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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파르 샤리프에마미(1912년 6월 17일~1998년 6월 6일)는 이란의 정치가이다. 두 차례에 걸쳐 이란 제국의 총리를 지냈다.
1910년 테헤란의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물라였다.[1] 고등학교 졸업 후 30명의 동료와 함께 독일에서 18개월간 유학했다. 1930년에 귀국, 영국과 소련이 개입한 1941년까지 철도 기관에서 일했다.[2] 1943년 한때 다른 이란 엘리트들과 함께 친독(親獨) 혐의로 체포되었다 풀려났다. 석방 후 개관국장(漑灌局長)으로 임명되었다.[2][1] 1950년 교통통신부 차관이 되었다가[3] 그 해 6월, 알리 라즈마라 총리가 그를 장관으로 승격시켰고,[2] 에그발 내각에서도 산업자원장관을 자냈다.[4]
1960년부터 1961년까지 첫 번째 총리 임기를 수행했고, 팔레비 왕조가 붕괴되기 몇 달 전인 1978년에 두 번째로 총리를 지냈다.[3] 1978년 8월 27일, 팔레비 황제는 성직자들과 인연이 있는 그를 총리로 지명했다.[5] 짧은 두 번째 임기 동안, 그는 황제의 몇 가지 조치들을 취소시켰다. 예를 들면 카지노의 폐쇄, 제국력(헤지라를 기원 대신 키루스 2세가 메디아를 멸망시킨 BC 550년을 기원으로 한 것으로 1975년부터 사용)의 폐지, 라스타키즈당의 해체와 여러 정당의 정치 참여 허용 등이 그것이다.[4] 그의 개력 노력들은 잘레(Jaleh) 광장에서의 대규모 인명피해(1978년 9월 8일, 검은 금요일), 군중시위, 계엄령과 전국적 파업으로 압도되었다. 결국 그는 대규모 시위 와중인 11월 5일 사임했다.[6] 한편 그는 이란 상원의장으로,[7] 또 팔레비 재단의 의장으로 오랫동안 재임했다.[8][9] 그는 황제의 가까운 조언자 중 한 사람이었다.[7]
1979년 이란 혁명 후 그는 이란을 떠나 뉴욕 맨하탄에 정착했다.[3] 그 곳에서 팔레비 재단 의장을 역임하다가 사임했다.[3] 1998년 6월 16일, 85세를 일기로 뉴욕의 병원에서 별세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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