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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식(한국 한자: 金元植, 1991년 11월 5일 ~)은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로서 포지션은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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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정보 | ||||||
로마자 표기 | Kim Won-Sik | |||||
출생일 | 1991년 11월 5일 | (33세)|||||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키 | 186cm | |||||
포지션 | 센터백 / 수비형 미드필더 | |||||
구단 정보 | ||||||
현 소속팀 | 동아 타인호아 | |||||
등번호 | 3 | |||||
청소년 구단 기록 | ||||||
2007-2009 2007-2008 2009-2010 |
동북고등학교 (유스) → 레딩 (KFA 해외유학) 발랑시엔 | |||||
구단 기록* | ||||||
연도 | 구단 | 출전 (득점) | ||||
2010-2011 2012-2020 2013-2014 2015 2021 2022-2023 |
포 FC FC 서울 → 안산 경찰청[1] (군 복무) → 인천 유나이티드 (임대) 광주 FC 서울 이랜드 |
73 (1) 10 (0) 31 (0) 27 (0) 65 (0) | 0 (0)||||
국가대표팀 기록‡ | ||||||
2005 2006 2009 |
대한민국 U-14 대한민국 U-17 대한민국 U-20 |
0 (0) 5 (2) | ||||
* 구단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정규 리그의 공식 리그 경기 기록만 집계함. 또한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23년 12월 31일 기준임. ‡ 국가대표팀의 출전횟수와 득점기록은 2016년 3월 21일 기준임. |
스스로 밝힌 선수로서의 장점은 안정적인 킥·조율 능력·강력한 피지컬이고, 부족한 부분은 적극성이다. 좋아하는 선수는 김남일과 야야 투레로, 그의 포지션인 수비형 미드필더이다.[2]
김원식은 동명초등학교 3학년이던 2000년에 축구를 시작한 이후,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리잡은 동북중학교 시절, 탐라기 전국중학교축구대회에서 5골을 몰아넣으며 우승했다. 대회 MVP에 선정되며 동년배 중 단연 앞서나갔다. 동북고등학교 1학년 때 대한축구협회 축구영재 유학프로그램의 수혜자로 선발됐다.
2007년 여름에 지동원, 남태희와 함께 대한축구협회 우수선수 해외유학 프로젝트에 선발되어 프리미어리그 레딩 유소년 클럽에 입단하였다.[3] 2008년 겨울까지 꼬박 1년 반을 레딩에서 보낸 후, 2009년 1월 프랑스 리그 1 발랑시엔 FC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프로 계약 체결을 위해선 만 18세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18세가 되기 불과 5개월 전 입단을 약속했던 앙투안 콩부아레 감독이 파리 생제르맹 FC로 자리를 옮기면서 최종 입단은 좌절되었다.
리그 2 아미앵 SC에서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은 바 있으며 2010년에는 관심을 보인 FC 낭트에서 테스트를 받아서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FC 낭트가 리그 2로 강등당하고, 설상가상 구단 경영난까지 겹치며 입단이 다시 무산되었다. 이후 FC 낭트 산하 4부리그 포 FC에서 잠시 활약하였고, 정조국이 뛰었던 AJ 오세르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던 중, 장 페르난데스 감독이 AS 낭시로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그는 한국에 돌아오기로 했다.[2]
프랑스에서의 시련을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라는 한마디로 규정한 김원식은 2012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 지원서를 냈다.[2] 2011년 11월 9일에 열린 2012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FC 서울에 우선지명되며 입단하였다.[4]
안산 무궁화에서 군복무와 인천 유나이티드의 임대기간을 거쳐 2016년부터 비로소 FC 서울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인천에서 임대로 활약하며 경험을 쌓은 김원식은 서울 복귀 후. 김진규의 계약 만료, 이웅희의 군입대로 빈 서울 수비를 메웠다. 또한 2016년 3·1절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6 AFC 챔피언스리그 F조 조별리그 2차전 산프레체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전반 31분에 신진호의 코너킥이 흐른 것을 침착하게 밀어 넣으며, 자신의 FC 서울에서의 첫 득점이자 팀의 첫 골을 넣으며, 팀의 4-1 대역전승을 이끌었다. 이날 김원식은 오스마르(왼쪽)·김동우(오른쪽)와 함께 스리백의 중앙에 배치되어 히로시마의 공격을 잘 차단해냈고, 자신의 프로 통산 첫 골까지 터트리며 맹활약했다.[5]
그는 FC 서울 입단 후 1년 후인 2013년 안산 무궁화 축구단에 입단하여 2013·2014 시즌 두 시즌 간 활약하며 군 복무를 끝마치고 서울로 복귀하였다.
다시 2015 시즌을 앞두고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임대되어 K리그 입성 후 처음으로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하였다.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로 인천의 중원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하였으나 임대 계약 조항에 따라 FC 서울과의 경기에서는 리그 경기와 FA컵 결승전에는 출전하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다.[6]
2021 시즌을 앞두고 광주 FC로 이적하였고, 이적 첫 해에 광주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22년 1월 30일,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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