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비비" 네타냐후(히브리어: בִּנְיָמִין "ביבי" נְתַנְיָהוּ 빈야민 비비 네탄야후, 1949년 10월 21일 ~ )는 이스라엘의 정치인이다. 리쿠드 소속으로 1996년 6월 18일부터 1999년 7월 6일까지 제13대 총리를 지냈고 2009년 3월 31일제17대 총리에 임명되어 두번째 임기를 재임했으며 그리고 2013년 3월 18일2015년 5월 6일2019년 4월 9일2019년 9월 17일2020년 5월 17일부터 이스라엘의 총리2009년 3월 31일 이후에 내리 6선의 장기집권에 성공하여 2021년 6월 13일까지 총리로 재임했다가 2022년 12월 29일 다시 정권을 잡아 총리로 재임중이다. 그러나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자 위기를 맞았다.

간략 정보 이스라엘의 제13대 총리, 임기 ...
베냐민 네타냐후
בנימין נתניה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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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2023년)
이스라엘제13대 총리
임기 1996년 6월 18일~1999년 7월 6일
전임 시몬 페레스(제12대)
후임 에후드 바라크(제14대)
이스라엘의 제17대 총리
임기 2009년 3월 31일~2021년 6월 13일
전임: 에후드 올메르트(제16대)
후임: 나프탈리 베네트(제18대)

이스라엘의 제20대 총리
임기 2022년 12월 29일~
전임: 야이르 라피드(제19대)

신상정보
출생일 1949년 10월 21일(1949-10-21)(75세)
출생지 이스라엘 텔아비브
학력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S.B., S.M.
하버드 대학교
정당 리쿠드
배우자 사라 네타냐후
종교 유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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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이스라엘이 건국된 이후인 1949년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대학 교수인 부친 벤지온 네타냐후를 따라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후 6년간 군복무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1980년대 후반 이스라엘 정계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거의 미국에서 활동하였다. MIT 에서 건축학을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부를 마쳤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재학 중에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도 수학했으나 형 요나탄 네타냐후엔테베 작전 중 사망함으로 인해 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치지 못했다.

MIT 졸업 후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에서 근무하였다. 이때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버락 오바마에 대항할 밋 롬니를 BCG 동료로 만나 친분을 쌓았다. 1982년에는 워싱턴의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하였고, 1984년 ~ 1988년UN 대사를 지냈다. 1988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이츠하크 샤미르 정권에서 각료로 재직하였다[1].

정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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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세르 아라파트와 함께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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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2009년)

1993년 리쿠드 당수로 선출되었으며, 1996년 총선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총선에서는 동시에 총리를 별도로 직선으로 뽑도록 되어 있었다. 총선 직전 팔레스타인의 소행으로 보이는 테러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그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초강경 정책을 실시할 것을 내비치며, 온건파인 시몬 페레스 당시 총리를 공격하였고, 결국 그는 페레스를 1% 포인트 차로 제치고 총리로 당선되었다. 그는 당시 이스라엘 역사상 최연소 총리였고, 또한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스라엘 영토 안에서 태어난 최초의 총리였다.

총리로 재직하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야세르 아라파트와 대립하기도 했으나, 미국과 요르단의 중재로 와이리버 협정을 체결하여 영토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협정 체결은 그를 지지하던 우파의 신임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개인적인 문제와 부패 스캔들 등으로 구설수에 올라 1999년 총리 선거에서 이스라엘 노동당에후드 바라크에게 패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에 그는 리쿠드의 당수직도 내놓고 잠시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 후 아리엘 샤론 정권의 각료로 참여하게 되어, 2002년 ~ 2003년 외무장관으로 재직하였고, 2003년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또한 아리엘 샤론이 맡고 있던 리쿠드 당수직도 다시 노리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2005년 8월 9일 샤론 총리의 가자 지구 유대인 정착촌 철수 계획에 반대하며 재무장관직을 사임하였다. 그리고 샤론 총리가 리쿠드를 탈당하고 카디마를 창당하자 그 해 12월 리쿠드 당수직 선거에서 다시 당수로 선출되었으며, 2006년 총선에 출마하였다. 총선 결과 리쿠드는 원내 제1당의 자리를 카디마에 빼앗겼으며, 총리는 카디마의 에후드 올메르트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하여 자신이 다시 총리가 되면 이란 핵시설에 선제 공격을 하겠다고 발언하는 등[2] 초강경 우파의 행보를 이어갔다.

그 후 이스라엘 정국은 경제위기, 집권당인 카디마의 부패 스캔들, 가자 지구 문제 등으로 혼란이 계속되었다. 비리에 연루된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 이후 새 정부 구성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2009년 2월, 조기 총선이 실시되었다. 가자 사태가 쟁점이 된 총선 기간 중에도 강경 우파 행보를 이어갔으며, 이에 호응하는 유권자들의 반응에 카디마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도 작용하여 그와 리쿠드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총선 결과 그가 이끄는 리쿠드는 카디마에 1석 차로 패했으나, 그는 에후드 바라크 전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등과 연정을 구성하여 3월 31일 총리 자리에 올랐다. 이후 5선 연임을 하였다.

2021년 해산으로 치뤄진 총선에서 연정 구성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마스가 동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조치에 반발해 무력으로 대응하자 하마스에 보복공격을 하여 반격 작전을 주도하였다.(2021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위기) 교전이 끝난 후, 나프탈리 베네트야이르 라피드와 연정 협상을 한다고 밝혀 정권을 잃을 위기에 몰렸고, 결국 실각했다.

각주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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