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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돈(閔泳敦, 1863년 ~ 1919년)은 조선 후기의 관료이자 대한제국의 외교관이다. 본관은 여흥이다.
민영돈 閔泳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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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3년 |
사망 | 1919년 |
성별 | 남성 |
국적 | 대한제국 |
경력 | 조선 후기 관료, 대한제국 외교관 |
직업 | 관료, 외교관 |
1863년 음력 02월에 태어나 1886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7년 4월에 한림(翰林)[1]을 거쳐 6월에 시강원 설서(侍講院說書)에 임명되었다.[2] 1891년에 성균관 대사성,[3] 1893년에 동래부윤에 임명되었다. 1901년에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어 영국과 이탈리아에 주재하였다.[4]
1907년 3월 12일에 영친왕부인에 대한 초간택이 이루어졌고,[5] 간택 대상자 7인의 명단에는 없었지만 여흥 민씨 일문의 위상을 고려하여[6] 민영돈의 딸 민갑완이 황태자비로 선발되었다. 황태자 이은이 일본 유학을 떠난 이후 약혼반지를 전달 받았으나 결국 파혼을 당하여 민갑완은 상하이로 망명을 떠났으며 평생 수절하였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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