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
로마 제국 황제 트라야누스가 115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파르티아 제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 또는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전쟁은 로마 제국 황제 트라야누스가 115년에 메소포타미아에서 파르티아 제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다. 전쟁은 처음에는 로마에 성공적이었으나, 지중해 동부와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란과 117년의 트라야누스의 죽음 등을 동반한 여러 악재 속에서 로마의 전쟁 중단으로 막을 내렸다.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전쟁 (115–11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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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파르티아 전쟁의 일부 | |||||||
![]() 트라야누스가 파르티아 정복을 기념해 발행한 아우레우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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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로마 제국 | 파르티아 제국 | ||||||
지휘관 | |||||||
트라야누스 파르타마스파테스 |
오스로에스 1세 파르타마시리스 † |
![Thumb image](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0/00/Roman_Empire_Trajan_117AD.png/640px-Roman_Empire_Trajan_117AD.png)
![Thumb image](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e/e0/Asia_Minor_in_the_2nd_century_AD_-_general_map_-_Roman_provinces_under_Trajan_-_bleached_-_English_legend.jpg/640px-Asia_Minor_in_the_2nd_century_AD_-_general_map_-_Roman_provinces_under_Trajan_-_bleached_-_English_legend.jpg)
113년에,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에 대한 결정적 승리와 아르메니아 합병을 통하여 ‘동방 문제’에 관한 최종적 해결을 위한 순간이 여물었다고 결심했다. 그의 정복은 파르티아에 대한 호마의 정책 변화와 로마 제국의 ‘대전략’ 중점의 변동을 시사하였다.[5] 114년에, 트라야누스는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여, 로마 속주에 합병시키고 친척인 파르티아 왕 오스로에스 1세가 아르메니아 왕으로 옹립한 파르타마시리스를 제거했다.[6]
115년에, 로마 황제는 메소포타미아 북부로 진격하여 마찬가지로 로마에 합병시켰다. 이 지역의 정복은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아르메니아의 돌출지가 남쪽의 파르티아군에 차단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6] 이후로 로마군은 페르시아만으로 강을 타고 내려가기 앞서 파르티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점령했다.
하지만, 이때 지중해 동부, 북아프리카, 메소포타미아 북부에서 반란이 반란하는 동시에, 로마 영토에서 대규모 유대인의 반란이 일어났고, 이는 로마의 군사적 역량에 상당한 해를 입혔다. 트라야누스는 하트라를 점령하는 데 실패했고, 이 실패는 파르티아의 완전한 제압을 하지 못하게 했다. 파르티아의 병력은 로마의 중요 지점들을 공격했고, 셀레우키아, 니시비스, 에데사에 있던 로마 수비병들은 지역민들에게 내쫓겼다. 트라야누스는 메소포타미아의 반란군을 제압해내고, 허수아비 왕으로 파라타마스파테스를 세우고 시리아로 철수했다.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와 전쟁을 재개할 수 있는 상황에서 117년에 사망했다.[7]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은 ‘두 세기간 이어진 정치적 태도와 격렬한 대립 관계’의 정점이라는 다른 방식들로 이해되기도 한다.[8] 그는 메소포타미아에 성공적인 공격을 이뤄낸 첫 로마 황제였다.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그의 원대한 계획은 "동방 정복이라는 전략적 현실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폭동이 미칠 수 있는 것에 대한 과소평가 등으로 만들어진 상황들로 결국에 중단되었다”.[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