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량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류량(柳亮(유양), 1354년 ~ 1416년)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명중(明仲). 시호는 충경(忠景).
류량 柳亮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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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 | Ryu Ryang |
출생 | 1354년 |
사망 | 1416년 |
성별 | 남성 |
국적 | 고려, 조선 |
경력 | 문신 |
활동 기간 | 고려 말 ~ 조선 초 |
생애
고려조 1382년(우왕 8) 장원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1390년(공양왕 2) 형조판서가 되었다.
조선 태조 때에 이조전서, 계림 부윤, 강릉 대도호부사를 지냈으며, 태종 때에 참지삼군부, 예문관 대제학, 우의정을 지냈다. 정1품 공신으로 문성부원군에 봉하여졌다.[1]
강릉 부사로 있었을 때에는 강릉의 백성들이 덕있는 정치에 감동하여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당을 세웠다.[2]
사후
그의 묘 《류량선생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시우리에 있다. 봉분은 부인 정안 이씨와의 합장묘로 2기가 나란히 놓여 있다. 묘역은 전체적으로 3단의 계단식 모양인데 맨 윗단에는 봉분과 묘비를, 가운데에는 문인석을, 아래에는 멀리서도 무덤이 있음을 알려주는 망주석(望柱石)을 놓았다. 왼쪽 봉분 아래에는 긴 돌을 이용하여 3단으로 둘레석을 둘렀으며 오른쪽 부인의 봉분은 2단으로 둘렀다. 묘역 아래에는 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워주는 신도비(神道碑)가 서 있는데 1959년에 후손들이 만든 것이다. 1984년 9월 12일 경기도기념물 제78호로 지정되었다.
시호는 충경이며 그의 후손은 문화 류씨 충경공파를 이루었다.[3]
가족 관계
- 할아버지 : 류보발(柳甫發)
- 아버지 : 류계조(柳繼祖)
- 어머니 : 구영검(具榮儉)의 딸
- 부인 : 조덕유(趙德裕, 평양 조씨)의 딸
- 장남 : 류좌(柳佐) 자부 : 정총(鄭摠)의 딸
- 손자 : 류상영(柳尙榮)
- 차남 : 류근(柳謹)
- 자부 : 이직(李稷)의 딸
- 장남 : 류좌(柳佐) 자부 : 정총(鄭摠)의 딸
- 부인 : 이원발(李元發, 연안 이씨)의 딸
- 삼남 : 류경생(柳京生)
- 자부 : 하연(河演)의 딸
- 손자 : 류찬(柳纘)
- 손녀 : 이징(李澄)에게 출가
- 손녀 : 이인견(李仁堅)에게 출가
- 손녀 : 정지손(정지손)에게 출가
- 사남 : 류강생(柳江生)
- 자부 : 이원로(李원로)의 딸
- 오남 : 류한생(柳漢生)
- 자부 : 최근우(崔근宇)의 딸
- 부인 : 조덕유(趙德裕, 평양 조씨)의 딸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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