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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목사이자 음악가 (1922‐2021)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박재훈(朴在勳, 1922년 12월 21일~2021년 8월 2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서양 고전 클래식 음악 오르가니스트, 작사가, 작곡가, 편곡가였던 음악가였고, 대한민국의 서양 고전 클래식 음악가 겸 개신교 목회자였으며, 예비역 대한민국 해군 하사 출신이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아호(雅號)는 일맥(一麥)이다. 강원도 김화 출신으로, 1942년 일제 강점기 시대 말기의 평안남도 평양에서 오르간 주자로 데뷔를 해, 일본 유학 생활 후 귀국하고 나서 1946년 월남하여 이후 대한민국 국군의 해군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한 뒤 대한민국과 미국, 캐나다에서 음악 활동과 사목 활동을 이어갔다.
1922년 12월 21일(음력 11월 4일)에 일제 강점기 시대의 강원도 김화군 금성면[1] 지역에서 아버지 박창숙과 어머니 이루시 사이의 9남매 중 8번째로 태어났다. 한때 강원도 철원군과 강원도 평강군을 거쳐 강원도 이천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이후 강원도 고성군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2]
1942년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오르간 연주자인 오르가니스트로 첫 데뷔한 그는 일제강점기 말기에 일본 도쿄 유학을 하다가 징병을 피하여 일본 유학 생활을 모두 포기 및 단념하고 귀국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을유 광복 후 이듬해 1946년 당시 미군정 조선 시대의 수도였던 서울로 월남하였으며, 1949년 3월에 대한민국 해군 하사로 임관하여 대한민국 해군본부 정훈과에 배속되었다가, 이듬해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때는 대한민국 국군 해군본부 군악대 하사로 복무하였고 1952년 3월, 해군 하사 예편하였다.
이듬해 1953년 7월 27일, 계사 종전 등으로 인하여 한국 전쟁이 끝난 이후 서울에서 초등교원을 거쳐, 중등교원을 지내다가 차라리 모두 그만두고 장수철 등과 함께 기독교 음악 활동을 하면서 서울 영락교회 장로와 한양대학교 음악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73년 미국을 거쳐 4년 이후 1977년 캐나다로 건너갔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 토론토에서 개신교 목회자 겸 원로목사로 음악 활동과 사목 활동을 겸하다가, 2021년 1월 5일을 기하여 모든 음악가 분야에서 모두 은퇴 후, 7개월 지난 2021년 8월 2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미시사가 병원에서 100세(만 98세)로 숨졌다.
그의 작품으로는 동요 작품인 《구슬비》, 《어머님 은혜》, 《송이 송이 눈꽃송이》, 《시냇물》, 《모두 모두 자란다》, 《눈》, 《봄》, 《내 주먹》 등과, 찬송가 작품인 《어서 돌아오오》 등과, 오페라 작품인 《에스더》, 《손양원》, 《함성, 19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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