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교성(金敎聲, 1860년 음력 4월 26일~1943년 양력 2월 7일)은 대한제국의 관료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초명은 김태성(金兌聲)이나 1906년 개명했다.
생애
1897년 탁지부의 재무관을 지내는 등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전까지 궁내부와 탁지부에서 관료로 근무했다.
1910년 한일 병합 직후 신설된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부찬의로 임명되었고, 1921년에는 참의가 되어 임기 만료가 된 1924년까지 중추원 관직을 갖고 있었다. 이 기간 중인 1912년 일본 정부가 수여한 한국병합기념장과 1916년 다이쇼대례기념장을 받았다.
한편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군 군인들을 위해 지역별로 군인후원회가 조직된 바 있다. 이때 김교성은 경성군인후원회에 참가하여 기부금 2원을 냈다.
동양화가 김은호를 발굴해 이왕직 산하에 운영하던 조선서화미술회 강습소에 입학시킨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1]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공개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수록되었고,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같이 보기
참고자료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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