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호 전투
한국전쟁 중인 1950년 겨울 미국 제1해병사단과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서 벌어진 북한과 중국의 전투 /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장진호 전투(長津湖戰鬪), 또는 장진 저수지 전역, 장진 저수지 전투[lower-alpha 3]는 한국 전쟁의 결정적 전투 중 하나로 미국 해병대 제1해병사단이 주축이 된 유엔군과 중국군이 장진호 및 장진군 일대에서 벌인 전투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각국은 이 전투의 지명을 장진이 아닌 "초신"(chosin)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장진(長津)의 일본어 발음에 의한 것이다.[10][11] 유엔군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인 1945년, 일본어로 작성된 지도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진이라는 지명도 이런 방식으로 읽히게 되었다. 중국이 한국 전쟁에 참여한 이후, 중국인민지원군 제9병단[lower-alpha 4]이 북한 북동쪽으로 침투했다.
장진호 전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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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의 일부 | |||||||
장진호 전투 중 중공군 저지선을 뚫고 이동하는 미 해병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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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중국 | |||||||
지휘관 | |||||||
더글러스 맥아더 | 쑹스룬 | ||||||
군대 | |||||||
장진호 전투 전투 서열 | 장진호 전투 전투 서열 | ||||||
병력 | |||||||
명목상 103,520명[1] |
명목상 150,000명[3] | ||||||
피해 규모 | |||||||
미군 자료
중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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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료
비공식 자료
국제연합군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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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11월 27일, 중국 제9병단은 장진호 지역에서 에드워드 알몬드가 이끄는 미국 제10군단을 기습공격했다. 혹독한 겨울에 잔혹한 17일 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11월 27일부터 12월 13일까지 30,000명[2]의 유엔사령부 병력이 올리버 P. 스미스 소장의 지휘를 받고 있었지만 이들은 곧 포위되었고, 마오쩌둥의 유엔군 격파 지시를 받은 쑹스룬이 이끄는 약 120,000명[4]의 중공군이 이들을 공격했다. 유엔군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철수를 위해 싸움을 이어나갔으며 중공군의 사상자를 늘려가며 포위를 돌파했다. 제10군단의 흥남 철수 작전이 유엔군의 북한 철수의 마지막 단계였다. 해병대가 철수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쪽에서 중공군의 예봉을 맡은 제31연대전투단(페이스 특수임무부대)의 역할이 컸다. 제31연대전투단(페이스 특수임무부대)이 희생을 치르며 시간을 버는 동안, 서쪽의 해병대는 포위되지 않을 수 있었다. 중공군은 유엔군을 북한 동북부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으나 큰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