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image](https://wikiwandv2-19431.kxcdn.com/_next/image?url=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3/35/SamuilsDeathBGhistory.jpg/640px-SamuilsDeathBGhistory.jpg&w=640&q=50)
클레이디온 전투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클레이디온 전투[(Κλειδίον) 또는 전투가 벌어진 클류치의 중세 명칭을 딴 키디움 전투(Clidium)], 혹은 벨라시차 전투는 1014년 7월 29일에 비잔티움 제국과 불가리아 제국 간에 일어난 전투이다. 10세기 말과 11세기 초의 비잔티움 황제 바실리오스 2세와 불가리아 황제 사무일 간의 거의 반세기에 걸친 분쟁의 정점이 다다랐던 사건이었다. 전투는 비잔티움의 승리로 끝났다.
간략 정보 클레이디온 전투, 날짜 ...
클레이디온 전투 | |||||||
---|---|---|---|---|---|---|---|
비잔틴-불가리아 전쟁의 일부 | |||||||
![]() 클레이디온에서 불가리아군을 무찌른 비잔티움군과 눈이 멀게 된 군대를 보고 의식을 잃은 사무일. '마나세스 연대기'의 장면. | |||||||
| |||||||
교전국 | |||||||
비잔티움 제국 | 불가리아 제국 | ||||||
지휘관 | |||||||
바실리오스 2세 니케포로스 크시피아스 콘스탄티노스 디오예니스 테오필락토스 보타니아티스 † |
사무일 가브릴 라도미르 | ||||||
병력 | |||||||
미상 | 미상 | ||||||
피해 규모 | |||||||
미상 | 병력 대부분이 괴멸, 주장한 바에 따르면 15,000명이 생포됨 | ||||||
닫기
전투는 오늘날 불가리아의 도시 클류치 인근에 있는, 벨라시차산맥과 오그라즈덴산맥 사이의 계곡에서 일어났다. 전투의 결정적 순간은 7월 29일에 불가리아 진영을 우회했던 비잔티움 제국의 장군 니케포로스 크시피아스가 이끄는 병력이 후방을 공격하면서 벌어졌다. 이어진 전투에서 불가리아군은 대패하고 말았다. 수천 명의 불가리아군들이 포로로 붙잡혔고 이들은 바실리오스 2세의 명으로 실명을 당했는데, 이를 통해 그는 이후에 '불가리아인의 학살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무일은 전투에서 살아남았지만, 두 달 만에 심장마비로 죽었는데, 눈먼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이 전투 결과로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이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불가리아는 비잔티움의 진격을 막아낼 국력을 상당 상실하고 말았으며, 클레이디온 전투는 불가리아와 비잔티움 간 전쟁에서 핵심적인 교전이라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