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릉
대한제국 고종과 순종의 능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홍릉(洪陵)과 유릉(裕陵)은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능으로 홍릉(洪陵)은 대한제국의 초대황제 고종 광무제와 명성황후 민씨의 능이며, 유릉(裕陵)은 대한제국 2대 황제 순종 융희제과 순명효황후 민씨와 순정효황후 윤씨의 능이다. 1970년 5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조선 왕릉의 정자각(丁字閣) 대신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을 세웠으며, 양쪽으로 문무석을 세워 홍살문까지 기린·코끼리·해태·사자 등의 석수를 세웠는데 중국 명나라 황제능의 제도를 따라 조성된 황제릉이다. 일제강점기에 홍릉은 고종의 인산일[1](1919년)에, 유릉은 순종의 인산일(1926년)에 각각 조성되었다.
조선 왕릉 중 마지막으로 조성된 왕릉이며 순종의 유해가 안장된 유릉은 사실상 조선 왕릉 중 마지막으로 조선왕조 임금의 유해를 모신 왕릉이 되었다. 조선 왕릉은 이렇게해서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에 있는 조선왕조 건국자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시작으로 고종과 순종의 홍유릉까지 연산군묘와 광해군묘를 제외한 모든 조선 임금의 유해들이 능 지위를 받으며 유해가 안장되었다.
능호(명칭)의 유래
한일 병합 조약(1910년) 이후 일본 제국의 지배에 의해 고종과 순종의 무덤은 황제릉이 될 수 없었는데(왕공가궤범, 제200조), 이때 황실에서 생각해낸 것이 명성황후의 홍릉과 순명효황후의 유릉이었다. 고종의 장례 때는 명성황후의 재궁(梓宮)을 청량리에 있던 구 홍릉(현 홍릉수목원)에서 현 홍릉(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옮겨 합장하였고, 순종의 장례 때에도 순명비(純明妃)의 재궁(梓宮)을 구 유릉(어린이대공원, 능동)에서 현 유릉(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옮겨 합봉하였다.
- 홍릉(洪陵)은 고종 32년(1895년)에 조성된 명성황후의 능으로, 1919년 고종의 인산일(3월 1일)에 황후의 재궁을 초장지 홍릉[2]에서 지금의 홍릉에 합봉하였다. 이날 3.1 운동이 일어났다.
- 유릉(裕陵)은 대한제국 광무 8년(1904년)에 조성된 순명효황후의 능으로, 1926년 순종 인산일(6월 10일)에 황후의 재궁을 초장지 유릉[3]에서 지금의 유릉에 합봉하였다. 이날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새로운 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능의 칭호를 가져다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제로서도 이것을 막을 구실은 없었으며, 능의 이장 문제 또한 이왕직이나 총독부가 관여하지 않는 황실 내의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 문제는 별 탈 없이 처리되었다.
홍릉·유릉 권역내의 묘소들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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