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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안(具思顔, 1523년 (중종 18) ~ 1562년 4월 22일 (명종 17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외척이며 중종의 부마이다. 본관은 능성(綾城)이며 자는 중우(仲愚)이다.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16년 2월) |
증조부가 정국공신 구수영(具壽永)이고 할아버지는 영유 현령(永柔縣令)을 지내고 형조판서로 추증된 구희경(具希璟)이고, 아버지는 감찰 구순(具淳)이며, 어머니는 의신군(義新君)의 딸이다. 연산군의 딸 휘신공주와 결혼한 종조부 구문경과는 종조부-종손 간이자, 처가로는 사촌 동서가 된다.
실록에는 부마로서 별다른 기록이 없지만 명종3년 윤결,윤준형제를 죽게한 커다란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증조모는 길안현주로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일곱째 아들 영응대군 이염의 딸이다. 또한 종조부 구문경(具文璟)은 연산군의 딸 휘신공주와 결혼하였다. 연산군과 중종은 이복 형제간이 되므로, 처가로는 종조부 구문경과 사촌 동서간이 된다.
1533년(중종 28년) 중종의 셋째 딸 효순공주(孝順公主)를 맞아 능원위(綾原尉)로 피봉되었으나, 공주가 출산중 죽자 국법을 어기고 다시 결혼하였기 때문에 봉작을 빼앗겼다.
1545년(인종 1년) 을사사화에 세운 공으로 위사원종공신(衛社原從功臣)1등에 책록되고 공덕대부에 올랐으며
1548년(명종 3년) 평소 친교가 두터웠던 윤결(尹潔)과 그 아우 윤준(尹浚)이 을사사화의 시말을 시정기(時政記)에 기록하였다가 처형당한 사관 안명세(安名世)와 내통하였다고 밀계하였다.[1]
1553년(명종8년) 증조부의 훈봉을 이어받아 능원군(綾原君)이 되었다.
1562년 (명종17년) 봄에 병을 4월 22일에 사망하였다.
학문을 즐겨 많은 책을 수집하였으며, 문장에 뛰어 났으며, 서적구입에는 재물을 아끼지 않는다고 할 만큼 문인으로 자처하였다. 경사(經史)에 밝고 활쏘기에도 뛰어났다. 그의 동생 구사맹의 딸은 다시 선조의 다섯째 서자 정원군 이부에게 시집갔다. 선조는 부인 효순공주의 이복 조카로, 정원군은 효순공주의 친정 쪽 종손자이자 시가로는 조카사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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