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 하버
독일의 남자 화학자 (1868-1934)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프리츠 야코프 하버(독일어: Fritz Jakob Haber, 독일어 발음: [ˈfʁɪt͡s ˈhaːbɐ] ( 듣기), 1868년 12월 9일~1934년 1월 29일)는 독일의 화학자이다. 공기중의 질소를 이용하여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인 하버법을 1909년에 개발한[4][5] 공로를 인정받아 1918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6] 이 발명으로 화학비료를 대량생산 할 수 있게 되었고, 식량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하여 인류가 기아에서 벗어나는 데 큰 공헌을 했다.[7][8] 또한 화약제조에 필수요소인 질소를 손쉽게 대량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온결합성 고체의 격자에너지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막스 보른과 함께 개발하여 현재 본-하버 사이클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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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의 하버 | |
본명 | Fritz Jakob Hab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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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8년 12월 9일(1868-12-09)![]() (현재의 폴란드 브로츠와프) |
사망 | 1934년 1월 29일(1934-01-29)(65세)![]() |
국적 | ![]() |
교육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베를린 공과대학교 |
출신 학교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베를린 공과대학교 |
주요 업적 | 하버법 본-하버 사이클 비료 하버-바이스 반응 화학전 제2차 이프르 전투 폭발물 |
수상 | |
분야 | 물리화학 |
소속 |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 카를스루에 공과대학교 |
박사 교수 | 카를 테오도어 리버만 |
기타 교수 | 카를 테오도어 리버만 |
유대인이기보다는 독일인임을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애국자이자 군국주의자였던[9][10] 하버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자신의 조국인 독일의 승리를 위해서 독가스 등 화학무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때 염소가스를 비롯한 여러 치명적인 독가스들을 개발해서 "화학전의 아버지" 또는 "독가스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11] 이처럼 화학무기 개발에 앞장선 것에 대한 죄책감이 부인 클라라 이머바르을 자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중론이다.[12]
하버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에 막대한 공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1934년 나치당에 의해 홀대받았으며 이후 하버는 자발적으로 독일을 떠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나중에는 프리츠 하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친척 중 여러 사람이 나치의 집단수용소에서 죽음을 당했는데, 이 때 하버가 만든 독가스인 치클론 B가 사용되었다.[13]
프리츠 하버는 제1차 세계 대전후 독가스 생산과 연루되어 전범자 신분을 우려해 도피생활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시작 전에 유대인에 대한 독일 내 여론이 악화되자 여러 나라를 전전하였는데, 다니엘 시프 연구소의 이사직 수행을 위해 이스라엘로 가던 중 스위스 바젤의 한 여인숙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