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3세의 살아남은 아들 중 세 번째인 초대 랭커스터공작 존 곤트가 시조이다. 3남인 존은 많은 영지와 권력을 세습받지 못했지만, 먼 친척이자 에드먼드의 증손녀 블랑쉬와 결혼해 그녀가 상속받은 레스터 백작령과 랭커스터의 넓은 영지에 대한 권리를 획득했다. 장인인 헨리
제1대 랭커스터공작 곤트의 존(John of Gaunt, 1st Duke of Lancaster, 1340년 3월 6일 ~ 1399년 2월 3일)은 잉글랜드의 왕족이자 랭커스터공작이었다. 현재 벨기에 헨트(Ghent)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헨트(Ghent)의 변형인 곤트(Gaunt)의
3월 20일)는 잉글랜드의 왕이다. 랭커스터 가문의 창시자이자 플랜태저넷 왕조의 왕으로 에드워드 3세의 손자이며 존 곤트의 아들이다. 1398년 사촌인 리처드 2세에게 쫓겨나기도 하였지만 후에 의회의 지지로 왕위에 오름으로써 랭커스터 왕가를 열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헨리
(조선)이 개성으로 천도함. 9월 30일 - 랭커스터공작 헨리 볼링브록이 리처드 2세를 폐하고 왕령과 랭커스터 공령을 합해 잉글랜드의 헨리 4세가 되다. 월일 미상 - 조선의 권채(權採)·변상회(邊尙會) 2월 3일 - 랭커스터공작 곤트의 존(John of Gaunt) 음력
1399년 헨리의 아버지와 랭커스터가 왕권을 찬탈하자 헨리는 아일랜드에서 되돌아와 잉글랜드 왕국의 상속자임을 나타내었다. 그의 아버지가 대관식을 거행해 헨리 4세가 되자 헨리도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임명되었다. 1399년 11월 10일에는 랭커스터공작(Duke of Lancaster)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