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회원비 장순왕후·성종의 원비 공혜왕후의 친정아버지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2300건이나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한상환(韓尙桓 ), 류태재(柳泰齋)의 문인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 때문에 과거에 번번이 실패해 38세가 되던 1452년에야 겨우 문음으로
씨성제도 않게 되어, 10세기에는 지방 호족으로 실력을 지른 자가 유력한 귀족의 게닌(家人)이 되어, 그 씨성을 침범하는 이른바 모명가음(冒名仮蔭 ) 현상이 일반화되었다. 결국 일본에서 씨성은 겐페이도시쓰(源平藤橘)나, 기(紀), 스가와라(菅原), 오에(大江), 나카하라(中原),
목천 상씨 참여하였다. 음보(蔭 補)로 벼슬에 등용되어 판결사(判決事)에 이르렀다. 외손자 이기준(李耆俊)은 1580년(선조 13)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를 지냈다. 상득용(尙得容) : 영의정 상진(震)의 후손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수문장 (守門將 )이 된 뒤
허목지식을 가진 그는 유교, 도교, 노장 사상 등을 두루 인용한다. 이어 특명으로 기로소에 들어 기로소당상(耆老所堂上)이 되었는데 음사(蔭 仕)로서 기로소에 든 것은 특례였다. 1677년(숙종 3) 《경설 經說》을 간행한다. 이후 5년에 걸쳐 경연에서 또는 상소와 차자로서
십육국춘추 무왕 장궤(武王 張 軌), 명왕 장식/장실(明王 張 寔/張 實), 성왕 장무(成王 張 茂), 문왕 장준(文王 張 駿), 환왕 장중화(桓 王 張 重華), 애공 장요령/장 영요(哀公 張 耀靈/張 靈耀), 위왕 장조(威王 張 祚), 충왕 장현정(沖王 張 玄靚), 도공 장천석(悼公 張 天錫) 권8 서량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