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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문신 (963–1021) 위키백과, 무료 백과사전
강민첨(姜民瞻, 963년 12월 22일 ~ 1021년 12월 24일)은 고려의 문관이다.
고려 거란 3차 전쟁 시 상원수 강감찬(姜邯贊)과 함께 원수(元帥)가 되어 출전하여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는 이 공으로 상장군으로 진급하며 지중추부사·병부상서에 올랐으며, 고려-거란 전쟁 종전 2년 만에 별세하게 도자 고려 조정에서 3일 동안 조회를 하지 않았다. 현종은 사후 그에게 정1품 태자태부(太子太傅) 와 정2품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로 추정하고 은렬(殷烈)이란 시호를 내렸다.
“대중상부(大中祥符) 3년(1010)에 거란이 들어와 노략질하였을 때, 서북면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 양규(楊規)와 부지휘(副指揮) 김숙흥(金叔興) 등은 선봉에 나아가 힘써 격투를 벌이며 연이은 전투에서 적을 돌파하였지만 화살이 고슴도치의 털처럼 집중되어 모두 전장에서 전사하였다. 또한 대중상부 11년(1018) 거란 병사가 난입하였을 적에는 병부상서 지중추원사(兵部尙書知中樞院事) 강민첨(姜民瞻)이 원수(元帥)가 되어 북을 치며 힘써 돌격하여 반령(盤嶺)의 들판에서 크게 패배시켰으니, 거란군이 퇴각하면서 창과 갑옷을 내버려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 강민첨은 이에 10,000명을 포로로 잡거나 참수하였다. 그 공을 추념한다면 포상을 시행하기에 합당할 것이다. 공신각(功臣閣)에 모습을 그려 이로써 후대를 권면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十一月. 制曰, “大中祥符三年丹兵入寇, 西北面都巡檢使楊規副指揮金叔興等挺身奮擊, 連戰破敵, 矢集如蝟毛, 俱沒陣下. 又於大中祥符十一年丹兵入,兵部尙書知中樞院事姜民瞻爲元帥, 鼓奮擊, 大敗於盤嶺之野, 丹兵奔北, 投戈委甲, 行路隘塞. 民瞻乃斬萬級. 追念其功, 合行褒奬. 可圖形功臣閣, 以勸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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