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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 히로카즈(일본어: 澤村 拓一, 1988년 4월 3일[2] ~ )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며, 현재 퍼시픽 리그인 지바 롯데 마린스의 소속 선수(투수)이다. 도치기현 도치기시 출신이다.
사와무라 히로카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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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식 한자 표기 | 澤村 拓一 |
가나 표기 | さわむら ひろかず |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 사와무라 히로카즈 |
통용식 표기 | 사와무라 히로카즈 |
로마자 | Hirokazu Sawamura |
언론에서는 ‘沢村 拓一’(동음)의 표기도 볼 수 있다.[3]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6학년 때부터 투수를 맡았다. 이때부터 자기 주장이 강했다고 한다.[4] 도치기 시립 도요 중학교에서도 야구부에 소속되면서 소속 도치기현 대회에도 출전했고 사노 니혼 대학 고등학교 시절에는 팀의 세 번째 투수로서 여름을 맞이해 등판 기회가 없는 채로 소속 도치기현 대회 결승에서 패했다.[5] 고등학교 선배이자 주오 대학 OB이기도 한 아이다 유시의 권유도 있어[4][6] 주오 대학 경식 야구부를 지원했다. 도카이 대학에도 지원하여 주오 대학과 도카이 대학에 모두 합격했지만 먼저 합격 통지를 받은 주오 대학(상학부)[7]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4]
대학 진학 후 2학년 가을에는 도토 대학 1부 리그 첫 선발·첫 승리를 완봉으로 장식하여 팀내 에이스로 성장했고 2009년에 제37회 미일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와 제25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 3학년 때 추계 리그전인 아오야마가쿠인 대학과의 경기에서 1회에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의 대학생으로서는 역대 최고 속도가 되는 시속 156km/h를 측정했다. 같은 해 11월 22일에 U-26 NPB 선발 vs 대학 일본 대표팀 선수로 출전, 3회말에 1이닝을 던지면서 사카모토 하야토를 직구로 루킹 삼진으로 잡는 등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4학년 때 춘계 리그전인 도요 대학과의 경기에서 대학생으로서의 역대 최고 성적을 경신하는 시속 157km/h[5]를 측정하는 등의 활약으로 최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 리그전이 종료된 후에는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지만 부상 때문에 출전을 포기했다. 도토 대학 1부 리그 통산 41경기에 등판하여 19승 14패, 평균 자책점 1.31, 266개의 탈삼진을 기록했고 2부 리그에서는 7승 2패를 기록했다. 2011년에는 대학을 졸업했다.[8]
주오 대학에서도 직구에 매달린 2학년 가을에는 구속이 150km를 넘게 됐지만 야구부 감독이던 다카하시 요시마사는 “너는 투수가 아니다. 단순한 ‘던지기’다!”라고 혹평하여 컨트롤과 변화구를 익히도록 반복적으로 지도했다. 3학년 가을 무렵부터 성장의 조짐이 보였고[9] 그해 완봉한 4학년 가을에 열린 아시아 대학과의 경기에서는 다카하시도 “완벽한 피칭이라고 부를 수 있는 투구”라고 평가했다.[6] 사와무라도 같은 해 봄부터 변화구를 익혀 투구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10]
2010년 10월에 열린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같은 주오 대학 출신의 아베 신노스케·가메이 요시유키의 활약상을 보고 입단을 희망, 서로 마음에 두고 있는 관계라고도 말한[11]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단독 1순위로 지명을 받아 기자회견 석상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드래프트에 지명된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등번호 18번을 희망했지만 10월 30일에 인사차 방문한 구단 대표 기요타케 히데토시로부터 “사와무라(에이지)를 한 단계 뛰어넘는다는 의미로 15번을 택했으면 좋겠다. 18번은 실력으로 보여줬으면 한다”라고 말했지만[12] 결과적으로 2011년에 FA권을 행사하여 요미우리에 이적한 스기우치 도시야에게 18번이 주어졌다(사와무라 에이지의 등번호 14번은 요미우리의 영구 결번이다).
드래프트 직전에는 주니치 스포츠[13], 스포츠 호치[14]와 스포츠 닛폰 등이 ‘주니치 드래건스도 사와무라를 1순위로 지명할 방침이다’라고 보도했지만[15] 주니치는 최종적으로 사와무라가 아닌 오노 유다이(붓쿄 대학)를 단독 1순위로 지명했다. 닛칸 겐다이 2011년 10월 보도에 의하면 “주니치는 입단 거부의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당일 스카우트 회의에서 사와무라의 지명을 보류해 오노의 단독 지명으로 전환했다”고 한다.[16] 사와무라 자신도 2010년 12월에 “드래프트 앞두고 복수의 메이저 리그 구단으로부터 메이저 리그 계약 오퍼도 있었기 때문에 요미우리 이외로부터 지명받았을 경우에는 미국에서의 프로 입단을 선택했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했다.[5]
개막을 1군에서 맞이한 4월 15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마쓰다 스타디움)에서 프로 첫 등판이자 첫 선발 등판하여 7회 도중까지 2실점(무자책점)의 투구를 보여줬다. 이 경기에서는 첫 승리가 되진 않았지만 같은 달 21일 한신 타이거스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7이닝 1실점의 호투로 데뷔 첫 승리 투수가 됐다.[17] 5월 31일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전(세이부 돔)에서 프로 첫 완투승을 거두었고 6월 19일 세이부전(도쿄 돔)에서 7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홈구장에서의 첫 승리를 달성했다(그러나 첫 승리의 위닝볼은 이날 팀의 마지막 투수로 등판한 조나단 알발라데호가 관중석에 던져넣었기 때문에 사와무라 자신의 손에는 전달되지 않았다). 시즌 초반부터 중반에 걸쳐서는 안정된 투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서 패전 수가 앞섰지만 9월 이후에는 5승 1패, 평균 자책점 1.10, WHIP 0.64를 기록하며 호투를 계속했다. 시즌 최종전에서 평균 자책점이 1점대를 놓쳤지만 센트럴 리그 신인으로서는 에나쓰 유타카 이후 200이닝 도달을 달성했다.[18] 최종적으로 5차례의 완투를 포함한 11승 11패, 평균 자책점 2.03, 174탈삼진, WHIP 0.97 등의 좋은 성적을 남겨 센트럴 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사와무라의 수상에 의해 요미우리에는 2008년의 야마구치 데쓰야 이래 4년 연속으로 신인왕을 배출하게 됐고 같은 구단에서 4년 연속 신인왕 수상은 일본 프로 야구 사상 최초이다. 10월 11일에는 정찰 멤버로서 2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전했다.[주 1]
10월 17일에는 닛폰 TV 아나운서 모리 마키와 시즌 종료 후 결혼하는 것을 공식 발표했다.
2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는데 요미우리에서 신인 투수가 2년 연속으로 두 자릿수 승리를 기록한 것은 1966~1967년의 호리우치 쓰네오(각각 16승, 12승) 이래 45년 만이다.[19] 그해 시즌에서는 ‘상대를 제압하는 피칭’을 목표로 하여 작년 시즌 종료 이후부터 육체 개조에 전념했다. 시즌 당초에는 평균 자책점이 1점 대에 머물 정도로 안정돼 있었지만 교류전을 계기로 제구가 좋지 않을 정도의 컨디션이 무너져 이후에는 불안정한 투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시즌 최종 등판인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5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되어 가까스로 10승에 도달했지만 요미우리에서는 1979~1980년의 에가와 스구루(각각 10패, 12패) 이후 32년 만이자 신인으로서 2년 연속 두 자릿수 패전을 기록, 투구 내용도 작년보다 좋지 못했다.
포스트시즌인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팀이 3연패를 당하여 패하면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끝날지도 모르는 4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무자책점(1실점)으로 호투, 승리 투수가 됐다. 이후 요미우리는 이 4차전을 포함한 3연승을 기록하여 일본 시리즈에 진출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 맞붙은 일본 시리즈에서는 2차전에 선발 등판해 8이닝 무실점의 호투로 일본 시리즈에서의 첫 등판·첫 선발과 동시에 첫 승리를 올렸다. 이 경기에서는 1회에 위기를 맞이하여 견제 사인을 놓친 바람에 포수 아베 신노스케로부터 마운드상에서 머리를 얻어맞는 장면도 있었는데 이후 정신을 차렸다는 것도 화제가 됐다.[20] 그해 일본 시리즈에서는 6차전에도 등판했지만 6회초에 나카타 쇼에게 3점 홈런을 맞고 동점이 된 뒤에 대타로 교체되면서 강판됐다. 팀은 4승 2패의 성적으로 일본 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그 후 11월 6일에 사무라이 재팬 매치 2012 ‘일본 대표 대 쿠바 대표’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는 사실이 발표돼[21] 대표팀에 합류했다.[22] 또한 12월 4일에 제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후보 선수 34인의 명단이 발표되면서[23] 후보에 올랐다.[24]
2월 20일에는 제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 28인의 명단이 발표돼[25] 대표팀에 합류했고[26][27][28] 본선에서는 4경기에 중간 계투로 등판해 3과 1/3이닝 1실점의 성적을 남겼다.
같은 해 3월 말에 모리 마키와 이혼했다. 결혼한 지 1년 5개월 만이다.[29]
그 해에는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와중에(그해 득점지원률은 규정 투구 이닝을 도달한 선수 중에서는 리그 최악이었다) 시즌 전반기는 4승 6패, 평균 자책점 2.46으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남겼다. 올스타전에서는 감독 추천으로 출전 선수로서 발탁[30]돼 1차전에서는 3이닝을 던져 MVP를 수상했다. 요미우리의 투수로서는 1984년 에가와 스구루 이후 29년 만의 수상이다. 그러나 후반기에서는 전반기에 이어 승리하지 못하는 경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투구 내용도 서서히 나빠졌다. 9월 12일 DeNA와의 경기(도쿄 돔)부터는 중간 계투로 기용됐다. 중간 계투로서는 12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6홀드, 평균 자책점 0.63의 성적을 남기며 호투했지만 시즌을 통해선 5승 밖에 거두지 못했고 3년 연속 두 자릿수 패전을 기록하는 등 전년도 이상의 부진에 시달렸다. 히로시마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중간 계투로 등판해 무실점의 호투를 보였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4경기에 중간 계투로 등판했다.
스프링 캠프 초반인 2월 3일에 발병한 오른쪽 어깨 통증으로 시즌 개막은 2군에서 맞이했다.[31] 7월에는 1군에 승격했지만 같은 달 30일에 등록이 말소되면서 8월에 재승격돼[32] 5승 3패의 성적으로 정규 시즌을 끝냈다. 10월 16일에 열린 한신과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2차전에 등판했지만 우에모토 히로키의 머리 부분에 사구를 던져 심판이 위협구로 간주하여 퇴장당했다.[33] 결과적으로 이 위협구로 인해서 한신 타선에 압도당하여 팀은 패했고 그 후 내리 4연패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탈락했다. 11월 9일,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불안정했던 구원진을 강화하기 위해 사와무라를 중간 계투로 배치 전환하겠다고 밝혔다.[34]
2월 16일에 ‘GLOBAL BASEBALL MATCH 2015 사무라이 재팬 대 유럽 대표’의 일본 대표팀 선수로 발탁됐다는 사실이 발표돼 고쿠보 히로키가 일본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하고 처음으로 일본 대표팀에 선출됐다.[35] 단지 본 대회에서 등판할 일은 없었다.[36]
중간 계투로 전향하고 나서는 최초의 시즌이 됐지만, 3월 27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와의 개막전에서 9회에 등판, 세키네 다이키에게 홈런을 맞았지만 자신으로서는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37] 그 후에도 세이브를 쌓아 올리면서 7월 10일 한신전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전반기에서의 20세이브에 도달했다. 7월 16일에 제1회 WBSC 프리미어 12의 일본 대표팀 1차 후보 선수로 발탁됐다.[38] 9월 10일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 12의 일본 대표팀 후보 선수로 발탁됐다는 사실이 발표됐다.[39] 후반기에도 마무리 투수의 지위를 유지해나가면서 최종적으로 시즌 36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런 한편으로 주자를 내면서도 마무리로 등판하는 일이 많아지자, BB/9가 2.77, WHIP이 1.16(모두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투수로서는 양대 리그에서 가장 높은 수치)으로 나타내면서 안정감이 결여된 모습을 보였다.
10월 9일에는 제1회 WBSC 프리미어 12의 일본 대표팀 최종 로스터 28인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40] 11월 1일에는 재계약 협상 자리에서 연봉 1억 엔으로 갱신했다.[41]
시즌을 통해 마무리 투수를 계속 맡으면서 시즌 최다인 37세이브를 기록하여 자신의 첫 최다 세이브 타이틀을 차지했다. 요미우리에서의 최다 세이브 타이틀은 2013년의 니시무라 겐타로 이래 3년 만이다. 그런 한편으로 후반기에서는 안타나 홈런을 허용하면서도 세이브를 올리는 등 큰 폭으로 숫자를 떨어뜨리거나 팀의 에이스인 스가노 도모유키가 등판하는 경기에서의 중간 계투로 투입되는 장면이 드문드문 보이는(스가노의 승리수 3개를 지워버리고 말았다) 등 승부처에서의 무너지는 면이 부각되면서 주로 팬들 사이에서는 ‘사와무라 극장’이라고 칭해지는 경우가 많이 일어나게 됐다.[42][43][44] 특히 9월 4일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9회초에 상대 타자 다카하시 슈헤이에게 던진 1구가 3루측 벤치까지 도달하는 폭투를 범했다. 이 폭투는 해외 언론에서도 보도됐다.[45] 사와무라에 대한 자극을 주는 의미를 포함해서 그해 시즌 종료 후 구단은 속구파의 외국인 투수 아르키메데스 카미네로를 영입했다.
오키나와현에서 스프링 캠프가 진행되는 와중인 2월 25일에 오른쪽 어깨에 당길 정도의 느껴지는 증상이 나타나자, 다음날 구단의 트레이너에 의한 침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복수의 의료진에 의한 진찰을 받은 결과 ‘긴가슴신경 마비’ 진단을 받았다. 침 치료에 의해 마비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은데다가 일시적으로 마비가 나타난 결과, 앞톱니근의 기능 장애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9월 9일에 구단 단장 가토리 요시타카와 구단 사장 이시이 가즈오가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장에서 사와무라에게 직접 사과하고 자신은 이를 받아들였다. 가토리는 사와무라에 대해 “순조롭게 회복되면서 상당히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던지면서 근력을 키워가게 된다”라고 말했다.[46] 이러한 어깨 부상 등의 영향도 있어 이스턴 리그에서는 몇 경기에 등판했지만 1군에서의 등판은 데뷔 후 처음으로 등판 기회도 없이 시즌을 마쳤다.
어깨 부상에서 복귀하여 이기는 패턴으로서의 등판[47]을 거듭했지만 여름 이후 안정되지 않고 8월 26일 한신전에서 6실점을 내주는 등[48] 49경기에 등판했지만 평균 자책점은 4점대 후반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49]
옆구리 통증으로 한때 전력에서 이탈한 시기는 있었지만 주로 중간 계투 등판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선발 등판(2014년 이후의 선발 등판)도 소화하면서 43경기에 등판하여 평균 자책점, WHIP 등의 성적은 전년보다 개선하여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연봉도 개인 최고 액수인 1억 5,400만 엔(추정치)이 됐다.[50]
코로나19로 인해 프로 야구 개막이 6월 19일까지 연기됐으나 사와무라는 개막 엔트리에 입성해 한신과의 개막 3연전에서 2경기에 등판하여 무실점 호투, 첫 등판에서는 시즌 첫 홀드를 기록하는 등 좋은 출발을 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계속된 히로시마와의 3차전에서는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으나 3실점으로 동점을 만들어 원 아웃밖에 내주지 못하고 강판됐다. 이어진 야쿠르트와의 1차전에서는 원 아웃 상황에서 등판하며 시즌 첫 승리를 기록했지만 불안정한 투구는 계속됐다. 7월 25일에는 새로운 외국인 선수 앙헬 산체스가 선발 등판이 예고되고 있었지만, 오른쪽 어깨의 이상을 느껴 선발 등판을 피했다.[51] 급거 선발 등판이 되면서 4회 도중까지 2실점의 투구로 마운드를 내려간 다음날에 산체스와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52] 결과적으로 이것이 요미우리에서의 마지막 등판이 됐다. 그 후 2군에서의 조정을 하고 있었는데 2군에서도 평균 자책점은 1.29이면서도 7이닝 동안 볼넷 10개를 남발할 정도의 투구 내용이 나빴기 때문에 결국 2군 감독이던 아베 신노스케로부터 3군으로 내려가라는 통보를 받았다.[53]
2020년 9월 7일, 가쓰키 가즈야와의 맞트레이드로 지바 롯데 마린스에 이적했다.[주 2][55] 추정 연봉 1억 엔 이상의 일본인 선수가 시즌 도중에 트레이드된 사례는 2001년의 하루 도시오(요코하마→주니치), 2011년의 사부로(지바 롯데→요미우리)에 이어 NPB 역대 3번째로, 투수로서는 처음이다. 등번호는 요미우리 시절에 착용했던 15번은 전년도 오프에 트레이드로 입단한 대학 선배인 미마 마나부가 이미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쓰키가 착용했던 57번으로 정했다. 9월 8일에 입단 발표 기자회견을 한 뒤 즉시 지배하 등록 및 1군 출전 선수로 등록되면서 같은 날에 치른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전(ZOZO 마린 스타디움)에서 벤치에 들어갔으나 유니폼이 없는 바람에 타격 투수 후쿠시마 아키히로의 ‘106’번이 새긴 유니폼을 빌려입었다.[56] 이 경기에서는 6회초에 등판해서 3자 연속 삼진을 비롯한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무난하게 데뷔전을 치렀다.[57]
9월 20일 닛폰햄전(삿포로 돔)에서의 연장 10회말에 볼넷 3개를 내주면서도 무실점으로 버텨 팀의 2연패를 막아내고 세이브를 기록했다. 시즌 도중의 입단으로 세이브를 기록한 것은 팀의 역대 3번째가 됐다.[58] 그해 클라이맥스 시리즈 1차전에 등판했지만 1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 정규 시즌 중인 10월 17일 해외 자유 계약 선수권(FA) 취득 조건을 충족시켜[59] 11월 30일에 메이저 리그 이적을 목적으로 FA권을 행사했다.
지바 롯데는 사와무라가 잔류했을 경우를 대비해 등번호 14번(요미우리에서는 사와무라 에이지의 번호이자 영구 결번이 돼있는 특별한 번호)과 4년 10억 엔 규모의 계약을 제시했다.[60]
2021년 2월 16일, 보스턴 레드삭스와 2년 계약을 맺었다.[61][62] 3년째인 2023년에는 상호 옵션이 된다. 등번호는 잠정적으로 22번을 착용했으나 3월 6일(일본 시간)에 요미우리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활약했던 선배 우에하라 고지가 착용했던 19번으로 착용하는 것으로 결정됐다. 도치기현 및 도치기현 고교 출신 선수로서 사상 첫 메이저 리거가 됐다.
개막전인 4월 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 9회에 팀의 5번째 투수로 등판해 1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메이저 리그 데뷔를 이뤘다.[63] 4월 1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는 7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 팀의 3번째 투수로 구원 등판해 1과 1/3이닝 동안 1볼넷 무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내 메이저 리그에서의 첫 홀드를 기록했다.[64] 시즌에서 코로나19 확진 등으로 두 차례 부상자 명단에 올랐으나 최종적으로 55경기에 등판해 5승 10홀드, 평균 자책점 3.06을 기록[65]하며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맞붙은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의 로스터로 등록돼 3경기에 등판했다. 오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로 복귀한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가 원래 착용하던 등번호 19번을 원했기 때문에 이듬해 2022년부터는 과거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착용했던 등번호 18번으로 변경됐다.[66]
2022년 8월 17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전에서 MLB 통산 100경기 등판과 100탈삼진을 기록했다.[67] 8월 29일에 DFA가 되면서[68] 31일에 마이너 계약으로 산하의 트리플 A팀 우스터 레드삭스에 배속됐고 그 후 9월 12일에 자유 계약이 됐다. 그 해 49경기에 등판하여 1승 3홀드, 평균 자책점 3.73의 성적을 남겼다.[69]
1월 28일, 중간 계투 보강을 서두르고 있던[69][70] 친정팀 지바 롯데 마린스가 사와무라의 재영입을 발표하여 3년 만에 친정팀에 복귀했고[2][65][71] 등번호는 54번으로 결정했다.[2][65][69] 6월 4일 시점에서 20경기에 등판하고 있었지만 평균 자책점이 6.52로 부진하여 재조정을 위해 등록이 말소됐다.[72] 그 후 14일에 재등록돼 이날 주니치전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의 투구를 선보였다.[73] 7월 30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연장 11회에 등판해 미일 통산 1000투구 이닝을 달성했지만 끝내기 패배를 당하고 패전 투수가 됐다.[74] 이 시기부터 두통을 느껴 검사받을 목적으로 입원을 위해 8월 2일에 등록이 말소됐으나 10일에 구단이 가역성 대뇌혈관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75] 8월 말까지 고강도 수준의 운동은 금지돼 있었지만 가벼운 운동으로 연습을 재개했다.[76] 8월 30일에 이스턴 리그인 라쿠텐전에 실전 복귀하여 9월 3일 1군에 등록되자마자 같은 날 라쿠텐전에 등판해서 솔로 홈런을 얻어 맞았지만 1이닝을 1실점으로 막아냈다.[77]
오버핸드로부터 선발로 활약하던 시절의 평균 구속 약 145km/h,[78]의 속구, 종횡의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을 섞어 던지고[79] 퀵모션도 1.0초대로 빠르다.[80] 2020년에 구원으로서 개인 최고 속도인 159km/h를 측정했다.[81] 스플릿은 최고 속도 152km/h[82]의 스피드가 나오는 것에 더해져 슬라이더 회전을 하기 때문에 세로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와 혼동하는 경우도 있었다.[83] 또한 2012년 일본 시리즈로부터 투심을 추가했다.[84] 구원 투수로 전향한 후에는 거의 모두 직구와 포크볼로 볼배합을 고려하고 있으며 드물게 슬라이더나 컷 패스트볼을 던진다.
2013년에 구원 투수로서 기용됐을 때엔 평균 구속 약 148km/h를 기록하면서[85] 선발로서도 센트럴 리그 굴지의 구속을 자랑하지만 본인은 스피드에 구애되진 않고 높은 직구와 낮은 변화구가 생명선이라고 말하는가 하면[79] 한편으로 투구에 ‘젊음’을 드러내고 싶다고 말했다.[86][87] 또한 오른쪽 타자의 몸쪽을 찌르는 직구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4] 그런 반면에 직구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 고집하지 않고 타자의 노림수나 타이밍을 벗어나는 투구를 배우는 것을 과제로서 자각하고 있다.[88]
탈삼진률은 2015년까지 통산 7.88로 특별히 높진 않지만, ‘삼진을 몇 개 뺏어냈다’와 ‘삼진을 잡을 수 있는 직구’보다도 타자를 잡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89]
한편 요미우리 시절부터 제구난에 시달리고 있어서 좋을 때와 나쁠 때의 차이가 크며 상대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며 주자를 모아놓고 밀어내기 볼넷으로 1점을 헌납하고 뼈아픈 한방을 맞는 등 자멸하는 일도 있어 이것들도 위에서 말한 사와무라 자신의 승부처에서 나약함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연 도 | 소 속 | 등 판 | 선 발 | 완 투 | 완 봉 | 무 4 구 | 승 리 | 패 전 | 세 이 브 | 홀 드 | 승 률 | 타 자 | 이 닝 | 피 안 타 | 피 홈 런 | 볼 넷 | 고 4 | 몸 맞 | 탈 삼 진 | 폭 투 | 보 크 | 실 점 | 자 책 점 | 평 자 책 | W H I P |
---|---|---|---|---|---|---|---|---|---|---|---|---|---|---|---|---|---|---|---|---|---|---|---|---|---|
2011년 | 요미우리 | 29 | 29 | 5 | 1 | 1 | 11 | 11 | 0 | 0 | .500 | 786 | 200.0 | 149 | 14 | 45 | 1 | 5 | 174 | 5 | 3 | 53 | 45 | 2.03 | 0.97 |
2012년 | 27 | 26 | 2 | 1 | 0 | 10 | 10 | 0 | 0 | .500 | 716 | 169.2 | 172 | 12 | 54 | 0 | 4 | 138 | 2 | 0 | 56 | 54 | 2.86 | 1.33 | |
2013년 | 34 | 22 | 3 | 1 | 0 | 5 | 10 | 0 | 6 | .333 | 654 | 158.1 | 138 | 18 | 43 | 0 | 5 | 148 | 5 | 0 | 58 | 55 | 3.13 | 1.14 | |
2014년 | 12 | 11 | 2 | 1 | 0 | 5 | 3 | 0 | 0 | .625 | 299 | 72.2 | 69 | 3 | 14 | 0 | 2 | 66 | 5 | 0 | 31 | 30 | 3.72 | 1.14 | |
2015년 | 60 | 0 | 0 | 0 | 0 | 7 | 3 | 36 | 3 | .700 | 282 | 68.1 | 58 | 4 | 21 | 0 | 3 | 60 | 2 | 0 | 12 | 10 | 1.32 | 1.16 | |
2016년 | 63 | 0 | 0 | 0 | 0 | 6 | 4 | 37 | 4 | .600 | 271 | 64.1 | 60 | 5 | 22 | 0 | 1 | 55 | 9 | 1 | 20 | 19 | 2.66 | 1.27 | |
2018년 | 49 | 0 | 0 | 0 | 0 | 1 | 6 | 0 | 24 | .143 | 238 | 52.1 | 55 | 4 | 27 | 3 | 3 | 54 | 3 | 0 | 29 | 27 | 4.64 | 1.57 | |
2019년 | 43 | 2 | 0 | 0 | 0 | 2 | 2 | 1 | 13 | .500 | 197 | 48.1 | 40 | 3 | 17 | 1 | 3 | 55 | 1 | 0 | 14 | 14 | 2.61 | 1.19 | |
2020년 | 13 | 1 | 0 | 0 | 0 | 1 | 1 | 0 | 1 | .500 | 64 | 13.1 | 14 | 1 | 8 | 0 | 2 | 11 | 0 | 0 | 9 | 9 | 6.08 | 1.65 | |
지바 롯데 | 22 | 0 | 0 | 0 | 0 | 0 | 2 | 1 | 13 | .000 | 82 | 21.0 | 10 | 2 | 10 | 0 | 0 | 29 | 3 | 0 | 4 | 4 | 1.71 | 0.95 | |
'20 소계 | 35 | 1 | 0 | 0 | 0 | 1 | 3 | 1 | 14 | .250 | 146 | 34.1 | 24 | 3 | 18 | 0 | 2 | 40 | 3 | 0 | 13 | 13 | 3.41 | 1.29 | |
2021년 | BOS | 55 | 0 | 0 | 0 | 0 | 5 | 1 | 0 | 10 | .833 | 233 | 53.0 | 45 | 9 | 32 | 6 | 2 | 61 | 8 | 0 | 24 | 18 | 3.06 | 1.45 |
2022년 | 49 | 0 | 0 | 0 | 0 | 1 | 1 | 0 | 3 | .500 | 221 | 50.2 | 45 | 4 | 27 | 2 | 0 | 40 | 8 | 0 | 23 | 21 | 3.73 | 1.42 | |
2023년 | 지바 롯데 | 34 | 1 | 0 | 0 | 0 | 4 | 3 | 3 | 14 | .571 | 148 | 33.0 | 33 | 6 | 18 | 2 | 1 | 24 | 0 | 1 | 18 | 18 | 4.91 | 1.55 |
NPB: 10년 | 386 | 92 | 12 | 4 | 1 | 52 | 55 | 78 | 78 | .486 | 3737 | 901.1 | 798 | 72 | 279 | 7 | 29 | 814 | 35 | 5 | 304 | 285 | 2.85 | 1.20 | |
MLB: 2년 | 104 | 0 | 0 | 0 | 0 | 6 | 2 | 0 | 13 | .750 | 454 | 103.2 | 90 | 13 | 59 | 8 | 2 | 101 | 16 | 0 | 47 | 39 | 3.39 | 1.44 |
연도 | 소속 | 투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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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기 | 척 살 | 보 살 | 실 책 | 병 살 | 수 비 율 | ||
2011 | 요미우리 | 29 | 5 | 27 | 3 | 1 | .914 |
2012 | 27 | 11 | 35 | 1 | 4 | .979 | |
2013 | 34 | 7 | 20 | 2 | 0 | .931 | |
2014 | 12 | 4 | 9 | 0 | 0 | 1.000 | |
2015 | 60 | 3 | 11 | 0 | 0 | 1.000 | |
2016 | 63 | 1 | 7 | 0 | 0 | 1.000 | |
2018 | 49 | 0 | 6 | 1 | 2 | .857 | |
2019 | 43 | 2 | 9 | 0 | 0 | 1.000 | |
2020 | 13 | 2 | 1 | 0 | 0 | 1.000 | |
지바 롯데 | 22 | 0 | 1 | 0 | 0 | 1.000 | |
'20 소계 | 35 | 2 | 2 | 0 | 0 | 1.000 | |
2021 | BOS | 55 | 1 | 3 | 0 | 0 | 1.000 |
2022 | 49 | 1 | 8 | 1 | 1 | .900 | |
2023 | 지바 롯데 | 34 | 0 | 8 | 0 | 0 | 1.000 |
NPB: 10년 | 386 | 35 | 134 | 7 | 7 | .960 | |
MLB: 2년 | 104 | 2 | 11 | 1 | 1 | .9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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