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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락궁주(昌樂宮主, ? ~ 1216년 음력 1월 27일)은 고려의 왕족이다. 인종과 공예왕후의 셋째 딸이다. 창락공주(昌樂公主)라고도 한다.[1]
고려의 제17대 국왕인 인종과 공예왕후의 셋째 딸로, 언제 태어났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며, 동생인 영화궁주가 1141년에 태어났으므로 적어도 1141년 이전에 태어났음을 유추할 수 있다.
성은 왕, 본관은 개성이다. 의종과 명종, 신종 등의 친남매이며, 희종과 강종 등에게는 고모가 된다.
의종 즉위 후인 1151년(의종 5년) 음력 4월 동생 영화궁주와 함께 정식으로 궁주에 책봉되어 창락궁주(昌樂宮主)의 호를 받았다[2]. 이후 그녀는 현종의 아들 평양공 왕기의 현손인 신안후 왕성과 혼인하였다[3]. 신안후는 창락궁주에게 10촌간인 동시에[주 1], 신안후의 어머니가 창락궁주의 고모인 승덕공주이므로 사촌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둘의 혼인은 근친혼이다.
이후 창락궁주는 1216년(고종 3년) 음력 1월 27일 사망하였다[1]. 당시 고종은 창락궁주가 죽자 소복을 입고 반찬의 가짓수를 줄였으며, 백관들에게도 하루동안 모두 소복을 입게 하였다. 그것은 창락궁주가 고종의 외조모였기 때문이다[3].
창락궁주는 종실 신안후와 혼인하였다. 신안후는 현종의 아들 평양공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한남백 왕기, 어머니는 예종의 딸 승덕공주이다.[4][5] 신안후는 1178년(명종 8년) 음력 8월 20일 사망하였고, 신안후가 사망하자 명종은 3일 동안 조회를 중지시켰다.[6]
한편 신안후와 창락궁주는 딸을 하나 낳았는데, 그 딸은 강종의 제2비 원덕왕후이다.[7] 강종과 원덕태후는 친가로 12촌, 외가로 4촌간으로 이 둘의 혼인 역시 근친혼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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