): 세상에서 물질이나 느낌이나 인식이나 의도들이나 혹은 알음알이를 "이것은 나의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히는 것"이라고 움켜쥐지 않는다."(Ibid)
530) "그가 이와 같이 공부지을 때 들숨과 날숨을 표상으로 하여 네 가지 禪이 일어난다. 그는 禪으로부터 출정하여 들숨과 날숨이나 혹은 禪의 구성요소들을 파악한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They meditate independent, not grasping at anything in the world.
That’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8일에 확인. They meditate independent, not grasping at anything in the world.
That’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502~503. I-2. 네 가지 자세[四威儀]
3.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가면서 '걷고 있다.'고 꿰뚫어 알고, 서있으면서 '서있다.'531)고 꿰뚫어 알며, 앉아 있으면서 '앉아 있다.'고 꿰뚫어 알고, 누워있으면서 '누워있다.'고 꿰뚫어 안다.532) 또 그의 몸이 다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 그 자세대로 꿰뚫어 안다.533) 이와 같이 안으로534)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531) "'서리라'고 마음이 일어나면 그것은 바람을 생기게 하고 바람은 암시를 생기게 하여 마움의 작용에서 생긴 바람의 요소의 움직임에 의해서 온몸이 아래로부터 곧게 서는 상태를 '서는 것'이라 부른다." 나머지 자세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설명한다.(DA.iii.767)
532) "그가 이와 같이 꿰뚫어 알 때 '중생이 가고 중생이 선다고 말하지만 찹뜻은 중생이라 할 어떤 이가 가거나 서는 것이 아니다.'라고 일컫게 된다. 이것은 마치 '수레가 가고 수레가 선다.'라고 말하지만 수레라고 이름 붙일 어떤 것이 가거나 서는 것이 아니라 네 마리 소에 멍에를 매어 솜씨 좋은 마부가 몰 때 '수레가 가고 수레가 선다.'라는 단지 일상생활에서 통용되는 언어(vohāra)가 있는 것과 같다. 여기서 몸은 [자신이 가고 서고 앉고 누우면서도 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수레에 비유된다. 마음의 작용에서 생긴 바람은 [수레를 끌고 가는] 소에 비유된다. 그리고 마음은 마부에 비유된다."(Ibid)
533) "또 그의 몸이 다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 간에 그 자세대로 꿰뚫어 안다는 것은 [몸의 자세를] 모두 포함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어떤 형태로 몸이 놓여있더라도 각각의 형태대로 그것을 꿰뚫어 알아야 한다. 가는 형태를 통해서 '서 있다가 간다.(ṭhitaṁ gacchati)'라고 꿰뚫어 알고, 서고 앉고 눕는 형태를 통해서 '서 있다가 눕는다.'라고 꿰뚫어 안다."(DA.iii.768)
534) "이와 같이 안으로: 이와 같이 자신의 네 가지 자세를 파악함으로써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밖으로: 남의 네 가지 자세를 파악함으로써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때로는 자신의, 때로는 남의 네 가지 자세를 파악함으로써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는 말이다."(Ibid)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9일에 확인. 네 가지 자세
다시, 비구들이여, 걸을 때, 한 비구는 이해한다. ‘나는 걷고 있다.’ 서 있을 때, 그는 이해한다. ‘나는 서 있다.’ 앉아 있을 때, 그는 이해한다. ‘나는 앉아 있다.’ 누워 있을 때, 그는 이해한다. ‘나는 누워 있다.’ 혹은 그의 몸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지, 그에 따라, 그는 이해한다.
이렇게, 그는 몸을 몸으로 안으로, 밖으로, 또 안과 밖 모두 관찰하면서 머문다 … 그리고 그는 독립적으로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문다. 그것도 역시 한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찰하면서 머무는 방법이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2. The Postures
Furthermore, when a mendicant is walking they know: ‘I am walking.’ When standing they know: ‘I am standing.’ When sitting they know: ‘I am sitting.’ And when lying down they know: ‘I am lying down.’ Whatever posture their body is in, they know it.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externally, a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y meditate observing the body as liable to originate, as liable to vanish, and as liable to both originate and vanish. Or mindfulness is established tha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for knowledge and mindfulness. They meditate independent, not grasping at anything in the world.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2. The Postures
Furthermore, when a mendicant is walking they know: ‘I am walking.’ When standing they know: ‘I am standing.’ When sitting they know: ‘I am sitting.’ And when lying down they know: ‘I am lying down.’ Whatever posture their body is in, they know it.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externally, a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y meditate observing the body as liable to originate, as liable to vanish, and as liable to both originate and vanish. Or mindfulness is established tha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for knowledge and mindfulness. They meditate independent, not grasping at anything in the world.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8일에 확인. The Modes of Deportment
"And further, O bhikkhus, when he is going, a bhikkhu understands: 'I am going'; when he is standing, he understands: 'I am standing'; when he is sitting, he understands: 'I am sitting'; when he is lying down, he understands: 'I am lying down'; or just as his body is disposed so he understands it.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or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externally, or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externally.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dissolution一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and-dissolution一things, in the body. Or indeed his mindfulness is established with the though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just for knowledge and remembrance, and he lives independent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503~504. I-3. 분명하게 알아차림
4.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535)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536)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537)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 · 발우 · 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 · 서면서 · 앉으면서 · 잠들면서 · 잠을 깨면서 · 말하면서 ·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538)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535) "나아갈 때도라는 것은 가는 것이고 물러설 때도라는 것은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 둘은 네 가지 자세에서 다 얻어진다. 우선 갈 때 앞으로 몸을 옮겨가는 것을 '나아간다(abhikkama)'라고 하며 되돌아오는 것을 '물러선다(paṭikkama)'라고 한다. 서있을 때 서있는 자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것을 '나아간다'고 하며 뒤로 기울이는 것을 '물러선다'고 한다. 앉아 있을 때 앉은 자가 자리의 앞부분으로 향하여 움직이는 것을 '나아간다'라고 하며 뒷부분을 향해서 뒤로 움직이는 것을 '물러선다'라고 한다. 누워 있는 경우에도 이 방법이 적용된다."(MA.i.253)
536) 『중부 주석서』는 분명하게 알아차림을 다음의 넷으로 나누어서 아주 길게 설명하고 있다. 상세한 것은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 136~169쪽을 참조할 것. 아울러 sampajāna는 다른 곳에서는 '알아차림[正知]'이라고 옮겼는데 본경에서는 모두 '분명하게 알아차림'이라고 강조하여 옮기고 있음을 밝힌다.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행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면서 모든 행위를 하거나 분명하게 아는 것만을 오직 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나아가는 것 등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림을 행하며 어디서든 분명하게 알아차림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명하게 알아차림에는 (1) 이익됨을 분명하게 알아차림(sātthaka-sampajañña) (2) 적당함을 분명하게 알아차림(sappāya-sampajañña) (3) 영역을 분명하게 알아차림(gocara-sampajañña) (4) 미혹하지 않음인 분명하게 알아차림(asammoha―sampajañña)의 네 가지 분명하게 알아차림이 있다."(MA.i.253)
복주서에서는 미혹하지 않음인 분명하게 알아차림이란 나아감과 물러감 등에 대해서 미혹하지 않는 그 자체가 바로 분명하게 알아차림이라 설명하고 있다.(DAT.ii.315)
537) "구부릴 때도 펄 때도(samiñjite pasārite)라는 것은 '관절을 구부리고 펼 때'라는 말이다."(MA.i.264)
물론 이 경우와 다음에 나타나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도 위의 네 가지를 다 적용해서 분명하게 알아차려야 한다고 주석서는 길게 설명하고 있다.
538) "이와 같이 안으로라는 것은 이와 같이 네 가지 분명하게 알아차림을 파악하여 자신의 몸에 대해서나 남의 몸에 대해서나 때로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 때로는 남의 몸에 대해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는 것을 말한다."(MA.i.270)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9일에 확인. 완전한 깨어 있음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앞으로 가거나 뒤돌아올 때 완전한 깨어 있음으로 하고, 앞을 바라보고 멀리 바라볼 때도 완전한 깨어 있음으로 하고, 팔다리를 굽히고 펼 때도 완전한 깨어 있음으로 하고, 옷을 입거나 가사와 발우를 지니고 갈 때도 완전한 깨어 있음으로 하고, 먹고 마시고 음식을 소비하고 맛 볼 때도 완전한 깨어 있음으로 하고,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볼 때도 완전한 깨어있음으로 하고, 걷거나 서 있거나 앉거나 잠들거나 깨어나거나 말하거나 조용히 있을 때도 완전한 깨어있음으로 하는 사람이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몸을 몸으로 안으로, 밖으로, 또 안과 밖 모두 관찰하면서 머문다 … 그리고 그는 독립적으로,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문다. 그것도 역시 한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찰하면서 머무는 방법이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3. Situational Awareness
Furthermore, a mendicant acts with situational awareness when going out and coming back; when looking ahead and aside; when bending and extending the limbs; when bearing the outer robe, bowl, and robes; when eating, drinking, chewing, and tasting; when urinating and defecating; when walking, standing, sitting, sleeping, waking, speaking, and keeping silent.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3. Situational Awareness
Furthermore, a mendicant acts with situational awareness when going out and coming back; when looking ahead and aside; when bending and extending the limbs; when bearing the outer robe, bowl and robes; when eating, drinking, chewing, and tasting; when urinating and defecating; when walking, standing, sitting, sleeping, waking, speaking, and keeping silent.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9일에 확인. The Four Kinds of Clear Comprehension
"And further, O bhikkhus, a bhikkhu, in going forwards (and) in going backwards, is a person practicing clear comprehension; in looking straight on (and) in looking away from the front, is a person practicing clear comprehension; in bending and in stretching, is a person practicing clear comprehension; in wearing the shoulder-cloak, the (other two) robes (and) the bowl, is a person practicing clear comprehension; in regard to what is eaten, drunk, chewed and savored, is a person practicing clear comprehension; in defecating and in urinating, is a person practicing clear comprehension; in walking, in standing (in a place), in sitting (in some position), in sleeping, in waking, in speaking and in keeping silence, is a person practicing clear comprehension.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504~506. I-4. 몸의 32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
5.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539)은 살갖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 몸털 · 손발톱 · 이빨 · 살갗 · 살 · 힘줄 · 뼈 · 골수 · 콩팥 · 염통 · 간 · 근막 · 지라 · 허파 · 큰창자 · 작은창자 · 위 · 똥 · 쓸개즙 · 가래 · 고름 · 피 · 땀 · 굳기름 · 눈물 · [피부의] 기름가 · 침 · 콧물 · 관절활액 · 오줌 등이 있다.'고.540)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발바딕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 몸털 · 손발톱 · 이 · 살갗 · 살 · 힘줄 · 뼈 · 골수 · 콩팥 · 염통 · 간 · 근막 · 지라 · 허파 · 큰창자 · 작은창자 · 위 · 똥 · 쓸개즙 · 가래 · 고름 · 피 · 땀 · 굳기름 · 눈물 · [피부의] 기름기 · 침 · 콧물 · 관절활액 · 오줌 등이 있다.'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는 마치 양쪽에 주둥이가 있는 가마니에 여러 가지 곡물, 즉 밭벼 · 보리 · 녹두 · 완두 · 참깨 · 논벼 둥이 가득 담겨 있는데 어떤 눈밝은 사람이 그 자루를 풀고 반조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밭벼, 이것은 보리, 이것은 녹두, 이것은 완두, 이것은 참깨, 이것은 논벼다.'고.541) 539) "몸에는: 신체에는. 신체는 오물의 적집이기 때문에 더러운(kucchita) 머리털 등과 눈병 등 백 가지 병의 발생지(āya)이기 때문예 몸(kāya)이라고 한다."(『청정도론』VIII.46)
'몸에 대한 마음챙김(kāyagata-sati)'은 『청정도론』 VIII.1~144에 아주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필히 『청정도론』을 정독해 보실 것을 권한다.
540) 여기서 보듯이 본경과 『중부』 「염처경」에는 뇌(matthaluṅga)를 제외한 31가지 부위만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소부』의 『쿳다까빠타』와 『무애해도』 에서는 똥과 쓸개즙 사이에 뇌가 포함된 32가지로 나타난다. 그래서 『청정도론』 VIII. §44에서는 경에서 언급한 골수 안에 뇌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541) "비유를 적용해 보자면 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몸은 양쪽에 주둥이가 있는 자루와 같다. 머리털 둥의 32가지는 여러 가지 곡식이 섞여서 자루 안에 들어있는 것과 같다. 수행자는 눈 밝은 사람과 같다. 수행 자에게 32가지 몸의 부분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때는 자루를 풀어서 여러 가지 곡물들이 그 사람에게 드러나는 때와 같다."(DA.iii.769)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9일에 확인. 부정관一신체 부분들
다시, 비구들이여, 한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또 머리카락 끝에서부터 아래로, 피부로 둘러싸인 이 동일한 몸을,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불순물로 가득 차있는 것으로 확인한다. ‘이 몸속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빨,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신장, 심장, 간, 횡격막, 지라 (비장), 허파, 창자, 장간막, 위내용물, 똥, 담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 마치 양쪽에 입구가 있는 자루에 산 쌀, 붉은 쌀, 콩, 완두콩, 수수, 흰쌀 같은 많은 종류의 곡물들이 가득 차 있는데, 눈 밝은 사람이 그 자루를 열고 이렇게 확인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산 쌀이고, 이것은 붉은 쌀, 이것은 콩, 이것은 완두콩, 이것은 수수, 이것은 흰쌀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비구는 이 몸이 여러 가지 오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라고 이와 같이 확인한다. ‘이 몸속에는 머리털 … 오줌이 있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몸을 몸으로 안으로, 밖으로, 그리고 안과 밖 모두 관찰하면서 머문다 … 그리고 그는 독립적으로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문다. 그것도 역시 한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찰하면서 머무는 방법이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4. Focusing on the Repulsive
Furthermore, a mendicant examines their own body, up from the soles of the feet and down from the tips of the hairs, wrapped in skin and full of many kinds of filth. ‘In this body there is head hair, body hair, nails, teeth, skin, flesh, sinews, bones, bone marrow, kidneys, heart, liver, diaphragm, spleen, lungs, intestines, mesentery, undigested food, feces, bile, phlegm, pus, blood, sweat, fat, tears, grease, saliva, snot, synovial fluid, urine.’
It’s as if there were a bag with openings at both ends, filled with various kinds of grains, such as fine rice, wheat, mung beans, peas, sesame, and ordinary rice. And someone with good eyesight were to open it and examine the contents: ‘These grains are fine rice, these are wheat, these are mung beans, these are peas, these are sesame, and these are ordinary rice.’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4. Focusing on the Repulsive
Furthermore, a mendicant examines their own body, up from the soles of the feet and down from the tips of the hairs, wrapped in skin and full of many kinds of filth. ‘In this body there is head hair, body hair, nails, teeth, skin, flesh, sinews, bones, bone marrow, kidneys, heart, liver, diaphragm, spleen, lungs, intestines, mesentery, undigested food, feces, bile, phlegm, pus, blood, sweat, fat, tears, grease, saliva, snot, synovial fluid, urine.’
It’s as if there were a bag with openings at both ends, filled with various kinds of grains, such as fine rice, wheat, mung beans, peas, sesame, and ordinary rice. And someone with good eyesight were to open it and examine the contents: ‘These grains are fine rice, these are wheat, these are mung beans, these are peas, these are sesame, and these are ordinary rice.’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9일에 확인. The Reflection on the Repulsiveness of the Body
"And further, O bhikkhus, a bhikkhu reflects on just this body hemmed by the skin and full of manifold impurity from the soles up, and from the top of the hair down, thinking thus: 'There are in this body hair of the head, hair of the body, nails, teeth, skin, flesh, fibrous threads (veins, nerves, sinews, tendons), bones, marrow, kidneys, heart, liver, pleura, spleen, lungs, contents of stomach, intestines, mesentery, feces, bile, phlegm, pus, blood, sweat, solid fat, tars, fat dissolved, saliva, mucus, synovic fluid, urine.'
"Just as if, O bhikkhus, there were a bag having two openings, full of grain differing in kind, namely, hill-paddy, paddy, green-gram, cow-pea, sesamum, rice; and a man with seeing eyes, having loosened it, should reflect thinking thus: 'This is hill paddy; this is paddy, this is green-gram; this is cow-pea; this is sesamum; this is rice.' In the same way, O bhikkhus, a bhikkhu reflects on just this body hemmed in by the skin and full of manifold impurity from the soles up, and from the top of the hair down, thinking thus: 'There are in this body: hair of the head, hair of the body, nails, teeth, skin, flesh, fibrous threads (veins, nerves, sinews, tendons), bones, marrow, kidneys, heart, liver, pleura, spleen, lungs, contents of the stomach, intestines, mesentery, feces, bile, phlegm, pus, blood, sweat, solid fat, tears, fat dissolved, saliva, mucus, synovic fluid, urine.'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불타밀다(佛陀蜜多) 편찬, 담마밀다(曇摩蜜多) 한역, 김월운 번역. 《오문선경요용법》(五門禪經要用法).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0상(想) 가운데 간략히 백골 모양만 추려서 말하였다.
수행자는 백골을 보더라도 남녀의 색(色)에 애욕을 내기 때문에 그 애욕을 끊고자 하면 36물(物)6)을 관해야 한다.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506~507. I-5.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
6.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界]별로 고찰한다.542) '이 몸에는 땅의 요소,543)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비구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백정이나 그 조수가 소를 잡아서 각을 뜬 다음 큰 길 네거리에 이를 벌여놓고 앉아 있는 것과 같다.544)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界]별로 고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545) 542) "요소별로 따로따로 반조할 때 중생이라는 인식은 사라진다. 요소를 의지하여 그의 마음은 안주한다."(DA.iii.770)
543) 사대에 대한 설명은 『청정도론』 XI.33 이하와 『아비담마 길라잡이』 6장 §§2~3에 나타나는 해설들을 참조할 것.
544) "비유의 적용과 더불어 해설을 하면 一 마치 어떤 백정이나 혹은 그의 도제가 소를 집아 각을 뜬 다음 사방으로 통하는 대로의 중심지라 불리는 큰 길 네거리에 부분씩 나누어 놓고 앉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비구가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一 네 가지 자세[四威儀] 가운데 어떤 하나의 형태로 처해 있고 놓여 있기 때문에 一 '이 몸에 땅의 요소가있고 …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반조한다.
무슨 뜻인가? 백정이 소를 키울 때도, 도살장으로 끌고 올 때도, 끌고 온 뒤에 묶어서 둘 때도, 잡을 때도, 잡혀 죽은 것을 볼때도, 그것을 베어서 부분마다 나누지 않고서는 그에게 '소'라는 인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뼈로부터 살을 발라내어 앉아 있을 때 '소'라는 인식은 사라지고 '고기'라는 인식이 일어난다. 그는 '나는 소를 팔고 그들은 소를 사가져 간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고기를 팔고, 그둘은 고기를 사가져 간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이 비구가 이전의 재가자이었거나 출가를 하였어도 [명상주제를 들지 않은] 어리석은 범부일 때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덩어리를 분해하여 요소별로 따로따로 반조하지 않는 이상 그것에 대해 중생이라거나 사람이라거나 인간이라는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다."(DA.iii.770)
545) "그가 이와 같이 노력할 때 머지않아 요소의 분류를 비추는 통찰지를 수반하는 삼매가 일어난다. 그것은 단지 근접삼매이다. 이것은 고유성질을 가진 법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본삼매에는 이르지 못한다."(『청정도론』XI.44)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9일에 확인. 요소들
다시, 비구들이여, 한 비구는 이 동일한 몸을, 그 몸이 어떻게 놓여 있든, 어떤 기분에 있든, 요소의 방식으로 이와 같이 확인한다. ‘이 몸속에는 땅의 요소 (地大), 물의 요소 (水大), 불의 요소 (火大), 공기의 요소 (風大)가 있다. 마치 한 숙련된 백정이나 그의 도제가 소를 도살하여, 네거리에 앉아서 그것을 여러 조각으로 자르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한 비구는 이 동일한 몸을 … 요소의 방식으로 이와 같이 확인한다. ‘이 몸속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공기의 요소가 있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몸을 몸으로 안으로, 밖으로, 그리고 안과 밖 모두 관찰하면서 머문다 … 그리고 그는 독립적으로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문다. 그것도 역시 한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찰하면서 머무는 방법이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5. Focusing on the Elements
Furthermore, a mendicant examines their own body, whatever its placement or posture, according to the elements: ‘In this body there is the earth element, the water element, the fire element, and the air element.’
It’s as if a deft butcher or butcher’s apprentice were to kill a cow and sit down at the crossroads with the meat cut into portions.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5. Focusing on the Elements
Furthermore, a mendicant examines their own body, whatever its placement or posture, according to the elements: ‘In this body there is the earth element, the water element, the fire element, and the air element.’
It’s as if a deft butcher or butcher’s apprentice were to kill a cow and sit down at the crossroads with the meat cut into portions.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9일에 확인. The Reflection on the Modes of Materiality (Elements, Dhatu)
"And further, O bhikkhus, a bhikkhu reflects on just this body according as it is placed or disposed, by way of the modes of materiality, thinking thus: 'There are in this body the mode of solidity, the mode of cohesion, the mode of caloricity, and the mode of oscillation.'
"O bhikkhus, in whatever manner, a clever cow-butcher or a cow-butcher's apprentice, having slaughtered a cow and divided it by way of portions, should be sitting at the junction of a four-cross-road; in the same manner, a bhikkhu reflects on just this body, according as it is placed or disposed, by way of the modes of materiality, thinking thus: 'There are in this body the mode of solidity, the mode of cohesion, the mode of caloricity, and the mode of oscillation.'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507~508. I-6.~I-14. 아홉가지 공동묘지의 관찰
7. "다시 비구들이여, ①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 부풀고546) 검푸르게 되고547) 문드러지는 것548)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549)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546) "마치 바람이 가득 찬 풀무처럼 생명이 끝난 후부터 서서히 팽창하고 부어서 부풀었기 때문에 부푼 것이다(uddhumāta). 부품(uddhumātaṁ)이 바로 부푼 것(uddhumātaka)이다. 혹은 부풀음(uddhumāta)은 혐오스러워서 넌더리난다(kucchita). 그러므로 부푼 것(uddhumātaka)이다."(DA.iii.771)
547) "퇴색되어 가는 것이 검푸른 것이다. 검푸름(vinīla)이 바로 검푸른 것(vinīlaka)이다. 혹은 검푸름(vinīla)은 혐오스러워서 넌더리난다. 그러므로 검푸른 것(vinīlaka)이다. 이것은 고깃덩이가 많은 곳은 붉은색, 고름이 모여 있는 곳은 흰색이다. 그러나 마치 검푸른 곳에 검푸른 천으로 쌓여 있는 것처럼 대부분 검푸른 시체의 동의어이다."(Ibid)
548) "끊어져 나간 곳이나 아홉 구멍으로부터 고름과 함께 흘러내리는 것이 문드러짐이다. 문드러짐(vipubba) 그 자체가 바로 문드러진 것(vipubbaka)이다. 혹은 문드러짐은 혐오스러워서 넌더리난다. 그러므로 문드러진 것(vipubbaka)이다. 문드러져 버렸고 그런 상태에 이른 것이 문드러져 버린(vipubbakajāta) 것이다."(Ibid)
549)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는 것은 그 비구는 자신의 몸을 저 시체와 더불어 지혜로 비추어 본다, 견주어 본다라는 말이다. 어떻게?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비추어 바라본다. 이 뜻은 다음과 같다 一 바람, 온기, 알음알이라는 이들 세 가지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몸은 서고 가는 둥을 할 수 있다. 이 셋이 없으면 이 몸도 이렇게 썩어가는 성질을 가졌고, 이렇게 부풀어 오르는 상태 등으로 무너질 것이고, 이렇게 부풀어 오르는 상태 등을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비추어 바라본다]."(DA.iii.771~772)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9일에 확인. 아홉 가지 시체 안치장 명상법
다시, 비구들이여, 한 비구는 시체 안치소 한 옆에 던져진 시체가 죽은 지 하루, 이틀, 사흘이 되어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져 진물이 배어나오는 것을 실제로 보는 것처럼 상상하며, 자신의 몸을 그 시체와 이와 같이 비교한다. ‘이 몸도 또한 같은 성질이며, 그와 같이 될 것이고, 저런 운명으로부터 예외가 아니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몸을 몸으로 안으로, 밖으로, 그리고 안과 밖 모두 관찰하면서 머문다 … 그리고 그는 독립적으로 세상의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문다. 그것도 역시 한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찰하면서 머무는 방법이다.
다시, 시체 안치장 한 옆에 던져진 시체가 까마귀, 매, 독수리, 개, 자칼 혹은 여러 종류의 벌레들에게 먹히는 것을 자신이 실제로 보는 것처럼, 한 비구는 이 동일한 몸을 그 시체와 이와 같이 비교한다. ‘이 몸도 또한 같은 성질이며, 그와 같이 될 것이고, 저런 운명으로부터 예외가 아니다.’
… 그것도 역시, 한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찰하면서 머무는 방법이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6. The Charnel Ground Contemplations
Furthermore, suppose a mendicant were to see a corpse discarded in a charnel ground. And it had been dead for one, two, or three days, bloated, livid, and festering. They’d compare it with their own body: ‘This body is also of that same nature, that same kind, and cannot go beyond that.’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9일에 확인. 1.6. The Charnel Ground Contemplations
Furthermore, suppose a mendicant were to see a corpse discarded in a charnel ground. And it had been dead for one, two, or three days, bloated, livid, and festering. They’d compare it with their own body: ‘This body is also of that same nature, that same kind, and cannot go beyond that.’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9일에 확인. Cemetery Contemplation 1
"And further, O bhikkhus, if a bhikkhu, in whatever way, sees a body dead, one, two, or three days: swollen, blue and festering, thrown into the charnel ground, he thinks of his own body thus: 'This body of mine too is of the same nature as that body, is going to be like that body and has not got past the condition of becoming like that body.'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508. 8. "다시 비구들이여, ②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먹고,550) 솔개 무리가 쪼아먹고, 독수리 떼가 쪼아먹고, 개 떼가 뜯어먹고, 자칼들이 뜯어먹고, 별의 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550) "쪼아먹고(khajjamāna)란 [까마귀나 독수리 등이] 배 등에 앉아서 배의 살점이나 입술의 살점이나 눈 부위 등을 찍어먹는 것이다."(DA.iii.772)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다시, 시체 안치장 한 옆에 던져진 시체가 까마귀, 매, 독수리, 개, 자칼 혹은 여러 종류의 벌레들에게 먹히는 것을 자신이 실제로 보는 것처럼, 한 비구는 이 동일한 몸을 그 시체와 이와 같이 비교한다. ‘이 몸도 또한 같은 성질이며, 그와 같이 될 것이고, 저런 운명으로부터 예외가 아니다.’
… 그것도 역시, 한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찰하면서 머무는 방법이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Furthermore, suppose they were to see a corpse discarded in a charnel ground being devoured by crows, hawks, vultures, herons, dogs, tigers, leopards, jackals, and many kinds of little creatures. They’d compare it with their own body: ‘This body is also of that same nature, that same kind, and cannot go beyond that.’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Furthermore, suppose they were to see a corpse discarded in a charnel ground being devoured by crows, hawks, vultures, herons, dogs, tigers, leopards, jackals, and many kinds of little creatures. They’d compare it with their own body: ‘This body is also of that same nature, that same kind, and cannot go beyond that.’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Cemetery Contemplation 2
"And, further, O bhikkhus, if a bhikkhu, in whatever way, sees, whilst it is being eaten by crows, hawks, vultures, dogs, jackals or by different kinds of worms, a body that had been thrown into the charnel ground, he thinks of his own body thus: 'This body of mine, too, is of the same nature as that body, is going to be like that body, and has not got past the condition of becoming like that body.'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or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externally, or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externally.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dissolution-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and-dissolution-things in the body. Or indeed his mindfulness is established with the though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just for knowledge and remembrance, and he lives independent,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509. 9. "다시 비구들이여, ③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④ 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는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⑤ 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⑥ 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다시, 시체 안치장 한 옆에 버려진 시체가, 살과 피가 묻어 있는 해골이 힘줄로 엮여 있고 … 피로 얼룩진 살점 없는 해골이 힘줄로 엮여 있고 … 살과 피가 없는 해골이 힘줄로 엮여 있고 … 분리된 뼈들이—여기에 손뼈, 저기에 발뼈, 여기에 정강이뼈, 저기에 넓적다리뼈, 여기에 엉덩이뼈, 저기에 등뼈, 여기에 갈비뼈, 저기에 가슴뼈, 여기에 팔뼈, 저기에 어깨뼈, 여기에 목뼈, 저기에 턱뼈, 여기에 이빨, 저기에 두개골—모든 방향으로 흩어져 나뒹구는 것을 자신이 실제로 보는 것처럼—한 비구는 이 동일한 몸을 그 시체와 이와 같이 비교한다. ‘이 몸도 또한 같은 성질이며, 그와 같이 될 것이고, 저런 운명으로부터 예외가 아니다.’
… 그것도 역시, 한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찰하면서 머무는 방법이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Furthermore, suppose they were to see a corpse discarded in a charnel ground, a skeleton with flesh and blood, held together by sinews …
A skeleton without flesh but smeared with blood, and held together by sinews …
A skeleton rid of flesh and blood, held together by sinews …
Bones without sinews, scattered in every direction. Here a hand-bone, there a foot-bone, here a shin-bone, there a thigh-bone, here a hip-bone, there a rib-bone, here a back-bone, there an arm-bone, here a neck-bone, there a jaw-bone, here a tooth, there the skull …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Furthermore, suppose they were to see a corpse discarded in a charnel ground, a skeleton with flesh and blood, held together by sinews …
A skeleton without flesh but smeared with blood, and held together by sinews …
A skeleton rid of flesh and blood, held together by sinews …
Bones rid of sinews scattered in every direction. Here a hand-bone, there a foot-bone, here a shin-bone, there a thigh-bone, here a hip-bone, there a rib-bone, here a back-bone, there an arm-bone, here a neck-bone, there a jaw-bone, here a tooth, there the skull …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Cemetery Contemplation 3
"And, further, O bhikkhus, if a bhikkhu, in whatever way, sees a body, thrown in the charnel ground and reduced to a skeleton together with (some) flesh and blood held in by the tendons, he thinks of his own body thus: 'This body of mine, too, is of the same nature as that body, is going to be like that body, and has not got past the condition of becoming like that body.'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or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externally, or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externally.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dissolution-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and-dissolution-things in the body. Or indeed, his mindfulness is established with the though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just for knowledge and remembrance, and he lives independent,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Cemetery Contemplation 4
"And, further, O bhikkhus, if a bhikkhu, in whatever way, sees a body thrown in the charnel ground and reduced to a blood-besmeared skeleton without flesh but held in by the tendons, he thinks of his own body thus: 'This body of mine, too, is of the same nature as that body, is going to be like that body, and has not got past the condition of becoming like that body.'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Cemetery Contemplation 5
"And, further, O bhikkhus, if a bhikkhu, in whatever way, sees a body thrown in the charnel ground and reduced to a skeleton held in by the tendons but without flesh and not besmeared with blood, he thinks of his own body thus: 'This body of mind, too, is of the same nature as that body, is going to be like that body, and has not got past the condition of becoming like that body.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Cemetery Contemplation 6
"And, further, O bhikkhus, if a bhikkhu, in whatever way, sees a body thrown in the charnel ground and reduced to bones gone loose, scattered in all directions — a bone of the hand, a bone of the foot, a shin bone, a thigh bone, the pelvis, spine and skull, each in a different place — he thinks of his own body thus: 'This body of mine, too, is of the same nature as that body, is going to be like that body, and has not got past the condition of becoming like that body.'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한국어)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509~510. 10. "다시 비구들이여, ⑦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⑧ 백골이 되어 단지 뼈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⑨ 그 백골이 해를 넘기면서551) 삭아552) 가루가 된553)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554)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551) "해를 넘기면서(terovassika)란 몇 년이 지난 것이란 말이다."(Ibid)
552) "삭아(pūti)라는 것은 노지에 놓여 있어서 바람과 햇볕과 비에 맞아 몇 년이 지나서 삭은 것이다."(Ibid)
553) "가루가 된(cuṇṇakajāta)이란 가루가 되어서 흩어져 있는 것이다."(Ibid)
554) 한편 『청정도론』 VI에서는 10가지 부정관을 설하고 있는데 그 열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부푼 것 ② 검푸른 것 ③ 문드러진 것 ④ 끊어진 것 ⑤ 뜯어 먹힌 것 ⑥ 흩어진 것 ⑦ 난도질 당하여 뿔뿔이 흩어진 것 ⑧ 피가 흐르는 것 ⑨ 벌레가 버글거리는 것 ⑩ 해골이 된 것이다.
(한국어) Majjhima Nikāya - Satipaṭṭhāna Sutta - 10. 알아차림의 토대 - Mahāsatipaṭṭhānasutta—케마짜라 빅쿠 한글 번역.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다시, 시체 안치장 한 옆에 던져진 시체가, 뼈는 조개 색깔처럼 하얗게 탈색되고 … 뼈들이 무더기로 쌓이고, 그 뼈 무더기가 일 년이 지나 … 그 뼈들이 썩고 바스러져 가루가 되는 것을 실제로 보는 것처럼, 한 비구는 이 동일한 몸을 그 시체와 이와 같이 비교한다. ‘이 몸도 또한 같은 성질이며, 그와 같이 될 것이고, 저런 운명으로부터 예외가 아니다.’
통찰
이런 방법으로, 그는 몸을 몸으로 안으로 관찰하면서 머물고, 혹은 몸을 몸으로 밖으로 관찰하면서 머물고, 혹은 몸을 몸으로 안과 밖 양쪽으로 관찰하면서 머문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몸에서 몸의 일어나는 성질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혹은 몸에서 몸의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혹은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성질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있다’ 라는 알아차림이, 있는 그대로의 지혜와 알아차림에 필요한 만큼 그에게 확립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독립적으로, 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머문다. 그것도 역시 한 비구가 몸을 몸으로 관찰하면서 머무는 방법이다.
(영어) The Longer Discourse on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White bones, the color of shells …
Decrepit bones, heaped in a pile …
Bones rotted and crumbled to powder. They’d compare it with their own body: ‘This body is also of that same nature, that same kind, and cannot go beyond that.’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externally, a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y meditate observing the body as liable to originate, as liable to vanish, and as liable to both originate and vanish. Or mindfulness is established tha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for knowledge and mindfulness. They meditate independent, not grasping at anything in the world.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Middle Discourses 10 - Mindfulness Meditation - Mahāsatipaṭṭhānasutta—Bhikkhu Sujato.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White bones, the color of shells …
Decrepit bones, heaped in a pile …
Bones rotted and crumbled to powder. They’d compare it with their own body: ‘This body is also of that same nature, that same kind, and cannot go beyond that.’
And so they meditate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internally, externally, and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They meditate observing the body as liable to originate, as liable to vanish, and as liable to both originate and vanish. Or mindfulness is established tha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for knowledge and mindfulness. They meditate independent, not grasping at anything in the world.
That too is how a mendicant meditates by observing an aspect of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Cemetery Contemplation 7
"And, further, O bhikkhus, if a bhikkhu, in whatever way, sees a body thrown in the charnel ground and reduced to bones, white in color like a conch, he thinks of his own body thus: 'This body of mine, too, is of the same nature as that body, going to be like that body and has not got past the condition of becoming like that body;'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Cemetery Contemplation 8
"And, further, O bhikkhus, if a bhikkhu, in whatever way, sees a body thrown in the charnel ground and reduced to bones more than a year old, heaped together, he thinks of his own body thus: 'This body of mine, too, is of the same nature as that body, is going to be like that body and has not got past the condition of becoming like that body.'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also,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영어) Soma Thera (1998). The Way of Mindfulness - The Satipatthana Sutta and Its Commentary. 2022년 6월 10일에 확인. Cemetery Contemplation 9
"And, further, O bhikkhus, if a bhikkhu, in whatever way, sees a body thrown in the charnel ground and reduced to bones gone rotten and become dust, he thinks of his own body thus: 'This body of mine too, is of the same nature as that body, is going to be like that body and has not got past the condition of becoming like that body.'
"Thus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or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externally, or he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internally and externally.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dissolution-things in the body, or he lives contemplating origination-and-dissolution-things in the body. Or his mindfulness is established with the thought, 'The body exists,' to the extent necessary just for knowledge and remembrance, and he lives independent and clings to naught in the world.
"Thus, indeed, O bhikkhus, a bhikkhu lives contemplating the body in the body."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그런데 유가사(瑜伽師)가 이러한 골쇄관을 닦을 때에는 모두 세 단계가 있으니, 첫 번째는 ‘처음으로 업을 익히는 단계[初習業位]’이며, 두 번째는 ‘이미 익숙하게 닦는 단계[已熟修位]’이며, 세 번째는 ‘작의(作意)를 초월하는 단계[超作意位]’이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899.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The practitioners (yogācāra 瑜伽師) who cultivate meditation on the loathsome 骨鎖觀 are either
1. beginners or those who are at the stage of initial action (ādikarmika 初習業位), or
2. masters or those who mastered the practice (kṛtaparijaya 已熟修位),123 or
3. absolute masters of mental application or those who have gone beyond mental application (atikrāntamanaskāra 超作意位).124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이를테면 관행자(觀行者)가 이와 같은 부정관을 닦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먼저 마음을 자신의 몸 한 부분에 계속(繫屬)시켜야 하는데, 혹은 발가락에, 혹은 미간에, 혹은 콧등에, 혹은 그 밖의 자신이 좋아하는 곳에 마음을 머물게 한다. 그리고 나서 승해의 힘에 의해 자신의 몸 한부분을 ‘피부와 살이 물러지고 떨어져나가 점차 뼈만이 앙상하게 되는 것’을 가상으로 사유하고, 나아가 온몸의 골쇄를 관찰한다. 그리하여 한 몸(자기 몸)을 관찰하고 나서 다시 두 번째의 몸(다른 이의 온몸)을 관찰하며, 이와 같이 점차로 확대하여 하나의 방, 하나의 절[園], 하나의 촌락, 하나의 국토, 나아가 대지로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두루 관찰하여 그 사이가 골쇄로 가득 차 있다고 사유한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900.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10ab. The beginners 初習業位 [cultivate meditation on the loathsome 觀骨鎖] by enlarging (vistāra 廣) the visualization of the bones up to the sea 海, and by reducing (saṃkṣepa 略) it.126 The practitioners 觀行者 who desire to cultivate meditation on the loathsome 不淨觀 first fix thought on 心得住 a part of their body [svāṅgāvayava 自身分],127 either the toe [pādāṅguṣṭha 足指] or the forehead [lalāṭa 額] or any other part which they choose 隨所樂處; then 已, they "purify" the bone [asthiviśodhana], i.e., they [visualize 假想思惟] setting aside the flesh by supposing that flesh rots 爛 and falls away [māṃsakledapīta]; they enlarge 廣 their visualization progressively 漸 and come to see their entire body reduced to a skeleton [asthisaṁkalā].
Likewise, in order to increase their power of visualization [adhimokśābhivardhanaartha; adhimukti 勝解, ii. 72 (F 325f)], they create the same idea (adhimucyate) of a second individual 第二, of the individuals of the monastery [vihāra 寺], of the pleasure garden [ārāma 園], of the village 村, of the region [kśetr a國], until the universe [or whole earth; pṛthivī 遍地], surrounded by the sea 海 [samudraparyanta; see iii. 45], {15 a} would be conceived as being filled with 充滿 skeletons 骨鎖. <151>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그리고 다시 승해를 증대시키기 위해 널리 확대시켜 나갔던 것을 점차로 줄여 관찰하여 마침내 오로지 한 몸의 골쇄만을 관찰한다. 이렇게 점차로 줄여 나가면서 부정관을 성취하게 될 때를 유가사가 ‘처음으로 업을 익히는 단계’라고 이름한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p.1900~1901.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In order to strengthen the power of the visualization 勝解, they then reduce the scope [cittasaṁkśepārtha] 漸略而觀128 until the moment where they see 觀 only their own body 一具 in the state of a skeleton 骨鎖.
The meditation on the loathsome is then complete; and henceforth, the practitioners are said to be beginners (ādikarmika 初習業位).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또한 줄여 관찰하는 승해의 힘을 증대시키기 위해 한 몸 중에서 먼저 발의 뼈를 제거한 나머지의 뼈를 사유하여 거기에 마음을 묶어 두고, 나아가 점차로 머리의 반쪽 뼈를 제거한 나머지 반쪽의 뼈를 사유하여 거기에 마음을 묶어 둔다. 이렇게 점차로 줄여 나가는 부정관을 성취하게 될 때를 유가사가 ‘이미 익숙하게 닦는 단계’라고 이름한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p.1900~1901.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10cd. The master [cultivates the meditations on the loathsome 骨鎖觀] by setting aside 除 the foot 足, etc., until 至: half of the skull 頭半.130 In order to strengthen the power of this reducing visualization 勝解 [cittasaṃkṣepaviśeṣārtha] 略觀勝解力,131 the practitioners set aside the bones of the foot [pādāsthi 足骨] and consider the remaining parts [of the body] 餘骨; and so on, progressively 漸次 reducing more and more, until the moment when, setting aside one half of the skull [kapālasyārdham 頭半骨], they consider nothing more than the other half: the practitioners are then said to be masters [kṛtaparijaya 已熟修位]; they possess the mastery in the mental application [manasikaroti] which constitutes this visualization 觀.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또한 줄여 관찰하는 승해를 자유 자재하도록 하기 위해 반쪽의 머리뼈마저 제거하고, 마음을 미간에 두고 오로지 하나의 소연에 집중하여 고요히 머물게 한다. 이같이 지극히 줄여진 부정관을 성취하게 될 때를 유가사가 ‘작의(作意)를 초월하는 단계’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p.1900~1901.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11ab. Holding one's thought 繫心 between the two eyebrows 眉閒, they are "an absolute master 超作意位 in the mental application" [on the loathsome 不淨觀].133 They again set aside 除 the [last] half of the skull 半頭骨 and hold their thought 繫心 between the two eyebrows (brū) 眉閒. They are then practitioners 瑜伽師 who have gone beyond 超作意位 the mental application on the loathsome 不淨觀 [śubhāyāmatikrāntamanaskāra].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부정관의 상의 차별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다음으로 지식념(持息念)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의 차별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지식념은 혜(慧)로서 5지(地)에 의지하며
바람을 연으로 하고, 욕계 신(身)에서 일어나며
두 가지로 획득되고, 진실로서 외도에게 일어나지 않으며
여섯 가지의 원인이 있으니, 수(數) 등이 그것이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p.1902~1903.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12ac. Mindfulness of breathing 息念 is understanding 慧 [in its intrinsic nature], belongs to five stages 五地, has wind 風 for its cognitive object 緣, is practiced by beings [i.e., humans and gods] of the realm of desire 欲身.139
12c. [Mindfulness of breathing 息念] does not belong to outsiders 外道.144 12d. [Mindfulness of breathing 息念] has six parts 六, (1) counting 數, [(2) following 隨, (3) fixing 止, (4) observing 觀, (5) modifying 轉 and (6) complete purity 淨].14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논하여 말하겠다. ‘지식념’이라고 하는 말은 바로 계경 중에서 설하고 있는 아나아파나념(阿那阿波那念)을 말한다. 여기서 ‘아나(na)’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숨을 지녀[持息] 들이쉰다는 말로서, 이는 바로 바깥의 바람[外風]을 끌어당겨 몸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파나(apna)’란 이를테면 숨을 지녀 내쉰다는 말로서, 이는 바로 안의 바람[內風]을 끌어당겨 몸 밖으로 나가게 한다는 뜻이니, 혜(慧)가 염(念)의 힘에 의해 이것(들이쉬고 내쉬는 숨)을 대상으로 삼아 관찰하기 때문에 아나아파나념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902.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12ac. Mindfulness of breathing 息念 is understanding 慧 [in its intrinsic nature], belongs to five stages 五地, has wind 風 for its cognitive object 緣, is practiced by beings [i.e., humans and gods] of the realm of desire 欲身.139
1. Āna 阿那, i.e., in-breathing (śvāsa) 持息入, the entry 入 of wind [vāyu 風]; apāna 阿波那, [i.e.,) out-breathing 持息出, the leaving 出 of wind 風. Mindfulness (smṛti) concerning the one and the other is mindfulness of breathing (ānāpānasmṛti 阿那阿波那念).14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수(數, ganaṇā)’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마음을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여 어떠한 가행도 짓지 않고, 몸과 마음을 편안히 놓아둔 채 오로지 들숨과 날숨만을 생각하고 기억하여 하나에서부터 열에 이르기까지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헤아리는 것[數]을 말하니, 마음이 경계(즉 입식ㆍ출식)에 너무 매이거나 흩어지는 것을 염려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904.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1. Counting (gaṇanā 數). - One fixes one's thought 繫心 on 緣 in-breathing and out-breathing [āśvasapraśvāsa 入出息], without effortful exertion or instigation (abhisaṃskāra 加行) 不作加行, leaving 捨 the body and thought 身心 as they are;148 through mere mindfulness [smṛti 念] 唯念憶持入出息, one counts 數 from one up to ten 從一至十. <155> Through fear of 恐 being too brief (abhisaṃkṣepa) for thought 心於現 and of distracting (vikṣepa 散) (vii. 11) thought 極聚散, one does not [count] below ten or above ten 不減不增.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그렇지만 여기에는 세 가지 과실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수를 덜 헤아리는 과실[數減失]로서, 두 숨을 한 숨으로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둘째는 수를 더 헤아리는 과실[數增失]로서, 두 숨을 한 숨으로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셋째는 헤아리는 것이 뒤섞이는 과실[雜亂失]로서, 들숨을 날숨이라 하고 날숨을 들숨이라고 헤아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만약 이와 같은 세 종류의 과실을 떠난 것이라면, 그것을 일컬어 ‘올바른 수’라고 한다. 그런데 만약 열까지 헤아리는 중간에 마음이 산란해진 자라면 마땅히 다시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차례로 그것을 헤아리고, 끝마친 후 다시 시작하여 마침내 선정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83) 83) 참고로 숨을 헤아릴 때에는 들숨부터 먼저 헤아려야 하는데, 그것은 생을 처음 시작하는 단계[初生位]에서는 먼저 들숨을 쉬고, 나아가 죽을 때에는 최후로 날숨을 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처럼 죽고 태어나는 상태를 각찰(覺察)하기 때문에 점차로 비상(非常)의 상(想, 다음에 설할 총상념주의 하나)을 능히 수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904.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Three faults [doṣa] 三失 are to be avoided:
1. counting too few [ūnagaṇanā] 數減失, by taking two breaths as one 於二謂一;
ii. counting too many [adhikagaṇanā] 數增失, by taking one breath as two 於一謂二;
iii. counting in a confused manner [saṃkara] 雜亂失, by taking in-breathing for outbreathing 於入謂出 and vice versa 於出謂入.
The counting that avoids these faults is correct 正數. {17 a} 一 If, in the course of this exercise (antarā), thought becomes distracted (vikṣipta) 心散亂, one must count anew from the starting point until concentration (saṃādhi 定) is obtained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수(隨, anugama)’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마음을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여 어떠한 가행도 짓지 않고 숨을 따라[隨息] 가는 것으로, 숨이 들고 날 때 그것이 어느 정도 멀리 이르는지를 생각[念]하는 것을 말한다. 즉 숨이 들어올 때 그것이 온몸에 두루 미치는지, 일부분에 미치는지를 생각하며, 그러한 숨이 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따라가 목구멍, 심장, 배꼽, 엉덩이, 넓적다리, 무릎, 종아리, 내지는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항상 그것을 따라 쫓으며[隨逐] 생각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숨이 나가는 경우에도 그것이 몸을 떠나 1책(磔)이나 1심(尋)에 이르기까지 항상 그것을 따라 쫓아가며 생각해야 한다.84) 84) 여기서 1책(磔, vitasti)이란 손을 폈을 때 엄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의 길이를 말하며, 1심(尋 혹은 弓)은 여덟 자 혹은 열 자의 한 길을 말한다. ‘심’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12 주6) 참조.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904.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2. Following (anugama). - Without effortful exertion or instigation [anabhisaṃskāra] 不作加行, follow the flow of the air 隨息 which enters and leaves 入出 [i.e., the inbreathing and outbreathing 入出息]: How far 遠至何所 do these [breaths] enter or leave 息入出? Does the inhaled air 息入 pervade the whole body 行遍身 or does it travel into one part (of the body) 行一分? The practitioners follow 隨 the inhaled air 息入 entering [sequentially] into the throat [kaṇṭha 喉], the heart [hṛdaya 心], the navel [nābhi 臍], the kidneys (kaṭi 髖), the thigh [ūru 髀], the shank 정강이 [jaṅghā 脛] to the two feet [pada 足指]; the practitioners follow 隨 the exhaled air 息出 exiting 離身, traveling the length to a distance of one hand [vitasti 磔]149 and of one [fathom] [vyāma 尋].150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지(止, sthāna)’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마음을 집중하여 오로지 코끝에 두고, 혹은 미간에 두고, 나아가 발가락에 이르기까지 좋아하는 곳에 두고, 그 마음을 편안히 쉬게 한[安止] 채로 마치 구슬을 꿴 실을 관찰하듯이 숨이 몸에 머물러 있는 것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러한 숨이 몸을 차갑게 하는지, 따뜻하게 하는지, 손해가 되는 것인지, 이익이 되는 것인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904.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3. Fixing, stilling (sthāpanā; sthāna 止).154 一 Bind the mindfulness 繫念 in such a way that it is held on the tip of the nose 鼻端, or any point 所樂處 from between the eyebrows 眉間 down to the toes [pādāṅguṣṭha 足指]; fix or still the thought 安止其心; observe 觀 the breathing 息 which is being held in the body 住身 like the cord of a jewel or pearl necklace 如珠中縷;155 notice whether (the breathing) is cold [śīta 冷為] or warm [uṣṇa 煖], harmful [upaghātaka 損] or beneficial [anugrāhaka 益] (MVS, 135al5). <156>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관(觀, upalakṣaṇā)’이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이러한 숨의 바람을 관찰하고 나서 다시 숨과 함께 존재하는 대종과 조색(造色), 그리고 이러한 색에 근거하여 머무는 심과 심소를 관찰하는 것이니, 다 같이 5온을 경계로 삼아 관찰하는 것을 말한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p.1904~1905.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4. Observing, analyzing (upalakṣaṇā 觀). 一 "These breaths are not merely wind (vāyu 風), but they are the four fundamental material elements (mahābhūta 大種), and, furthermore, material form derived [upādāyarūpa 造色] from these four [fundamental material elements]; and the thought 心 with its thought-concomitants [cittacaitta 心所] are dependent 依 on them [for their arising]": in this way the practitioners observe the five aggregates (skandha) 五蘊 through analysis (upalakṣayati). {17 b}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전(轉, vivartanā)’이라고 하는 것은, 이를테면 이러한 숨의 바람을 소연으로 한 지각[覺]을 이후에 생겨나는 뛰어난 선근(善根) 중으로 이전(移轉)하거나 내지는 세제일법(世第一法)의 상태로 이전시켜 안치하는 것을 말한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905.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5. Modifying (vivartanā 轉).156 一 The practitioners modify the cognition [buddhi 覺] which had the wind 息風 for its cognitive object 緣 and apply 安置 the cognition onto more and more superior wholesome roots [kuśalamūla: smṛtyupasthāna 善根 vi. 14; heat (uṣmagata 煗位), vi. 17, etc.] up to and including the supreme mundane factors [laukika agradharma 世第一法位; 157 vi. 19b].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905.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6. Complete purity (pariśuddhi 淨). This is the entry into the path of insight (darśanamārga 見道; vi. 26), into the path of cultivation (bhāvanāmārga 修道).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염주로부터 시작하여 최후로 금강유정(金剛喩定)에 이르는 것을 일컬어 ‘전’이라 하고, 진지(盡智, 3계 9지의 번뇌를 모두 끊는 지) 등을 바야흐로 ‘정’이라 이름한다”고 하였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905.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According to other scholars 有餘師 (MYS, 135a27), (5) modifying (vivartanā 轉) covers the progressive elevation 昇進 from the applications of mindfulness (smṛtyupasthāna 念住) up to adamantine concentration (vajropamasamādhi 金剛喻定; vi. 44c). (6) Complete purity (pariśuddhi 淨) covers (i) cognition of exhaustion (kśayajñāna 盡智), (ii) cognition of non-arising (anutpādajñāna 無生智) and (iii) right view of those beyond training (aśaikṣī samyagdṛṣṭi 無學正見 Right Views of the Arhat; vi. 50c).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논하여 말하겠다. 부정관을 닦는 것은 바로 탐을 대치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탐은 대략 네 가지 종류로 차별되니, 첫째는 현색탐(顯色貪)이며, 둘째는 형색탐(形色貪)이며, 셋째는 묘촉탐(妙觸貪)이며, 넷째는 공봉탐(供奉貪)이다.66) 66) 현색탐(구역은 色欲)은 청ㆍ황ㆍ적ㆍ백 등의 색상에 대한 탐욕, 형색탐(또는 形貌欲)은 용모에 대한 탐욕, 묘촉탐(또는 觸欲)은 신체상의 좋은 감촉에 대한 탐욕, 공봉탐(또는 威儀欲)은 표업에 따라 일어나는 탐욕으로, 말하자면 행동거지나 신분ㆍ지위에 대한 탐욕이다. 즉 이러한 네 가지 탐을 대치하기 위해 내부의 시체[內屍, 자신의 시체, 이근자의 경우]와 외부의 시체(둔근자의 경우)를 관찰하는 것이 부정관이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905.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Attachment (rāga 貪) is fourfold 四種: 1. attachment to colors [varṇa] 顯色貪; 2. attachment to shapes [saṃsthāna] 形色貪; 3. attachment to contact [sparśa] or tangibles 妙觸貪; 4. attachment to being honoured [upacāra] 供奉貪.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제22권:
그러나 만약 골쇄(骨鎖, 백골이 서로 엉켜 있는 모양)를 소연으로 하여 부정관을 닦을 경우, 이와 같은 네 가지 탐을 능히 모두 대치할 수 있으니, 골쇄 중에는 네 가지 탐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Gelong Lodrö Sangpo, Louis de La Vallee Poussin, Xuanzang, Vasubandhu (2012). 《Abhidharmakośa-Bhāṣya of Vasubandhu: The Treasury of the Abhidharma and its (Auto) commentary》 Vol. 3. p.1905. 한자는 편집자가 추가.
9d. (In a general way,) the skeleton [śaṅkala; śṛṅkhalā] [is opposed to] all [the four categories of] attachment.120
The fourfold object of attachment (rāgavastu) 四貪境, (1) color 顯色, (2) shape 形色, (3) contact 妙觸, (4) being honoured 供奉, is absent in the bones [i.e., skeleton] 骨鎖. Thus meditation on the loathsome that has the skeleton for its object 骨鎖觀 opposes 對治 all attachments 四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