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라트 아데나워
서독의 초대 연방총리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콘라트 헤르만 요제프 아데나워(독일어: Konrad Hermann Joseph Adenauer, 독일어 발음: [ˈkɔnʁaːt ˈʔaːdənaʊɐ] ( 듣기), 1876년 1월 5일~1967년 4월 19일)는 독일의 정치인, 외교관으로 서독의 초대 총리(1949년~1963년)와 기독교 민주연합의 의장 (1950년~1960년)을 지냈다. 1901년 졸업 후 쾰른에서 법률을 실행하였고, 그러고나서 시의회 의원으로서 1906년 정계에 입문하였다. 1917년까지 쾰른 시장이었다. 1933년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으로 오자 그는 프로이센 주평의회와 독일 도시 의회의 회장이었다. 그는 직무로부터 해임되었다. 1944년 교도소로부터 석방될 때까지 그는 자신의 반나치 신념의 이유로 구금 중이거나 낮은 자세를 유지하였다. 아데나워는 기독교 민주엽합의 창당 일원이었고, 1948년 독일연방공화국이 된 헌법을 기안하였다. 1949년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과 협력에 선거를 이긴 그는 9월 15일 총리가 되었다. 다른이들과 함께 그는 유럽 의회와 유럽 연합을 포함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유럽의 기관들의 "건국의 아버지"로 숙고되었다.
콘라트 아데나워 Konrad Adenau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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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나워(1952년) | |
제1대 독일의 연방총리 | |
임기 | 1949년 9월 15일 ~ 1963년 10월 11일 |
전임 | 요한 루트비히 그라프 슈베린 폰 크로지크 |
후임 | 루트비히 빌헬름 에르하르트 |
대통령 | 테오도어 호이스 하인리히 뤼브케 |
부총리 | 프란츠 블뤼허 루트비히 빌헬름 에르하르트 |
외무장관 | |
임기 | 1951년 3월 15일~1955년 6월 6일 |
전임 | 요한 루트비히 그라프 슈베린 폰 크로지크 |
후임 | 하인리히 폰 브렌타노 |
독일 기독교민주연합의 총재 | |
임기 | 1950년 10월 21일~1966년 3월 23일 |
전임 | (신설) |
후임 | 루트비히 빌헬름 에르하르트 |
쾰른의 시장 | |
임기 | 1945년 5월 4일~1945년 10월 6일 |
전임 | 빌리 주트 |
후임 | 빌리 주트 |
프로이센의 주평의회 의장 | |
임기 | 1921년 10월~1933년 4월 26일 |
전임 | (신설) |
후임 | 로베르트 라이 |
쾰른의 시장 | |
임기 | 1917년 10월 13일 ~ 1933년 3월 13일 |
전임 | 막스 발라프 |
후임 | 귄터 리젠 |
이름 | |
본명 | Konrad Hermann Joseph Adenauer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76년 1월 5일(1876-01-05) |
출생지 | 독일 제국 쾰른 |
사망일 | 1967년 4월 19일(1967-04-19)(91세) |
사망지 | 서독 뢴도르프 |
학력 |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뮌헨 대학교 본 대학교 |
정당 | 독일 중앙당 (1906년~1933년)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1945년~1967년) |
배우자 | 에마 바이어 (1904년~1916년) 아우구스테 친서 (1919년~1948년) |
자녀 | 8명 |
종교 | 로마 가톨릭 |
서명 |
깊이 민주주의로 헌신한 아데나워는 서방에서 새로운 독일을 단단히 고정하여 전쟁이 생각할 수 없는 뿐만이 아닌 물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더욱 통합된 유럽의 전망으로 완전히 서명하였다. 그는 전적으로 굴욕감을 느낀 독일이 미래를 위하여 몸이 나빠질 것을 알아 독일 산업의 해체에 종말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의 회원국으로 이끈 작은 국방군을 창조하는 허용을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들과 성공적으로 협상하였다. 산업을 유지하는 그의 주장은 극히 중요한 것을 증명하였고, 그의 행정부 동안 독일은 경제 성장을 경험하였다. 독일의 도덕적 지위를 회복하려는 열망을 가진 아데나워는 이스라엘의 승인과 나치 시대 동안 고통을 겪은 유대인들을 위한 배상 동의서를 협상하였다. 아데나워는 위기의 시기에 조국을 지도하는 데 아직 성실, 헌신 및 경험을 가진 높은 직무로 늦게 왔다. 그는 독일은 평화와 인간의 연대의 주요 옹호자로서 성공적인 지도자들이 독일을 놓은 것을 따른 과정을 향하여 과거의 경쟁과 투쟁을 온 세계를 가로질러 기초 자유의 협동과 방위와 함께 대체하였다.
아데나워 방식은 전쟁상태에 있는 양국의 국교를 정상화하는 한 방식이다. 영토문제·통상문제 등의 현안의 문제를 사전에 해결하지 않고 우선 대사를 교환하여 외교관계를 재개하고 그런 연후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 가려는 전 서독 총리 아데나워가 취한 방식이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