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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힐민국의 공직자 (1930–2024)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안응모(安應模, 1930년 12월 24일~2024년 8월 14일)은 대한민국의 공무원 겸 경찰, 행정, 정치인이다.
송주 안응모 松洲 安應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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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대한민국 제53대 내무부 장관 | |
임기 | 1990년 3월 17일 ~ 1991년 4월 27일 |
대통령 | 노태우 |
총리 | 강영훈 노재봉 |
이름 | |
별호 | 호(號)는 송주(松洲), 차돌이, 해산(海山) |
신상정보 | |
출생일 | 1930년 12월 24일 |
출생지 | 일제 강점기 황해도 벽성 |
사망일 | 2024년 8월 14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0기(1965년) |
경력 |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 제53대 내무부 장관 한국자유총연맹 사무총장 제6대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제22대 충청남도 도지사 제7대 치안본부장(경찰청장) |
정당 | 무소속 |
본관 | 순흥(順興) |
배우자 | 박명희(재혼) |
자녀 | 안희관(장남), 안희돈(차남) |
상훈 | 청조근정훈장, 녹조근정훈장, 인헌무공훈장, 자유중화민국 훈장 등을 수상 |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호는 송주(松洲)·차돌이·해산(海山)이다. 경찰 시절이었던 1968년에 베트남 공화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관에 근무하여 잠시 외교관의 길을 걸었으며 제7대 내무부 치안본부장과 제53대 내무부 장관(1990년 3월 ~ 1991년 4월)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경찰의 살아있는 전설"로 통하는 안응모는 대한민국 경찰 순경에서 시작하여 치안본부장,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충남도지사, 조달청장, 내무부 장관까지 지낸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1] 1992년 5월 23일부터 2010년 4월 22일까지 단국대학교 총동창회 회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경찰 치안총감 출신인 그는 현재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으로 활동하였다.
2024년 8월 14일에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명지대 등록금 분쟁으로 촉발된 시위는 1991년 4월 24일 상명여대(현 상명대학교)의 학자(학원자주화) 집회에서 지지,연대(連帶)에 대한 연설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던중 투쟁의 구심이었던 명지대학교 총학생회장 박광철이 연행되었는데 이틀 뒤인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위해 구출대회가 진행되었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이 진압을 시도하게 되었다.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 경찰관들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시위 진압을 시작하자, 당시 명지대학교 경제학과의 학생으로 시위에 참여자하였던 강경대는 학교 쪽으로 도망치기 위해 1.5m 높이의 담벽을 넘으려다가 경찰에게 붙잡혀 쇠파이프로 두들겨 맞은 뒤 그대로 방치되었다. 이러한 광경은 곧 다른 학생들에게 목격되어 이들에 의해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시간 만에 사망하였다.[2][3]
우발적으로 현장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지만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4월 27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사건의 책임을 물어 안응모를 내무부 장관에서 경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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