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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롱스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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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롱스트리트(James Longstreet, 1821년 1월 8일~1904년 1월 2일)는 미합중국 남북전쟁에서 남군의 걸출한 장군 중 한 명이며, 로버트 리의 오른팔이자 북버지니아군의 핵심 지휘관으로 참전한 미국의 군인이다. 리는 롱스트리트를 가리켜 "늙은 군마"라고 불렀다. 롱스트리트는 리의 휘하에서 동부전선 북버지니아군 1군단을 이끌고 많은 이름높은 전투에 참가했고, 또 서부전선에서는 테네시군에서 브락스톤 브라지(Braxton Bragg)장군과 함께 싸웠다. 전기작가이자 역사가인 제프리 D 웰트(Jeffry D. Wert)는 “롱스트리트는 북버지니아군에서 가장 뛰어난 군단지휘관이었다. 사실 그는 의심할 수 없는 양군 전투에서 가장 우수한 군단지휘관이었다.”라고 책에 썼다.[1]
![]() James Longstreet | |
![]() 제임스 롱스트리트 | |
별명 | 늙은 피터(Old P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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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에지필드 카운티 |
사망지 | 조지아주 게인스빌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복무 | 미국(북부연방) 남부동맹 |
복무기간 | 미연방 1842 - 1861 ,남부동맹 1861 - 1865 |
최종계급 | 소령(미연방) 중장(남부동맹) |
지휘 | 제1군단, 북버지니아군 |
주요 참전 | 미국-멕시코 전쟁 미국 남북전쟁 |
기타 이력 | 뉴올리언스 관세감독 오스만 제국 주재 미국 대사 철도청장 연방보안관 |
롱스트리트의 군사적 재능으로 인해 제2차 불런 전투, 프레데릭버그 전투 및 체카마우가 전투에서 공격에서나 방어에서도 남군의 승리에 의미있는 공헌을 해냈다. 또한 7일 전투, 앤티텀 전투, 중상을 당할 정도였던 와일더넨스 전투에서도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테네시 주(州) 녹스빌에서 거의 절반은 방심한 상태의 지휘를 할 때는 남군에 있어 뼈아픈 패배를 입기도 했다. 롱스트리트가 전투시 벌인 행동 중에 논란이 많았던 것은 게티스버그 전투때 리장군이 채택한 전술에 동의하지 않고, 피켓의 돌격이라 불리는 보병에 의한 비참한 공격을 주저하고 그저 보고만 있었던 것 때문이었다.
롱스트리트는 전쟁 후 외교관, 공무원 및 행정관으로서 미합중국 정부를 위해 일했다. 그러나 공화당에서 자리를 바꿔 옛 친구였던 율리시스 그랜트에게 협력한 일과 또한 전투때 리장군의 행동에 대해서 비판한 말을 책에 쓴 일로 인해 많은 남군의 동료 다수로부터 배신자란 비난을 받았다. 남군의 패배 원인에 대해서 쓴 책에서 사람들은 게티스버그에서 롱스트리트의 행동이 남군이 전쟁에 지게 된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롱스트리트는 남부에서 평판이 1세기 이상이나 나빴으나, 겨우 최근에 들어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