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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타운호 CV-5(USS Yorktown CV-5)는 1937년에 취역해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침몰할 때까지 활동한 미 해군의 항공모함이다. 요크타운호는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1번함이였으며 이전의 랭글리, 렉싱턴, 레인저급 항공모함으로부터 축적된 수많은 기술의 결정체 또한, 태평양 전쟁 이전까지 미 해군 항공모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 문서의 내용은 출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2009년 12월) |
CV-5 요크타운(USS Yorktown CV-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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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에서 수리받고 있는 USS 요크타운호 | |
대략적인 정보 | |
함명 | 요크타운(USS Yorktown CV-5) |
함종 | 요크타운급 항공모함(Yorktown-class aircraft carrier) |
함번 | CV-5 |
제작 | 뉴포트 조선소 |
운용 | 미 해군 미국 해군 |
발주 | 1933년 8월 3일 |
기공 | 1934년 5월 21일 |
진수 | 1936년 4월 4일 |
취역 | 1937년 9월 30일 |
최후 | 1942년 6월 7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침몰 |
일반적인 특징 | |
배수량 | 20,100 톤 (표준) 25,900 톤 (최대) |
전장 | 251.38 m |
선폭 | 33.3 m |
추진 | 기어 터빈 × 4 보일러 × 9 프로펠러 × 4 89MW |
속력 | 32.5 노트(60.2 km/h) |
승조원 | 2,217 명 |
무장 | 127 밀리미터 38 구경 양용포 8문 40 밀리미터 4 연장 75 구경 기관포 4문 20 밀리미터 기관포 30정 |
장갑 | 63.5 - 102 mm 장갑대 27.2 kg 방호 갑판 102 mm 벌크헤드 전망탑 102 mm 오버스티어링 기어 |
탐지 장비 | CXAM-1 RADAR |
함재기 | 90 기 |
항공장비 | 승강기 × 3 캐터펄트 × 2 |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은 요크타운호 CV-5(USS Yorktown CV-5), 엔터프라이즈호 CV-6(USS Enterprise CV-6), 호넷호 CV-8(Hornet CV-8)의 3척이 건조되었다. 이들은 모두 1937~1941년 취역했으며, 태평양 전쟁에서 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으로서 미드웨이와 구아르다르 해전에서 활약하게 된다. 이전 항공모함(랭글리, 렉싱턴, 레인저급)을 운용하면서 축적된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설계된 요크타운 급 항공모함은 태평양 전쟁 당시 가장 효율적이고 뛰어난 항공모함으로서 인정받는다.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이전에 미 해군은 4척의 항공모함 보유하고 있었다. 미 해군의 첫 항공모함인 랭글리호는 석탄운반선을 개조한 소형 항공모함으로 약 30~40대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었고, 그 다음에 건조된 렉싱턴 급 항공모함 렉싱턴호와 사라토가호는 워싱턴 해군조약으로 인해 폐기될 위기에 놓인 순양전함 2척을 개조한 대형 항공모함이었다. CV-4 USS 레인저는 미 해군에서 최초로 도면부터 항공모함을 목적으로 설계된 항공모함으로서 크기는 랭글리와 비슷한 소형 항모였지만, 70대 이상의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었다. 4척의 항공모함을 건조한 뒤, 미 해군은 워싱턴 해군조약에서 허용한 전함(항공모함 포함) 누적 배수량 135,000톤 중 약 55,000톤을 더 건조할 수 있었고(워싱턴 해군조약을 체결한 뒤, 해군 전함 톤수를 누적 135,000톤으로 제한하였다.), 해군은 이 남은 배수량으로 최적화된 항공모함을 설계하였다. 결과적으로 배수량 13,800톤부터 27,000톤, 길이 730피트(약 222미터)에서 900피트(약 274미터)까지 달하는 여러 설계가 제시되었으며, 미 해군으로서는 4개 정도의 선택권이 있었다.
결국 해군은 ④번 설계를 선택했다. 이렇게 해서 20,000톤 항공모함으로 요크타운 급 항공모함 CV-5 요크타운과 CV-6 엔터프라이즈가 탄생했고, 14,000톤 항공모함으로 와스프 급 항공모함 CV-7 와스프가 탄생했다. 요크타운 급 항공모함 호넷호는 초기에는 계획이 없었지만, 워싱턴 해군조약이 폐기되면서 건조되게 된다. 항공모함들을 건조 시작했던 때즈음에는 세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으며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일단 14,000톤 항공모함은 나중 문제였고, 무엇보다 20,000톤 급 항공모함의 설계가 먼저였다. 당시 미 해군은 보유하고 있던 기술력을 이용해 항모 탑재기에 대해 여러 제안을 내었다.
렉싱턴급 항공모함은 본래 순양함으로 설계된 데다가 항모 기술력도 미약할 때 건조된지라 요크타운급은 렉싱턴급 보다 크기는 작지만 더 많은 함재기를 탑재할 수 있었으며, 더 크고 빠르고 많은 엘리베이터로 원활한 항공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요크타운 급의 설계는 매우 효율적이었고 우수했다. 그러나 요크타운 급 항공모함에는 한가지 단점이 있었으며 그것은 배수량 제한을 지키고 빠른 속력을 내기 위하여 어뢰방어 장갑을 최소화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어뢰에 대한 방어력이 매우 떨어졌다. 이로 인해 요크타운급 항모는 태평양 전쟁에서 폭탄에 의한 피해는 빠르게 복구했지만, 어뢰에 대한 취약성을 드러낸다. 결국 요크타운, 호넷, 와스프호는 모두 어뢰로 인해 침몰 당하게 된다. 요크타운은 1937년 9월 30일, 엔터프라이즈는 1938년 5월 12일, 호넷은 1941년 10월 20일 취역한다. 그러나 호넷호는 다른 요크타운급 항공모함과 달리 워싱턴 해군조약이 폐기된 뒤 건조되어 추가적인 장비들이 탑재된다.
태평양 전쟁의 서막을 연 진주만 공습의 주 목적은 진주만 소속 3척의 항모를 침몰시키는 것이였다. 그러나 요크타운을 포함한 세척의 항모들은 당시 모두 진주만 밖에 나가 있어 운좋게 공격을 피하게 된다. 이후 요크타운호는 렉싱턴호와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앞바다, 산호해로 나아가 일본 항모 주이, 즈이카쿠, 쇼카쿠와 해전을 벌인다(산호해 해전). 이 해전으로 일본 항모 주이가 침몰되고, 즈이카쿠는 손상되며, 쇼카쿠 공중 편대는 괴멸되는 등의 성과를 내지만, 미 해군은 렉싱턴호를 잃고 요크타운호는 활주로 중앙에 폭탄을 맞는다. 요크타운호는 급하게 진주만으로 복귀했으며 기계공들은 최소한 몇 달간의 수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요크타운호는 이틀만에 최소한의 수리를 마치고 니미츠 제독 휘하의 태평양 함대에 재배치된다. 태평양 해전에 결정적이였던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모부대의 선두로 서며 일본 항모 아카기, 카가, 소류를 침몰시킨다. 그러나 일본 항모 히류함의 강력한 반격을 받아 1차 공격에서 활주로에 폭탄을 맞지만 한시간 만에 수습하여 함재기가 이착륙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2차 공격으로 어뢰 공격을 받아 배가 좌현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이후 퇴선명령이 내려지고, 전원이 퇴선했으나 다음날 까지도에도 요크타운은 침몰하지 않았다. 선원들은 배를 살릴 수 있을 희망에 다시 탑승하여 진주만으로 예인하였지만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하였다. 결국 예인을 포기하고 요크타운호에서 퇴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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