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라노 기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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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라노 기요모리(일본어: 平清盛 타이라노 키요모리[*], 1118년 ~ 1181년 3월 20일)는 헤이안 시대 말기의 무장·공경이다. 이세 헤이시의 동량(棟梁)[1] 다이라노 다다모리의 장남으로서 호겐의 난에서 고시라카와 천황의 신뢰를 얻었고, 헤이지의 난으로 겐지에게도 승리를 거두어 ‘헤이케 천하’를 이루었고, 무사로써는 최초로 종1위 태정대신에 올랐다. 또한 딸 도쿠코(德子)를 다카쿠라 천황에게 입궁시키는 등 황실의 외척으로서 조정의 주요 요직에 일문의 사람을 들어앉히며 ‘헤이케가 아니면 사람도 아니다.’(헤이케 이야기)[2]라고까지 일컬어지는 큰 권세를 누렸다(헤이시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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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정보 시대, 출생 ...
다이라노 기요모리 平清盛 | |
"천자섭관어영(天子摂関御影)"의 기요모리 초상(남북조 시대) | |
호랑나비 | |
신상정보 | |
시대 | 헤이안 시대 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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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겐에이 원년(1118년) |
사망 | 지쇼 5년 음력 2월 4일(1181년 3월 20일) 향년 64세 |
개명 | 기요모리, 조카이(浄海) |
별명 | 헤이다이쇼고쿠(平大相国, 다이라 대 상국), 로쿠하라도노, 후쿠하라도노, 기요모리뉴도 |
주군 | 스토쿠 천황(도바인) → 고노에 천황(도바인) → 고시라카와 천황 → 니조 천황(고시라카와인) → 로쿠조 천황(고시라카와인) → 다카쿠라 천황(고시라카와인) → 안토쿠 천황(고시라카와인, 다카쿠라인) |
관위 | 종일위, 태정대신 |
씨족 | 이세 헤이시 고레히라 파 |
부모 | 아버지: 다이라노 다다모리, 어머니: 시라카와인뇨보(기온노뇨고의 여동생?) |
형제자매 | 이에모리, 쓰네모리, 노리모리, 요리모리, 다다노리 등 |
배우자 | 정실: 다카시나노 모토아키의 딸 계실: 다이라노 도키코 측실: 도키와 고젠, 이쓰쿠시마노 나이지 |
자녀 | 시게모리, 모토모리, 무네모리, 도모모리, 시게히라, 도모노리, 기요후사, 도쿠코, 모리코, 사다코, 로노온카타, 미코노히메기미, 보몬 노부타카아내, 가잔인 가네마사의 아내, 레이센 다카후사아내 |
묘소 | 노후쿠지, 고베시 切戸町, 로쿠하라미쓰지, 기오지, 히코시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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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헤이시의 권세에 반발한 고시라카와 법황과 대립해 지쇼 3년의 정변(일본어판)을 일으켜 법황을 유폐하고 딸 도쿠코 소생의 안토쿠 천황을 옹립해 실권을 장악했으나, 이는 헤이케에 불만을 품고 있던 세력으로부터 조정을 무시한 헤이시의 독재로 간주되었고, 귀족·지샤(寺社)·무사들로부터 엄청난 반발을 받았다. 헤이케 일문의 ‘교만’과 ‘독재’를 문제 삼아 전국의 겐지 일족이 ‘헤이케 타도’를 외치며 잇따라 거병하던 와중에 열병으로 사망했다. 그가 죽은 뒤 헤이케는 점차 쇠락하여 헤이시 정권은 몰락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