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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용우(孫龍祐, 1923년 1월 19일 ~ 1999년 2월 23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정치인이다. 창씨개명의 이름은 덴비 마사오(天日正雄).
경기도 양평군 설악면(지금의 가평군) 출신으로 경성부에서 성장한 그는 일제 패망을 예견하고 이를 계몽하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폐간을 성토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항일운동으로 1940년 일경에 체포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투옥돼 2년 3개월간 복역했다.
해방 이후 사회주의 활동을 했는데, 여운형의 비서를 하는 등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였다.[1] 남로당에서 활동했다는 의혹이 있으나,[2]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에 대한 증언이 서로 엇갈리므로 확실하지 않다고 국가보훈처 관계자가 밝혔다.[1]
TV조선은 손용우가 1947년 월북해 밀명을 받았으며, 6·25 전쟁 당시 경기도 설악면 세포조직책이었으며 손씨의 여동생과 사촌 두 명이 각각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과 자위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월북했다고 보도했다.[3]
손용우 측은 1982·1986ㆍ1990ㆍ1991ㆍ2005ㆍ2008년 총 6차례에 걸쳐 보훈신청을 했다. 당초엔 독립유공자가 사회주의 활동 경력이 있으면 포상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으나, 2017년 기준을 개정하면서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하지 않았을 경우 포상할 수 있도록 완화되었다.
2018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을 받았다. 정부가 밝힌 손용우의 독립운동 공적은 다음과 같다: "1940년 서울에서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 선전하고, 동아·조선일보 폐간의 부당성을 성토하며 민족 의식을 고취하다 체포돼 징역 1년 6개월을 받음."[4]
조선일보는 2017년 11월 보훈처에 보고된 '독립 유공자 포상 범위 및 기준 개선방안 학술연구 용역 최종 보고'에는 손용우가 "6·25 전 본적지에 드나들며 남조선로동당에서 활약했다"고 적시되어 있으나 보훈처가 이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유공자 서훈을 했다고 보도했다.[5]
국가보훈처는 이에 대한 해명자료를 통해 "당시 공적심사위원회에선 독립운동 공적은 물론 광복 후 남로당 활동설을 포함한 모든 행적을 심사해 (손 선생을) 포상자로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독립운동으로 2년 3개월의 옥고를 치른 손 선생의 광복 후 조선공산당 관련 활동은 확인이 됐으나 남로당 활동 여부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엇갈리고 있다"고 밝혔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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