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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루아 가(프랑스어: La maison de Valois)는 카페 왕조의 한 계열로 1328년에서 1589년까지 프랑스를 다스렸다. 발루아 왕조는 필리프 6세부터 앙리 3세까지를 말한다. 1498년 샤를 8세가 이탈리아 원정 후 앙부아즈 성에서 후사 없이 사고로 사망하면서 발루아 직계의 대가 끊기고 오를레앙 계인 루이 1세 드 발루아의 손자 루이 12세가 왕위에 올랐다. 오를레앙 계 마저도 대가 끊기게 되자, 앙굴렘 가인 프랑수아 1세가 이어받았고 이후 1589년 앙리 3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여 발루아 가의 방계마저도 대가 완전히 끊기게 되었다. 같은 해 앙리 드 나바라가 앙리 4세로 즉위하여 부르봉 왕조가 프랑스의 왕위를 이어받았다.
"발루아"(Valois)라는 명칭은 필리프 3세의 아들 샤를 드 발루아(1270년 - 1325년)의 영지인 "발루아"에서 유래된다. 직계 카페 왕조의 마지막 왕인 샤를 4세가 아들이 없자 필리프 드 발루아가 살리카 법(Loi salique)에 기초하여,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와 나바르의 쟌느를 제치고 왕위 계승권을 가지게 되었다.
카페 왕조는 필리프 4세가 세 명의 아들(루이, 필리프, 샤를)과 한 명의 딸(이자벨라)을 남겨 그 이후에도 안정적일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 아들은 차례로 프랑스의 왕 (루이 10세, 필리프 5세, 샤를 4세)이 되었지만, 젊어서 죽었거나 후계자를 남기지 못했다(모두 딸은 있었다). 샤를 4세가 1328년에 후계자가 없이 사망한 후, 프랑스의 왕위 계승은 여러 사람에게 그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당시 3명이 왕위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최종적으로는 필리프 드 발루아가 필리프 6세로 즉위하여 발루아 왕조가 시작되나, 이 문제는 이후 잉글랜드 왕이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며 백년 전쟁의 단초가 된다.
- 앙리 3세를 마지막으로 발루아 왕가 방계의 대가 완전히 끊기게 되면서 부르봉 왕가의 앙리4세가 프랑스의 왕권을 이어받았다.
앙리 3세가 프랑스 왕위에 오르기전 폴란드 국왕 선거에 선출되어 헨리크 1세로 즉위했으나 샤를 9세의 사망으로 급히 프랑스로 돌아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폴란드로 돌아가지 않아 자동적으로 폐위되었다.
이 용어는 발루아 왕가의 왕족(장 2세의 아들인 필리프)에게 부르고뉴의 공작 작위가 주어진 이후로 시작된 왕가를 뜻한다.
발루아 왕을 언급할 때의 형식은 "가장 기독교적인 폐하"라는 호칭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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